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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의 도시 속초

[新택리지] 사람도 새도 머물러 쉬고 싶다, 석호의 도시 속초

경향닷컴 신동호기자 hudy@khan.co.kr
내 제1명산과 푸른 바다, 호수, 온천, 해수욕장, 항구 등 천혜의 자연 자원과 실향민이 이룬 독특한 문화. 속초를 대표하는 많은 자랑거리 가운데 진짜 보배와 같은 존재는 도심에 자리한 자연 석호가 아닐까.

[화보] 석호의 도시 속초

사람은 자연을 닮는 것인가. 청호대교 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마치 자연이 속초의 역사와 주민의 삶을 미리부터 프로그램해 놓은 듯하다. 인간은 자신이 터전으로 삼고 있는 지리적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속초의 경우는 그것이 매우 뚜렷하면서도 상징적이기까지 하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속초는 독특한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다. 그래서 특별한 발전사를 갖고 있고, 오늘의 특이한 문화와 산업을 이룩했다. 속초의 미래 또한 뭔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는 자리마다 백 가지, 천 가지 진경

청호대교에서 서쪽을 보면 청초호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 시가지가 발달해 있다. 그 너머에 청대산과 달마봉·울산바위, 다시 그 위로 공룡능선을 비롯한 외설악의 암봉과 준령이 겹겹이 둘러쳐져 있다. 반대쪽으로 눈을 돌리면 속초항 부두와 조도 사이로 확 트인 바다가 펼쳐진다.

등대전망대에서 바라본 속초항과 시가지


시가지에서 산과 바다와 호수가 이처럼 아름답게 조망되는 도시가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아 시야에 담기 알맞은 데다 그 생김생김이 기묘하면서도 서로 잘 어울린다. 동해와 설악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청초호는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영동의 호수 가운데 유일하게 관동팔경의 하나로 직접 거론했던 곳이다.

속초는 전망이 좋은 도시다. ‘속초팔경’ 가운데 제1경으로 치는 등대전망대를 비롯해 영금정, 외옹치, 내물치(설악해맞이공원), 청대산 등에서 바라보는 설악산과 동해와 시가지의 경관이 환상적이다. 속초팔경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거기서 바라보는 근경과 원경이 잘 조화된 데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팔경으로 꼽은 곳만이 아니다. 속초엑스포타워 전망대와 같이 높은 곳이나 청호대교처럼 사방이 트인 곳은 물론 시내 어느 곳에서도 각도에 따라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는 백 가지, 천 가지 진경이 연출된다.

비좁은 지세가 집약적 관광에 도움

예전에는 이런 모습이 ‘한때 유람하기 좋은 곳’이라는 찬사를 듣는 데 그쳤다. 이중환이 영동 아홉 고을을 일컬어 “이름난 호수와 기이한 바위가 많아 높은 데 오르면 푸른 바다가 넓고 멀리 아득하게 보이고 골짜기에 들어서면 물과 돌이 아늑하여 경치가 나라 안에서 참으로 제일이다”고 표현한 부분은 속초의 자연 경관과 딱 들어맞는다. 경치가 좋은 곳이라면 먼 곳까지 찾아다녔던 신라 화랑들도 영랑이 머문 속초의 영랑호를 순례 도장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속초의 석호 가운데 하나인 영랑호


하지만 경치가 좋다고 해서 꼭 그 지역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속초의 산업구조는 관광 관련업이 75%에 이를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는 최근의 일이다. 조선시대 속초는 양양도호부에 소속된 작은 동리였고, 1937년까지 면소재지도 현재 시의 중심지인 속초리(영랑·동명·중앙·금호동 등)가 아니라 대포리였다. 그런데 1963년 시로 승격되어 양양보다 오히려 인구가 3배 가까이 많은 도시로 발전한 까닭은 다른 데 있다.

과거 속초리는 청호대교가 지나는 청초호와 그보다 더 북쪽에 자리한 영랑호 사이에 있었다. 동서로는 바다와 산, 남북으로는 호수에 막힌 마을이었다. 태백산맥과 동해가 40km 안팎에 있어 지세가 비좁은 것이 영동지역의 공통적인 특징이지만 속초는 불과 남북 2km 거리에 호수가 나란히 있다는 점이 다르다. 더욱이 속초 해안과 설악산의 주능선은 직선거리로 짧은 곳은 15km가 채 되지 않는다.

속초의 장점은 바로 이 비좁은 지세, 즉 ‘막힘’에 있지 않을까. 속초의 면적은 강원도 시군에서 가장 적다. 전국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홍천군의 17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 인구는 홍천군보다 더 많고, 관광객 수는 연 1000만 명에 이른다. 땅이 좁은 곳에 그만한 관광객이 찾는다는 것은 관광 자원과 시설이 매우 집약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뜻이 된다.

모래톱에 갇힌 바다, 휴전선에 막힌 실향민

청초호는 여기에 용의 눈을 그려 넣은 것과 같다고 할 만하다. 속초가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에 청초호를 항구로 개발하면서부터다. 청초호는 바닷물이 내륙으로 들어왔다가 사취나 사주에 의해 바다와 분리돼 만들어진 석호(潟湖)다. 강릉의 경포호·향호·풍호, 양양의 매호·쌍호, 고성의 화진포호·송지호 등 동해안 호수가 다 그렇다. 강릉 이북에 많은 석호가 있지만 속초의 청초호와 영랑호처럼 한 곳에 나란히 발달한 경우는 드물다. 속초가 많은 자랑거리를 갖고 있지만 약 3000년 전에 만들어진 석호가 속초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가치를 밝혀줄 가장 소중한 보석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석호는 바다와 완전히 격리된 것도 있지만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해일이나 강한 파도로 인해 바닷물이 유입되는 이른바 갯터짐 현상 등을 통해 해수와 담수가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깨끗함을 유지한다. 청초호는 갯배가 건너다니는 수로를 통해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데, 지금도 동명항으로 더 잘 알려진 속초항의 내항으로도 이용된다.

속초가 바다가 막혀 자연적으로 형성된 석호를 기반으로 항구가 만들어지면서 읍으로 발전했다면, 시로 도약한 것은 ‘인위적인 막힘’에 의해서다. 청호대교 북단 해안 쪽에 실향민촌으로 유명한 ‘아바이마을’이 있다. 1953년 휴전선이 그어지자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이북 피난민들이 속초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동명항 입구에 북향으로 세운 수복기념탑


맨몸으로 피난길에 올랐던 이들은 나중에 청호동이라는 지명을 얻은 청초호 해안 쪽 모래톱에 움집을 짓고 살았다. 속초를 ‘실향민의 도시’라고 하는 것은 이들이 악착같이 일해 속초의 상권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이북 각지의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문화를 일궜기 때문이다. 반세기가 지나면서 실향민 1세대가 대부분 세상을 뜨고 아바이마을도 속초항 방파제 연장공사 등으로 인해 사라질 운명이지만 이들이 ‘재구성’한 속초의 경제적 토대와 삶의 방식, 지역 문화 등은 오래도록 속초의 것으로 남을 것이다.

어업·관광도시에서 해양·물류유통도시로

속초시청 통계에 따르면 1986년 약 7만 명이던 속초의 인구는 2001년 9만 명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그 뒤부터 매년 조금씩 줄어 2006년 8만6000여 명을 기록했다. 젊은층의 대도시 쏠림과 출산율 저하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볼 수 있겠지만 채용생 속초시장은 이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속초시 인구 늘리기 시책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시행하는 등 직접적인 대책뿐 아니라 기존 산업을 조정하고 신규 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에 주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속초의 명물 아바이마을 갯배


속초를 대표하는 산업은 어업과 관광이다. 관광은 경기에 민감하고 어업은 자원 고갈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속초시는 관광 부분은 더욱 업그레이드하고 어업은 러시아·북한·일본의 활어류를 보관하고 기르고 유통하는 축양산업으로 체질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기존의 젓갈산업을 현대화하고 해양심층수 산업을 유치한 것도 그 일환이다. 올 3월에는 속초항과 일본 니이가타항, 러시아 자루비노항을 연결하는 삼각 국제항로가 개설된다. 속초항 부두의 접안시설도 늘리고 있다. 어업·관광도시에서 해양·물류유통도시로 거듭나겠다는 게 속초의 미래 비전이다.

막힘과 뚫림은 정반대의 뜻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별 차이가 없을 수 있다. 이미 미시령 터널이 설악산을 관통했고, 동서고속도로와 용대터널이 개통되면 그 벽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바다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라 해양으로 뻗어나가는 넓은 길이 됐다. 청초호와 영랑호 역시 시가지의 발달로 속초시의 품에 안긴 지 오래다. 청초호는 엑스포공원, 영랑호는 산책로 및 드라이브 코스로 시민에게 휴식과 정서적 즐거움을 주고 있다.

속초가 지켜야 할 진짜 보배

청초호와 영랑호가 속초시의 보배라는 까닭은 또 있다. 동해안 석호는 퇴적물을 통해 1만 년 동안의 해양환경과 기후변화를 알려주는 ‘자연의 기록관’이라고 할 수 있다. 담수와 해수가 섞이는 기수(汽水) 환경으로 인해 민물고기와 바닷고기가 공존하는 등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어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한다. 말하자면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기도 한 셈이다.

시베리아 캄차카반도에서 동남아, 호주, 뉴질랜드까지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는 철새와 나그네새에게는 먹잇감이 풍부한 동해안 석호는 좋은 산란지이자 중간 기착지다. 청초호는 1990년대 유원지 개발과 관광엑스포 유치로 약 40%가 매립됐지만 호수로 흘러드는 청초천 하구가 잘 발달되어 지금도 80여 종의 새가 찾아든다는 게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의 조사 결과다. 천연기념물인 큰고니·개리·원앙·흰꼬리수리·노랑부리백로·저어새와 멸종위기종인 말똥가리·가창오리·큰기러기 등 희귀조들을 도심에서, 그것도 망원경 없이 맨눈으로 볼 수 있어 최근 각광받는 탐조관광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영랑호는 2007년 백로·왜가리 번식지가 발견돼 화제가 된 곳이다. 여름엔 주변 산에 파랑새·석호반새·꾀꼬리가 번식하고 겨울엔 잠수성 물새가 많이 관찰된다고 한다. 텃새는 물론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철새·나그네새에게 서식 환경의 파괴나 악화는 죽음을 뜻한다. 환경의 바로미터인 새가 찾지 않는 곳은 사람이 살기에도 좋지 않은 환경일 것이다. 관광객만이 아니라 새도 떼 지어 몰려오는 도시, 청초호와 영랑호가 수준 높은 ‘심화 관광’ 도시를 꿈꾸는 속초의 진짜 보배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경향닷컴 신동호기자 hudy@khan.co.kr〉

가는길/
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영동고속도로 강릉분기점에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현남나들목에 이르러 7번국도로 들어선다. 양양을 거쳐 속초에 이른다. 국도로는 서울에서 팔당을 거쳐 양평(6번국도), 홍천(44번국도), 인제(56번국도), 원통, 미시령터널을 통과한다. 서울에서는 고속도로보다 국도를 타는 게 빠르다(2시간대). 고속버스는 서울 강남·동서울터미널에서 타면 3시간40분, 3시간30분이 각각 걸린다.

연락처/
종합관광안내소 033-639-2690
시외버스터미널 관광안내소 033-639-2830
고속터미널 관광안내소 033-639-2689
해맞이공원 관광안내소 033-635-2003

맛집/
일월회집/ 장사동 577-28 장사항이 보이는 횟집단지에 있다. 깨끗한 분위기에서 가자미회, 오징어회, 도루묵회 등을 맛볼 수 있다. 033-631-5533
단천식당/ 청호동 842번지 속칭 ‘아바이마을’ 안에 있다. 아바이순대로 유명하다. 033-632-7828
경호횟짐/ 동명동 1-190 바다가 보이는 3층 건물에 있다. 11년 횟집을 운영한 노하우를 자랑한다. 033-632-4355

숙박
속초로얄관광호텔/ 중앙동 478-19 시내 중심가에 있다. 바다와 인접해 객실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 033-631-8700
영랑호리조트/ 금호동 600-7 영랑호 가에 있다. 호텔식 타워콘도와 단독형 빌라콘도, 영랑호CC, 식염수온천사우나 등 부대시설을 갖춘 종합레저타운이다. 033-633-0001
KL모텔/ 조양동 1554-3 엑스포타운에 있다. 청초호가 조망되며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033-631-7800
[소읍기행]군침 도는 작은 포구, 속초 대포항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새벽이면 작은 어선으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 전문 어항의 자리를 내주고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사람 냄새를 풍기는 속초 대포항은 겨울에도 활기차다.

[화보] 속초 '대포항'

“싸게 줄게. 먹고 가~”

대한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 속초 대포항의 아침은 분주했다. 몇 m를 못 가고 발길을 붙잡는 호객행위가 싫지만은 않다. 여름이면 북새통이던 곳이 겨울을 만나 여유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날 오후 3시 바다로 나갔던 배들이 새벽 무렵 포구로 들어왔다. 즉석에서 열리는 경매장은 사뭇 진지하다. 오징어 배 선장은 오징어 대신 복만 잡힌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대뜸 가시복을 내밀며 장난을 건다. 밤샘 고기잡이의 피곤은 어느새 미소로 변한다.

경매가 열리는 난전에서는 방금 배에서 올린 생선을 다듬는다. 넙치, 가자미, 방어부터 못난이 생선인 도치, 곰치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익숙하고 빠른 손놀림에 길게 선 손님 줄이 금세 짧아진다. 새벽 대포항 난전에는 사람 반, 갈매기 반이다. 생선 내장은 갈매기 차지다. 갈매기를 찍기 위해 다가서자 아주머니가 황급히 말린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갈매기 식사 시간을 방해한단다. 갈매기는 대포항의 또 다른 손님이다.

대포항은 속초항에 전문 어항의 자리를 내줬다. 대신 작은 어선들이 드나들며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500여m의 진입로에는 빼곡히 노점상이 들어서 있다. 오징어튀김, 새우튀김부터 오징어순대까지 비슷비슷한 먹을거리를 판다. 설악과 속초 관광에 나섰던 사람들도 잠시 들러 요기를 한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사람 사는 냄새가 폴폴 풍기는 곳, 대포항이 여전히 인기 있는 비결이다.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숙박/
그배호텔/ 대포항과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에 위치해 있다. 관광호텔로 2인실 숙박료가 6만~8만원이다. 033-635-6644
파도모텔/ 대포항 난전 바로 앞에 있다. 대포항이 한눈에 보일 뿐 아니라 건물 2층에는 30년을 이어온 파도횟집이 있다. 성수기 객실료는 5만 원 정도다. 033-635-3737

맛집/
섭죽마을/ 섭(홍합)죽과 홍게죽, 곰치탕을 맛깔나게 내놓는다. 속초 성호아파트에서 대포 방향으로 100m 정도 가면 보인다. 033-635-4279
대포항 먹거리 좌판/ 오징어튀김, 새우튀김부터 오징어순대까지 비슷비슷한 먹을거리를 판다. 난전에서 회를 뜬 뒤 튀김을 함께 사가는 사람도 많다.

가는길/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IC에서 속초 방면으로 나간다. 부산에서 올라오는 7번국도를 따라 양양을 거쳐 속초로 올라간다. 7번국도가 속초를 지나는 초입에서 대포항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