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의 로열 패밀리 해씨와 진씨
백제의 귀족가문으로는 먼저 건국초부터 등장하는 성씨로서 해씨가 있다.
해씨는 부여씨 왕족들과 함께 부여에서 남하하여 백제건국의 한 축을 형성한 가문이었기에 만만치 않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해씨세력은 18대 전지왕의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므로 병권을 비롯한 조정의 요직을 장악, 왕비족으로서 위세를 자랑한 해씨세력은 20대 비유왕대까지 왕실의 외척으로 군림하였다.
삼국사기 아신왕조에 의하면,
병권을 장악하면서 고구려와의전쟁을 주도하던 진씨세력은 그 지위가 크게 흔들렸다.
결국 패전으로 인해 진씨세력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지만, 반면 해씨세력에게는 그 부상을 가져오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아신왕말기에 해씨세력과 왕권과의 유착이 이루어지는 배경이 구축되었다.
진씨세력이 퇴조하게 된 데에는 아신왕말기의 대고구려전의 패배가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삼국사기 전지왕 3년조에 의하면 내법좌평에 임명된 해구와 병관좌평에 임명된 해구가 모두 왕의 친척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왕비가 해씨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성도읍기이래 해씨의 견제세력이었던 진씨가문이 살해된 문주왕의 아들인 13세의 삼근왕을 옹립하면서 제동을 걸었다.
진씨세력은 본시 진모라는 복성으로서 근초고왕 이래 백제왕실의 외척으로서 중앙권력의 한 축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진씨세력은 경기도 북부에 걸쳐 세력기반을 확립하고 있으면서, 남하하는 낙랑이나 말갈족의 침입을 막으며 세력을 신장시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