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 옆에 보이는 이상한 문양]
19회를 보면 아좌태자의 파격적인 인사로 기술사의 수장으로서 인사업무를 관장하는 내솔에 임명된 장이가 인명부를 들고 가 공방을 찾아다니면서 기술공들의 면면을 파악하고 있다. 야금공방에 들어서도 조사를 하는데, 옆에 보이는 이상한 무늬의 물건이 하나 있다. 이것을 귀면문 이라 하는데 고대 선인들의 정신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문양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1. 귀면문
도깨비 형체의 얼굴을 나타낸 문양으로 도깨비의 형상을 의인화시켜서 문양화 한 것이다.
무령왕의 요패장식문양으로 쓰인 귀면문은 원래 중국에서 들어온 문양이다.
그 기원은 은나라이후 중국의 청동기에 유행한 도철문과 서역에서 들어온 사자문이 합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중국한대에 그 전형이 완성되었다. 수호신(守護神)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서 그 용도는 주로 궁궐·사원 등 건축물에 쓰인 기와류, 출입문고리, 그 밖의 공예 장식 의장 등에 쓰였다.
한국에서는 특히 벽사의 의미와 관련하여 기와에 많이 사용되었는데, 통구지방에서 고구려의 귀면와당에서 찾을 수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귀면문 기와로서 크게 유행하였다.
백제지역에서는 얼굴만 있는 가면, 전신이 표현된 귀형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귀면형태는 복암리출토 삼루환두대도에 사치형으로 등장하며, 전형적인 형태로는 무령왕 은제요대를 비롯 부여 구교리 출토 청동구면, 부여 가탑리 출토 방형 서까래 기와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귀형은 백제금동대향로의 뚜껑, 규암 외리 출토 문양전 중 2종의 귀형문전 등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백제지역에 귀면문이 유입된 시기는 웅진기로 보인다. 또한 그 의미는 벽사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 이후 귀면문은 전성기의 생명력이 점차 쇠퇴하고 도식적이고 장식적으로 변하였다.
2. 기하문
점(點) 선(線)은 문양 중에서 가장 단순한 것으로 일찍이 원시문양에서부터 전 시대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추상적인 선이나 도형으로 합리적인 규칙성을 지닌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사시대의 토기, 암각화, 청동검, 동경 등에 짧은 선이나 점 등을 찍어 문양을 나타내고 있다. 신석기시대에 빗살무늬토기가 제작되면서 기하문이 나타나는데, 특히 빗살무늬토기는 거의 모두가 기하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기하문 토기라고도 한다. 금속 공예품의 문양으로는 마형대구, 거울에서 보듯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단순 형태의 기하문이 많다. 치장과 동시에 주술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3. 용봉문
백제의 정신세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으로 전통적인 문양은 용봉문(용과 봉황의 무늬)이다.
왕과 지방유력자의 위세품인 나주 신촌리, 천안 용원리, 무령왕릉 환두대도, 익산 입점리 출토 금동제 관모의 봉황문 등은 용과 봉황의 상징성을 빌어 소유자의 권위와 신성함을 나타내고자 했다.
4. 귀갑문
귀갑문은 거북의 등모양을 한 육각형 문양을 말하는데, 거북을 상징하는 장수, 선수(仙壽)를 의미하였다. 거북은 십장생에 속하는 동물로 공예의장에 많이 이용하였다. 문양의 시원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처음 보이며, 육각형의 각 결절점과 내구에 문양이 들어가는 특징이 있다.
중국을 통해 5세기경에 고대 한국으로 유입되어 대형고분의 권위상징물품에 많이 채용되었다. 고구려의 경우 5세기대의 천왕지신총이나 귀갑총의 벽화와 고분벽화에 측시형의 연화와 함께 귀갑문이 등장하였다. 신라지역의 귀갑문유물로는 5세기대의 유적인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은배,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는 식리층의 금동식리(신발) 등이 있다. 식리층의 것은 귀갑문과 금수문을 주요 동기로 하여 정교하게 제작된 것으로 귀갑문의 대표적인 예로 손꼽히고 있다.
백제에서는 복암리 3호분 96호석실 출토이식, 무령왕릉출토 환두대도, 이식, 베개 등에서 발견된다. 복암리 3호분 석실내 4호 옹관 주변에서 나온 금동신발(식리)은 바닥면에 물고기 장식과 표면에 거북등무늬(귀갑문)가 달린 출토품이다. 복암리 3호분 96호석실 출토 식리에서 보면 입점리, 신촌리출토 식리의 능형문 내구의 화문에는 변화가 없지만 능형문은 귀갑문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백제의 귀갑문 도입시기는 5세기후반으로 볼 수 있다. 무령왕릉 출토 유물의 귀갑문은 그 결절점과 내구에 화문이 채용되고 있어 부암리 이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요컨대 백제에서의 귀갑문은 복암리 이식의 시기인 5세기 후반에 처음 도입되어 웅진기의 6세기 후반 무령왕시기에 크게 쓰이다가 왕비의 식리와 베개가 제작되는 무렵에 결절점장식이 없어지는 등 전형에서 벗어나 토착화의 길을 걸었다
5. 연화문
나주 신촌리 고문출토 금동관모, 법천리 4호분 출토 청동뚜껑에서 보듯 불교의 상징적인 무늬인 연화문을 찾을 수 있다.
웅진기에 이르러 무령왕릉대에는 사상적으로 불교문화가 그 중심에 있었다고 믿어진다.
금속공예품에서 보면 왕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관식의 도안이 불상의 광배 등에서 장식으로 쓰이는 화염문과 연화문 위주라는 사실과 특히 왕비의 관식이 연화좌에 안치된 연꽃 꽂힌 병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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