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송

삼국시대의 종이

[삼국시대의 종이에 대해서] -목라수가 서동을 시험하였죠



우리 나라는 중국에서 개발된 제지법이 전래된 이후 특산 재료인 닥나무나 마(麻) 등을 활용해 일찍부터 품질 좋은 한지(韓紙)를 생산했다.

그 중에서도 닥종이[楮紙]는 희고 두텁고 질겨서 오래 견딜 수 있음이 가장 큰 장점이었는데, 중국에서는 이를 계림지(鷄林紙), 백추지라고 일컬으면서 품질을 칭송했다. 백추지란 명칭은 결백(潔白)하고 질긴 백면지(白面紙)라는 특징에서 나온 것이다.

기록을 보면 신라시대에는 백추지(白錘紙)가 생산되었는데 이 종이는 중국에서조차

'천하에 비할 수 없는 종이 '라 예찬한 바 있고 삼국 유사에는 진덕여왕 원년에 종이로 연(鳶)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

우리나라에 언제 제지술이 들어왔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중국의 <조지사화(造紙史話)>에는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384년)가 제지 기술을 습득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중국 <송사(宋史)>는 신라에서 백무지, 우지, 학청지 같은 종이들이 생산되었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다.
이미 서기 600년 이전에 그 제조법이 널리 보급되어 일본까지 전수되었던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일본서기에 610년 담징(曇徵)이 채색,맷돌과 함께 종이를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담징이 일본에 종이와 함께 전한 맷돌은 바로 종이를 만드는 용구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당시 중국에서는 맷돌 등을 이용하여 섬유를 잘게 갈아서 만들었다.

이처럼 우리 나라에는 인쇄술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미 품질이 좋은 종이와 먹을 생산하여 국내의 대량 수요를 충당함은 물론 중국에까지 수출도 했다.

삼국시대에 제지업이 크게 번성하였던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에 대한 근거는 남아 있지 않다.


당시의 고분은 구조상의 결함으로 인하여 섬유질의 보존이 불가능했으며, 따라서 종이와 흡사한 것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랜 지류(紙類) 유물 자료는 우선 고구려 종이로 만든 평양에 소장되어 오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이다.

또 신라시대 종이로 만든 것으로 판명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범한다라니경이있고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있으며 그리고 대방광불화엄경(大方光佛華嚴經) 2축이 전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삼국시대 때 이미 닥을 종이의 원료로 해서 현대의 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운 종이를 제조했다.


1200년을 탑 속에서 보내고도 형체를 보존하고 있는 닥종이로 만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우리 제지 기술의 우수성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기록을 종합해보면 3,4세기경에 우리나라에서도 종이 서적이 있었고 7세기경에는 우리나라 제지술이 일본에 전해 졌음을 알 수 있다.

'방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도주  (0) 2006.01.30
야명주(夜明珠)  (0) 2006.01.30
백제의 악기  (0) 2006.01.29
목간  (0) 2006.01.29
연지제조법  (0) 2006.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