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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세균은 뭘까요? 이름도 거창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아닐까요?
얼마전 발표된 노벨의학상 수상자 얼굴은, 의외로 한국인에게 낯설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배리 마셜 박사가, 바로 이 헬리코박터균에 효험이 있다고 강조하는 국내 요구르트의 CF 모델로 오랫동안 활약했기 때문이지요. 오늘 주제는 요구르트입니다.
배리 마셜 박사는, 한국야쿠르트의 ‘윌’이란 요구르트 제품 광고를 4년 이상 해왔습니다. 그러니 이 회사는 이번 수상자 발표를 보고 경사가 났지요. 경쟁이 치열한 요구르트 업계에서, 기대 하지 않은 광고 호재를 만난 셈이었으니까요.
2. 흔히 요구르트라고 통칭되는 발효유 업계에서는, 얼마전부터 ‘대첩(大捷)’이 진행중입니다.
일단 발효유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웰빙 바람과 건강 중시 풍조를 타고 요구르트 시장 규모는 연간 1조원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요구르트 사먹는데 쓰는 돈만 한 해 1조원이 넘는다니,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긴 ‘레드 망고’라는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전문점까지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으니, 가히 ‘요구르트 시대’라 할만 합니다.
둘째로 발효유 시장의 전선이 대대적으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대변을 황금색으로’ 라는 문구로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처럼, ‘장(腸)’에 좋은 요구르트라는 마케팅 포인트로 큰 변환기를 맞았던 발효유 시장은, ‘위(胃)’, ‘간(肝)’을 넘어 올해에는 ‘혈압(血壓)’에 좋은 요구르트까지 내놓더니, 한 유력업체에서는 조만간 ‘당뇨(糖尿)’에 효과가 있는 제품까지 출시할 예정입니다. ‘당뇨 요구르트’가 나온다는 소식은, ‘이슈 빨간펜’에서 처음으로 전해드립니다.
3. 국내 요구르트 시장의 35년 변천사를 한번 되짚어보겠습니다.
국내에 처음 선을 보인 요구르트는, 1970년대 초반의 ‘야쿠르트’였습니다.
지금도 어린이들이 많이 마시고, 또 일부 식당에서 후식으로 제공하기도 하는 바로 이런 모양의, 귀엽고 앙증맞은 반투명 플라스틱 통에 담긴 요구르트입니다. 마시는 요구르트라는 뜻에서 액상 요구르트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 ‘떠먹는 요구르트’가 나왔습니다. ‘요플레’, ‘슈퍼백’ 등이 바로 그런 제품입니다.
그 다음 세대가 ‘기능성 요구르트’입니다. 유산균이 일반 액상 요구르트보다 훨씬 많이 들어있고, 몸의 특정 부위에 좋다고 업체들이 주장하는 이 제품들은, 이제 한국에서 발효유의 대표 주자로 확고하게 자리잡았지요.
‘기능성 요구르트’가 태어난 것은 1988년입니다. 파스퇴르 요구르트가 그 개척자입니다. 20대 이상이라면 1990년 초·중반, ‘황금색 대변이 장 건강의 바로미터다’, ‘파스퇴르 사과요구르트를 하루에 3병 드시면 4~5일만에 대변이 황금색으로 변한다’는, 참으로 직선적인 파스퇴르의 광고 문구가 기억나실 겁니다.
파스퇴르유업의 창립자였던 최명재 당시 회장은 저온살균우유 논쟁, 고름우유 논쟁, 그리고 이 황금색 변 부각 등을 소재로 투박하면서도 공격적인 신문 광고 전략을 구사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파스퇴르 요구르트에 이어 ‘불가리스’(남양유업), ‘바이오거트’(매일유업) 등이 출시됐고, 1995년에는 ‘생명 연장의 꿈’이라는 인기 카피로 기억되는 매치니코프(한국야쿠르트)가 선보이면서 기능성 요구르트 시대를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유산균을 캡슐로 감싸서 몸 속까지 배달한다’는 ‘닥터 캡슐’이란 제품도 나왔지요.
요구르트에 ‘위(胃)의 시대’를 연 것은 아까 소개드린 ‘윌’입니다. 현재 하루에 65만개 이상 팔리는, 발효유 시장의 1등 제품입니다.
4. 조금 곁가지 이야기입니다만, 한국야쿠르트라는 회사는 좀 특이한 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야쿠르트 아줌마인데요, 아까 말씀드린 야쿠르트의 탄생과 함께 1971년 처음 선을 보인 이 분들 숫자가 요사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무려 1만3000명에 달합니다. 실핏줄처럼 전국 곳곳에 뻗어있는, 이 탐나는 조직을 활용하자고 각계에서 온갖 제안이 들어온다고 하는데요, 아직까지 회사측은 응하지 않고 있답니다.
‘윌’의 성공 사례 뒤에는 이 거대한 야쿠르트 아줌마 조직이 숨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윌 같은 한국야쿠르트의 유제품들은 할인점이나 편의점에서는 보기 힘든 겁니다. 다른 회사와 달리 이 조직적 판매망을 이용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겠죠.
5.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작년에는 ‘쿠퍼스’라는 제품이 나오면서 ‘간(肝)의 시대’가 열렸구요, 올해에는 남양유업이 ‘120 80’이라는 제품을 내놓으면서 이제 요구르트가 혈압까지 챙기겠다고 선언했지요. 그리고 조만간 한 유력업체는 당뇨 수치 조절에 도움을 주는 신상품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지난해 일본 연구진은 혈당치를 낮추는 데 효과가 있는 균 2종류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바 있었지요.
얼마전에는 매일유업이 ‘불가리아’라는 제품을 내놓아, 기존의 강자 ‘불가리스’에 도전장을 내놓으며 싸움이 붙은 적이 있었지요. 결국 소송까지 갔다가 법원으로부터 ‘불가리아’라는 이름을 쓰지 말라는 판단을 받고 브랜드를 ‘장수나라’로 바꾸었습니다.
이 사건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은 유제품 업계의 라이벌로 경쟁이 치열합니다. 두 회사는 우유, 분유, 발효유 등 비슷한 제품 라인을 갖고 있는데, 매출액 차이가 딱 남양유업이 불가리스를 팔아치우는 만큼이라고 합니다. 사실 불가리스는 윌과 함께 요구르트 시장의 압도적인 양대 강자이거든요. 그러니 매일유업 입장에서는, 발효유 시장이 한 맺힌 승부처인 셈이고, 그래서 극히 이례적으로 주한 불가리아 대사까지 동원시켜 ‘불가리’ 계열 이름 쟁탈전을 벌인 겁니다.
6. 현재 발효유 시장의 구도는, 기능성 요구르트가 절반쯤이고, 이 ‘귀여운 액상 요구르트’가 3분의 1, 그리고 나머지를 떠먹는 요구르트 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귀여운 액상 요구르트’ 시장이 정체 혹은 감소세를 보이는 것은, 주 소비층인 어린이 숫자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요구르트 시장만 봐도, 한국 사회의 흐름이 읽힙니다.
문헌을 찾아보면, 요구르트의 효시는 수천년전 뜨거운 사막을 떠도는 유목민의 가죽 주머니에서 자연스럽게 발효한 우유덩어리였다고 합니다. 김치와 된장의 마술을 생활에 접목시켜온 발효 선진국 대한민국의 국민 여러분은, 설마 요구르트를 ‘만병통치약’이라고 오해하시지는 않겠지요? 현명하고 지혜롭고 잘 활용하시면 됩니다. 이상 이슈 빨간펜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위의 텍스트는 조선일보 동영상 ‘갈슈’의 한 코너인 ‘이슈 빨간펜’의 6일 방영분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 코너를 포함한 ‘갈슈 매거진’ 프로그램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NGC)’을 통해 7일(금) 저녁 8시, 8일(토) 아침 7시, 9일(일) 아침 8시에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NGC는 케이블TV(지역마다 채널 번호는 다름)와 위성 스카이라이프 TV(402번)를 통해 방영됩니다.
헬리코박터균, 요구르트로 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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