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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짚신과 일본와라지

[백제짚신과 일본와라지]

신발의 형태와 장식은 인간의 예술성향을 반영한다. 기후와 성향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고, 신분이나 계급, 명예를 반영하기도 한다.


한반도의 경우 신석기 시대부터 발의 보호를 위해 신발이 고안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오래전부터 짚, 가죽, 헝겊, 금동, 청동제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다.

삼국시대에는 지배계급은 목이 긴 가죽신을 즐겨 신었으며, 중간계급은 정교하게 제작한 짚신이나 목이 없는 가죽신을 신었고, 일반 백성은 짚신을 주로 신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짚신은 마한시대 기록에 나와 있는 점으로 미루어 오래 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통전 동이조에 부여·마한에서 짚신을 신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마한시기의 사정을《後漢書》를 통해서 보면 귀금속을 중히 여기지 않았으며, 화려한 구슬 장식을 하였다. 또한 상투를 틀고 베로 만든 도포와 짚신을 착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짚신은 지금의 고무신이나 운동화 같이 오래 신지를 못했다. 짚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밑바닥이 울퉁불퉁하여 진흙 바닥에서 일을 하다 보면 많은 흙이 짚신에 엉켜 달라붙는 단점이 있다.


남녀 구별 없이 아무 때나 신었던 짚신은 볏 짚 외에 왕골 · 부들 등으로 삼기도 했다.

가장 오래된 짚신은 1995년 부여에서 출토되었다.


부여 궁남지 유적(사적 제135호)과 관북리 백제유적(사적 제428호)을 비롯한 각 유적지에서 출토된 '백제짚신'은 64점에 달하고 있으며 이들은 재료가 짚이 아니라 강변에 자생하는 식물의 일종인 부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들은 저습지 등 습한 환경에서 많이 자라는 풀이므로 백제인들은 사비와 같이 배후습지가 발달한 환경에서 흔히 구하기 쉬운 재료를 이용, 짚신을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형태도 전통적인 우리나라 짚신과는 달리 신바닥 앞에 세운 새끼 기둥인 앞총이 없이 가는 당김잇줄로만 묶은 백제 짚신은 신발 바닥만 있는 구조였음이 밝혀졌다

앞면과 측면에 돌아가면서 세운 몇 개의 기둥모양의 '돌기총(짚신 허리양쪽에 박은 울)'에 줄을 고정시켜 발에 부착시킨 샌들에 가까운 양식을 하고 있었다.

형태적 특성상 전통적인 우리나라 짚신과는 달리 신발 바닥만이 있는 구조로서 일본짚신(草鞋 ; わらし?)과 유사하다.

일본의 전통 짚신인 ‘와라지(草鞋)’는 6~7세기 백제인들이 신었던 짚신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서기 701년 제정한 고대 법전인 대보율령(大寶律令)을 보면

“왕이 하사하는 화(靴·목이 긴 신발)·이(履·관리의 예복용 신발)·안(鞍·말안장)을 백제출신 장인들이 제작하고 있으며 이를 감독하는 수장을 ‘전리(典履)’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중 ‘이’에는 초리(草履), 즉 짚신이 포함돼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는 고대에 짚신 제작기술이 백제에서 일본으로 전해졌음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다.


백제 짚신은 제작기법 또한 섬세하고 정교해 미투리에 가까울 정도였다고 한다.

백제인들이 거친 부들을 사용하여 정교한 짚신을 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수준높은 공예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추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백제 당시에 주로 만들었던 부들 짚신은 현재 짚신의 주재료가 아니어서 백제 멸망후 그 전통이 단절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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