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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도가 말하는 백제의 천하관

[칠지도가 말하는 백제의 천하관]




■ 칠지도

백제의 금석문 가운데 국가의 위상과 더불어 그 극점에 군림하였던 왕권의 존재형태와 사유관념을 시사해주는 자료가 칠지도이다.

일본나라현 덴리시에 소재한 이소노가지 신궁안의 금조기 부근신고에는 엄중하게 봉인된 나부상자에특이한 형태의 칼 한자루가 봉인되어 있다. 길이 74.9cm의 단철로 만든 양날칼인데 몸체좌우로 가지칼이 세 개씩 뻗어있다. 해서 모두 7개의 칼날을 이루고있기 때문에 칠지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칼 몸의 앞뒷면에 모두 61자의 명문이 금상감되어 있으며 외곽은 가는 금선으로 둘러져 있다.

칠지도의 존재는 일본서기 신공 52년조에 보인다.
신공황후(神功皇后) 52년(일본서기년도 A.D 252년 실제년도 A.D 230년) 秋 9월 丁卯朔 丙子(10일) 사신 구저 등이 천웅장언(千熊長彦)을 따라왔다. 칠지도(七支刀) 1구, 칠자경(七子鏡) 1면 등 각종의 중보(重寶)를 바쳤다.


이어 말하여 "신의 나라의 서쪽에 강이 있습니다. 수원은 곡나(谷那)의 철산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 먼 곳은 7일을 가도 이르지 못합니다. 그 물을 마시고 그 산에서 제철(製鐵)하여 길이 성조(聖朝)에 바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손자인 침류왕에게 일러 "지금 내가 통하고 있는 귀국(貴國)은 하늘이 열어주신 바이다.


이로써 천은(天恩)을 내리시고, 해서(海西)를 떼어서 나에게 주셨다. 이 때문에 국기가 영원히 단단하다. 너도 마땅히 화호(和好)를 거두고, 토산물을 모아서 봉헌(奉獻)하기를 끊이지 않는다면 죽어도 한이 없다"라고 말하였다.
이후 매년 계속하여 조공(朝貢)하였다.

久等從千熊長彦詣之則獻七枝刀一口七子鏡一面及種種重寶仍啓曰臣國以西有水源出自谷那鐵山其邈七日行之不及當飮是水便取是鐵山以永奉聖朝乃渭孫枕流王曰今我所

칠지도에 관한 지금까지의 견해는 크게 4가지로 나누어진다.

1. 칠지도를 백제의 헌상품으로 간주하는 백제헌상설
2. 칠지도는 일본제라고 생각하는 위작설
3. 칠지도는 백제의 우위를 드러낸다는 백제하사설
4. 칠지도의 배후에 동진의 존재를 지목하는 동진하사설

■ 명문해석

[앞면]
泰(和?)四年 五月 十六日 丙午正陽 造百練鋼七支刀 豈避百兵 宜供供侯王 □□□□作

[뒷면]
先世以來未有此刀 百濟王世子奇生聖音 故僞倭王旨造 傳示後世

「태화사년 오월 십일일 병오정양」에 백번(百番)이나 쇠붙이를 단야(鍛冶)하여 이 칠지도를 만들었다.
어찌 「백병」을 피하겠느냐. 마땅히 「후왕」을 받들고 받들라. 선사 이래로 이와 같은 칼은 아직 없었다.
백제왕세자는 신령스럽게 태어난 샘님이다. 그래서 왜왕이 되는 것이고 그런 취지에서 이 칼을 만들었다.
후세에 전하여 보이도록 하라.

명문의 내용은 황제적 표현인 성과 더불어 교지의 의미인 지가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그 명문 말이의 후세에 전하여 보여라라는 문구는 제왕이 신하에게 훈시하는 관레적인 용어로 명령형의 하행문서양식이다.

■ 하사동기

백제왕은 호족들을 중앙권력체계로 내로 복속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동진제 청자와 초두를 하사해주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부월이나 도검의 사여는 하위자에 대한 상급자의 신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 칠지도의 성격과 용도

형태가 영력이 있다고 믿어진 사슴뿔이나 영고등을 걸어놓았던 소도의 신목가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조욕적의구일 가능성이 높다. 칠지도는 천손을 자처한 백제왕의 샤면적역할과 권위를 과시해주는 성스러운 도구가 될 수 있다. 백제왕을 구심점으로 수목가지처럼 뻗어가는 왕권의 확대와 연결시킬 수 있다. 여기에는 하늘과 연결되는 백제왕권의 신성성내지는 사방적 천하관이 반영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백제의 천하관

광개토왕릉비문이나 모두루묘지명에서 자국인 고구려를 세상의 중심으로인식하는 사해관이 강하게 되고 있음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백제의 천하관이 근초고왕 당대에 확립되었음을 일본서기에서 백제가 영산강유역의 마한세력을 남만이라고 일컬은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은 추정은 무령왕릉매지권에서 천자의 죽음에나 쓰는 붕자가 표기된 데서 입증된다.


이 무렵 백제의 관작은 이원화되었다. 국내분봉지에는 한반도관내의 지역명을 왕 후에 관칭하고 있다. 국외분봉지는 대체로 북중국 지역 태수로를 정하였다.중국계 태수들에게는 선비족의 점유공간인 북중국에 대한 영유권을 본토출신에게는 주로 마한고지에 대한 영유권을 내세우고 있다. 백제영토내에서는 본토인을 중국지역은 그 실제지배여부와는 관계없이 중국인을 봉함으로써 의제적인 내외신관념속에서의 백제적인 소우주관이 확립되어 있다.

삼국간의 장기간에 걸친 경쟁과 항쟁, 그리고 왕권의 강화와 지배의 절대성 확립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국중심의 황제체제를 구축한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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