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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광개

[명광개 -무왕의 전략수출상품]

삼국시대에는 무기가 많았다.

특히 유명한 것은 고구려의 철순, 철적, 백제의 명광개와 신라의 목노였다.


한국에서 갑주(갑옷과 투구)의 사용은 삼국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기마(騎馬)의 무장(武將)은 개갑을 착용하였는데, 양식은 중국 북위(北魏)의 토우나 천무상(天武像)의 것과 비슷하다.


백제의 무장을 살펴보면 기존의 몽고발형주와 소찰갑을 발전시킨 형태가 여전히 사용되었으며, 그런 한편으로는 명광개라는 특징적인 형태의 갑옷도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몽고발형주와 소찰갑의 사용은 무순 고이산성과 아차산 제4보루에서 확인되며, 보장왕 4년(645) 대당전투에서 당이 고연수와 고혜진을 패배시키고 소 5만필, 말 5만필, 명광개 만령을 고구려로부터 획득하였다는 기록에서 명광개가 보인다.


■ 명광개


문헌을 통해 보이는 황칠을 발라 입힌 갑옷인 명광개에 대해서 살펴보면,

명광개는 철로 만든 작은 미늘을 엮어서 만든 갑옷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도서 등지에서 자라는 황칠나무에서 뽑아낸 즙을 갑옷 전면에 바른 것으로 햇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을 발하여 상대방의 눈을 부시게 하는 공격형 갑옷이다.

황칠나무

두릅나무과의 상록 활엽 교목, 산기슭의 숲 속에 남, 높이 15m 정도,

잎은 어긋나고 달걀꼴 또는 타원형임, 6월에 양성화가 피는데 산형( 形)

꽃차례로 달리며,10월에 핵과(核果)가 검게 익음, 나무의 즙은 황칠로 씀


백제는 무왕때 당에 보내는 예물로 명광개(明光鎧)(626년), 주갑 및 금갑(金甲)과 조부(雕斧)(639년)를 보내는 바 중국황제가 보고 탐낼 만큼 잘 만들어진 갑옷들이었다고 한다.


백제인들은 쇠가 아닌 동물의 뼈를 갈아서도 갑옷을 만들었다. 몽촌토성출토품 뼈비늘 갑옷 골제찰갑(骨製札甲)이 그것이다.


이렇듯 백제인들이 입었던 갑옷의 윤곽은 밝혀지고 있으나, 투구와 방패가 발견되지 않았다.

'삼국사기'는 갑옷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금갑을 비롯해 금휴개, 명광개(明光鎧)라는 갑옷 이름이 기록되었다.


갑옷으로는 경기도 파주와 청주 신봉동에서 출토된 삼각판혁철갑옷편, 전라남도 장성 만무리에서의 황장판정결판갑, 위에서 언급한 몽촌토성갑옷 등이다.

■ 마름쇠


방어용무기로 마름쇠라는 것이 있었다.

마름쇠는 성 바깥에 깔아 성벽으로 돌진하는 적의 기병의 접근을 막는 철조망과 비슷한 방어용 무기였다.


부소산성(扶蘇山城)에서 불가사리처럼 보이는 철기가 출토되었는데 그것은 4개의 가시로 이루어져 어느 방향으로 놓아도 첨예한 가시 하나가 위쪽을 향해 세워지도록 고안되었다. 그 중에 가장 큰 가시 하나에 구멍을 뚫어 여러 개를 끈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삼국사기에 보면 "기막힌 방어용 무기다. 마름쇠를 끈으로 연결, 성밖에 둘러놓으면 가시덩굴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성벽 위에서 던지면 적을 살상하거나 쫓아버리는 무기 구실을 한다".


백제의 갑옷과 무기만드는 기술이 대단히 발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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