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간]
목간은 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목재를 다듬어 세장형(細長形·길다랗고 폭이 좁은 모양)으로 만든 나무판을 말한다.
종이가 보편화되기 전에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널리 사용된 기록유물 중 하나다.
중국에서 종이발명 이전에 문자 기록용으로 쓰던 나뭇조각. 죽간과 함께 사용하였다. 종이발명이전에는 비단이나 길쭉한 나뭇조각 혹은 대나무 조각에 칠(漆)이나 먹 등을 이용하여 붓으로 썼다.
대나무 조각으로 된 것을 죽간, 나무로 된 것을 목간이라고 한다. 길이는 대개 30∼50㎝ 정도의 것이 많았다.
그리고 이것들을 가죽끈으로 엮은 것이 책이다. 여기서 오늘날 한자의 冊(책)이라는 상형글자가 생겼다. 이같은 목간이나 책은 중국의 진과 한나라때까지 이어졌다.
목간은 대개 나무 토막을 폭 1㎝ 길이 20∼30㎝ 두께 3㎜ 정도의 자 모양으로 잘라 여기에 먹으로 글씨를 썼는데
용도에 따라 치수가 달랐다.
이들 목간은 옛 기록으로만 알려졌다가 1899년 중국의 누란 유적지에서 처음 발굴됨으로써 실제로 어떤 형태였는지 알려지기 시작했다.
목간과 함께 대나무 조각으로 만든 죽간도 있었는데 죽간은 대나무통을 쪼개 기름끼를 빼고 푸른 겉껍질을 벗긴 다음 사용했다. 竹簡(죽간)의 簡은 ‘간단하다’든가 ‘편지’를 의미하나 원래는 대나무를 쪼갠 것을 뜻했다. 대(竹)쪽 사이(間)에 짧은 편지를 쓴데서 유래한다. 그러니까 목간은 다른 말로 목독 목첩이라 칭한다.
竹簡木牘(죽간목독)이라 함은 죽간과 목간을 합하여 이름이다.
죽간은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200년까지 성행하였으며, 이후 5세기경까지 중국 남부지방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주로 청죽(靑竹)이 쓰였다. 중국 북부지방에서는 대나무가 자라지 않아 목간을 사용하였다.
간(簡)이란 장방형으로 잘른 편(片)을 말하는데, 죽간의 제작방법은 먼저 청죽을 가열하여 길름을 뺀 후 껍질을 제거하고 내부만 사용하였으며, 그 크기는 대개 길이 22Cm, 폭 1.2Cm, 두께 1mm였다.
목간과 죽간은 용도가 서로 달랐다.
목간은 죽간 보다 너비가 넓고 커서 공문서나 호적을 기록할때 사용했고 죽간은 주로 서적을 만드는데 이용했다.
그리고 길이도 일정치 않아서 긴 것은 경전과 법률 역사서적에 쓰였고 짧은 것은 효경이나 전기서를 적는데 쓰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처럼 죽간의 길고 짧음은 서적의 중요성을 나타냈던 것이다.
한국 고대 목간의 경우 대체적으로 길이 23㎝, 폭 2~3㎝, 두께 0 .5㎝ 내외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한국과 일본에선 죽간이 거의 쓰이지 않았다 . 일본에선 죽간의 출토 예가 하나도 없으며 국내에서도 42년 경 주 황복사지 3층 석탑의 사리장치에서 발견된 불경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이는 죽간(현재 전하지 않음)이 거의 유일한 사례다.
대신 한국에선 소나무가, 일본에선 삼나무가 주로 목간재료로 이용됐다.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신라 목간은 6~8세기 것이고, 부여에서 집중 출토된 백제 목간들도 6~7세기 것이 대부분이다. 안압지에서 찾아낸 목간에서는 세택(洗宅)이라는 신라관직의 이름이 나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경남 함안산성 목간에서는 신라시대의 경상북도 여러 지방이름이 적혀있어서 성을 쌓기 위하여 멀리서도 백성을 동원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충남 부여의 능산리에서 나온 목간에서는 보희사(寶憙寺)나 자기사(子基寺)라는 삼국시대 절 이름이 나오기도 한다. 또 부여 궁남지의 목간에서는 일본에만 자라는 삼나무로 만든 목간이 하나 확인되어 일본과의 관계를 알아보는 자료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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