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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청정 곳간’ 인제

[新택리지]심산유곡, 그 ‘자연’이 희망이다, 마지막 ‘청정 곳간’ 인제

김석종 선임기자 sjkim@kyunghyang.com
백두대간의 한복판에 솟은 높고 가파른 산줄기들. 울창한 원시림을 뚫고 쏟아져 내리는 맑은 계곡수. 마지막 청정지대이자 생태계의 보고인 인제. 청정 이미지와 싱싱한 먹을거리로 참살이 녹색산촌마을을 꿈꾼다.

[화보]‘마지막 청정 곳간’ 인제

산악과 군인은 오랫동안 인제의 상징이었다. 인제 땅 가는 길은 참 멀고도 험했다. 겨울은 길고 추위는 혹독했다. 오죽하면 군인들 사이에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넋두리가 생겨났을까. ‘땅은 넓고 사람은 적은 곳’이라는 인제는 여전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오지로 꼽힌다. 북쪽은 휴전선으로 막혀 있고, 다른 쪽은 모두 험한 산을 두르고 있다. 설악산을 비롯해 향로봉, 응봉산, 점봉산, 대암산, 방태산, 소뿔산, 주억봉, 구룡덕봉, 가칠봉, 한석산, 매봉, 안산, 가리봉, 가마봉 등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즐비하다.

“인제 가면 좋을시고, 원통에서 살자꾸나”

<강원총람>에 따르면 인제에는 1000m가 넘는 산이 무려 96개, 800m가 넘는 봉우리는 강원도 전체의 5분의 1인 200개가 넘게 솟아 있다. 산이 많고 가파른 만큼 주민들은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곰배령, 박달령(단목령), 북암령, 조침령, 광치령 같은 고갯길을 넘어야 대처로 나가고, 장을 보러 다닐 수 있었다. 전체 면적의 91%가 산과 강일 정도로 궁벽한 산골. 현대화는 이처럼 열악한 환경의 깊은 산골 인제 땅에서 사람들을 떠나게 했다.

강원도청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인제군의 인구는 1970년대 6만여 명, 80년대 4만여 명, 90년대 이후 3만 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온 나라가 개발의 몸살을 앓던 때도 인제는 가장 뒤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인제에는 아직도 공장이나 흔한 대규모 위락단지, 특급호텔 하나 없다.

백두산 고산지대의 점봉산 자락 진동계곡<김석종기자>

달라진 세상은 인제가 처한 교통·산업·자연의 악조건들을 새롭게 바꿔놓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접근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인제를 가르는 국도는 왕복 4차선 도로로 확 넓어졌다. 군축령, 미시령, 조침령, 광치령 등 험한 고갯길은 대부분 터널이 뚫렸다. 산촌 오지까지 아스팔트길이 연결됐다.

지긋지긋했던 북풍한설은 이제 주민들을 풍요롭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소양호는 겨울철 100만 명 넘게 다녀가는 국내 최고의 빙어낚시터다. 용대리 덕장에서 겨울바람에 말리는 황태는 국내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오염과는 거리가 먼 자연환경도 웰빙(참살이) 시대의 큰 자산이 됐다. 최근 환경부의 대기오염 측정에서 인제는 전국 제일의 청정지역으로 꼽혔다. 서울대는 우리나라 남성 최장수 지역으로 발표했다. 인제 사람들은 벌써부터 “인제 가면 좋을시고, 원통에서 살자꾸나”라고 자랑한다.

모험과 레포츠 천국으로 거듭난 ‘제일산수’

인제군은 ‘청정과 모험’을 관광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다. ‘설악산’ 편에서 자세히 설명되겠지만 설악산의 70%를 차지한 인제군 내설악 지역은 이 군의 대표적인 명소다. 주봉인 대청봉을 비롯해 백담사, 봉정암, 오세암, 백담계곡, 가야동계곡, 용아장성, 대승폭포 등 내설악 명소들이 등산객과 불교 참배객을 불러 모은다.

생태계가 잘 보존된 맑은 계곡<김석종기자>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내린천은 국내 래프팅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합강정 강변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번지점프대가 있다. 내린천 지류의 산악지대는 트래킹과 산악자전거, 패러글라이딩, 암벽·빙벽타기 등 짜릿한 모험과 체험 레포츠의 명소로 꼽힌다. 산악자전거대회, 마라톤대회, 모의전투대회(서든어택 얼라이브) 대회, 얼음축구대회, 빙벽등반대회 등이 열린다.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야생화 천국 곰배령, 눈꽃이 화려한 진동2리 설피밭은 트래킹 명소로 인기가 높다. 인제군은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 자동차경주장을 포함한 ‘국제오토테마파크’ 관광지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현대판 ‘피장처’가 바로 여기다

내린천을 따라가는 31번 국도는 옛날만큼 평화로운 풍경은 아니다. 경치 좋은 곳마다 펜션이라는 이름의 숙소가 밀집해 있다. 그나마 포장도로가 자연을 크게 해치지 않고 구절양장 강마을 산마을을 잇는다. 내린천의 지류를 따라 산중으로 들어가면 양지바른 곳마다 집들이 한두 채씩 앉아 있다. 약초와 산나물을 캐거나 토봉을 치는 화전민의 후예들이 산다. 산사람, 치병자, 도사, 산장지기, 화가 등 도시를 버리고 들어온 은둔자들도 진동계곡, 미산계곡, 개인동계곡, 아침가리계곡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멋진 통나무집이나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여유를 즐기며 사는 가족도 많다.

<정감록>은 이 일대의 삼둔사가리를 피장처로 꼽았다고 한다. 달둔·살둔·월둔의 삼둔은 내린천 최상류인 홍천 쪽에 있고, 아침가리·곁가리·적가리·연가리의 사가리는 인제 쪽 방태산 북쪽에 있다. 이중한은 <택리지>에서 계곡이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250년의 시차를 두고 심신의 평화와 행복한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인제 계곡을 찾아드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요즘의 도시생활이 전쟁터 아닌가. 줄곧 줄던 인제 인구가 2003년 이후 해마다 몇 백 명씩 늘어난 것도 이곳을 새 삶터로 삼는 사람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제 뗏목아리랑과 산촌문화

인제 지역 삼림은 나라에서 황장금표를 세울 정도로 울창했다. 산에서 베어낸 질 좋은 목재는 합강에서 뗏목을 만들어 소양강, 북한강을 거쳐 한양으로 옮겼다. 북한강의 인제 뗏목은 남한강의 영월 뗏목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뗏목이었다.

심산유곡 사람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숯을 굽고, 함지박·남박 같은 기물을 만들고, 산삼·약초·목청·석청을 채취하며 살았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산촌 마을이 만들어낸 독특한 생활사·민속사는 대부분 사라졌다. 다행히 2003년 국내 최초로 개관한 인제읍내의 인제산촌박물관에서 귀틀집(토막집)과 디딜방앗간, 뗏목, 숯가마, 세시풍속, 음식 등 이 고장 산촌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다.

인제에서 가장 유서 깊은 정자인 합강정<김석종기자>

남면 김부리의 김부대왕각, 옥쇄바위, 다물마을, 김부대왕묘터, 한계산성 등에는 마의태자가 신라 부흥운동을 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이곳은 마의태자가 세상을 등지고 숨어들었다는 금강산과 가까운 곳이다. 김부대왕각에서는 주민들이 1000년 동안 대동제를 이어왔으며, 지금은 마의태자 후손인 통천·부령김씨 문중에서 제사를 모시고 있다. 인제는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1926-1956)과 <부초>의 작가 한수산이 태어난 곳이다. 합강정에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으로 시작되는 <세월이 가면>이 새겨진 박인환 시비가 있다. 북면 한계1리에 자리한 ‘내설악 예술인 마을’은 서양화가 강명순, 김종상씨 등 예술인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본디 특산물을 되살린다

옛날 이 고장에서만 나는 ‘무심이’라는 씨 없는 배는 조선시대 진상품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배나무가 완전히 사라졌다. 무심이와 함께 인제 특산 영약이었던 산삼, 석청, 목청을 보기도 어렵다. 그래도 인제의 청정 자연은 여전히 이 고장의 보물창고이자 곳간이다. 환경 오염과 거리가 먼 방태산, 가칠봉, 응봉산 숲에서 따고 캐낸 더덕, 참나물, 두릅, 곰취, 고비 같은 산나물과 송이버섯, 느타리버섯, 석이버섯 같은 버섯류, 산양삼, 토종꿀 등 산중 산물들은 시장에서 최상품으로 쳐준다. 최근에는 황태와 함께 고산에서 키운 치커리와 인진쑥, 방태산 고로쇠, 질이 좋은 참숯, 남원목기와 쌍벽을 이루던 인제목기의 맥을 이은 목공예품이 인제 특산물에 추가됐다. 인제군은 인제의 쌀과 밭곡식을 포함한 이런 농특산물을 ‘하늘내린’이라는 브랜드로 특화하고 있다. 하늘이 내린 천혜의 자연과 내린천을 합쳐 만든 상표다. 군은 부가가치가 높은 고산지대의 산양삼과 토종꿀(목청) 생산량을 늘려 인제 명품 특산물로 내놓을 계획이다.

천년 고찰 백담사 스님들의 참선 수행<이다일기자>

고구려 때 저족현이었던 인제는 신라 때 희재현이었다가 고려 때 ‘기린 린(麟)’자를 쓴 인제라는 이름을 얻었다. 기린면과 내린천도 기린에서 연유했다. 기린은 상상의 동물이다. 인제 지역에는 사슴이 100년 묵으면 기린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향토사학자 최병헌씨는 “관청의 문서 등 인제 지역 사슴의 밀렵을 금한다는 기록이 여럿 보인다”며 “개인산 등에서 사슴을 목격했는데 광복 직전에 사라졌다는 노인들의 증언도 있다”고 말했다. 인제군과 환경단체들은 요즘 멸종된 토종 사슴 복원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원시림과 깊은 계곡 사이로 사슴이 평화롭게 뛰어다니는 인제를 꿈꾼다.

깊은 산 맑은 물이 21세기 희망이다.

인제군청 마당 커다란 돌에는 ‘제일산수(第一山水)’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인제군은 산림청과 함께 산촌생태마을 조성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원시림과 청정계곡의 장점을 생산·문화·관광에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사업이다. 박삼래 인제군수는 “천혜의 산림자원을 바탕으로 생산·문화·관광에 최대한 활용해 주민들의 삶의 질이 높은 산촌, 도시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산촌, 고소득을 올리는 산촌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21세기의 화두로 녹색, 친환경, 삶의 질을 꼽는 사람이 많다. ‘무공해 인제’는 그런 꿈을 실현하기에 가장 맞춤한 곳이다.

〈김석종 선임기자 sjkim@kyunghyang.com〉


가는길/
서울에서 인제로 갈 때는 6번 국도를 타고 양평에서 44번 국도로 갈아탄 다음 홍천을 지난다. 인제~원통~한계리 삼거리까지 왕복 4차선이다. 44번 국도는 한계령을 거쳐 양양으로 이어진다. 46번 국도는 진부령을 지나 고성에 닿는다. 합강정에서 우회전해 31번 국도를 타면 내린천 길이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2시간 40분), 상봉터미널(2시간 40분)에서 탈 수 있다.

연락처/
인제군 문화관광과 033-460-2082
인제군 관광안내센터 033-460-2170
내설악 관광안내소 033-461-0866
인제군 농업기술센터 033-461-2766

맛집/
나무꾼과 선녀/ 황태요리 전문. 북면 용대리 미시령 삼거리에서 속초방면 왼쪽 산자락에 있다. 황태구이 정식, 황태찜 정식, 황태국밥이 맛있다. 033-462-3957
방태산황토식당/ 내린천과 방태산자연휴양림 사이에 있다. 엄나무황기백숙, 민물매운탕, 곤드레밥, 산채비빔밥, 감자전, 도토리묵이 있다. 033-463-5488
진동산채가/ 진동계곡 입구에 있는 산채정식 전문점이다. 산골정식, 산채비빔밥이 있다. 석이버섯, 참나물, 곰취, 고사리 등 방태산 주변에서 뜯어온 산채로 차리는 식탁이 싱그럽다. 033-463-8484
방동막국수/ 감자를 갈아 부친 감자전이나 편육에 메밀향이 짙은 묵직한 맛의 막국수를 곁들인다. 033-461-0419

숙박/
하늘내린호텔/ 인제에서 가장 시설이 뛰어나다. 인제읍에 있다. 033-463-5700
아침햇살펜션/ 상남면 미산계곡 근처. 내린천 주변과 진동계곡, 미산계곡 등에 펜션이 즐비하다. 033-463-5006
꽃님이네집/ 기린면 진동2리 설피마을에 있다. 진동 2리에 펜션·민박이 많다.
[소읍기행]되살아난 ‘님의침묵’의 산실, 인제군 만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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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난 건물이 있다. 회색 건물 속에 '만해사'를 비롯해 문인의집, 만해문학박물관 등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시설들이 들어섰다. 강원도 인제 백담사 입구에 위치한 만해마을은 나라를 품어내는 사색의 공간이다.

[화보] 인제군 만해마을

조용하다. 소복소복 내리는 눈에 발걸음도 조심스럽다. 회색 콘크리트벽은 강원도 산속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콘크리트마저 자연스럽다. 치장하지 않은 콘크리트벽 그대로다.

백담사에 놓인 것과 같은 만해의 흉상이 박물관 입구에 놓여있다. 만해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고자 함이다.〈이다일기자〉


2003년 8월 완공된 '만해마을'은 (재)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만해의 자유사상, 진보사상, 민족사상을 기리고 실천하기 위해 만들었다. 박물관, 문인의집을 비롯해 운동장, 강당, 광장까지 갖췄다. 작은 마을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만해마을에는 문인들을 위한 집필실이 있다. 길게는 넉 달까지 머물며 글을 쓴다. 만해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이 아름답지만 문인들은 산을 바라보고 산다. 빠르게 흐르는 길과 물보다 천천히 움직이는 산이 더 좋다는 이유다.

내설악의 사계를 그대로 느낄 수 있으니 어느 계절에 이곳을 찾아도 좋다. 곳곳에 시와 글이 적혀 있다. 머물기만 해도 누구나 문인이 될 법하다. 때마침 추운 겨울날 찾아가 벤치에 앉는 여유를 부리진 못했지만 푸른 잎이 돋아나는 5월쯤엔 따뜻한 햇살을 즐기기 좋을 것이다.

만해마을은 고즈넉한 공간에 격동적인 시간을 담았다. 민족과 나라를 위해 외치던 만해의 사상은 시대를 넘어 이곳에 자리했다. 내설악의 조용한 공간은 콘크리트로 치장했을 뿐 그대로 내설악 백담사 앞에 자리 잡고 있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

(관련정보)

인터넷 홈페이지 http://manhae.net 를 이용하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만해마을 숙박도 이곳을 통해 예약 가능하다.

숙박/
만해마을/ 개인과 단체 모두 예약 후 이용할 수 있다., 033-462-2303
파인밸리/ 용대리 백담사 입구에 위치했다. 무선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033-462-8955

맛집/
사계절식당/ 백담사 입구에 위치, 황태와 더덕구이가 별미다. 033-462-8133
백담순두부/ 1989년 백담계곡에 처음 개업한 식당, 콩으로 만드는 요리가 일품이다. 033-462-9395

가는길/
동서울 터미널에서 속초행 버스를 타면 백담사입구에 내릴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려 약 20분정도 걸어야 한다. 승용차로는 인제를 지나 미시령 터널로 향한다. 십이선녀탕 휴게소를 지나면 우측에 만해마을 안내판이 보인다.
[길,숲,섬]한계령의 눈물로 설악산에 묻히다, 인제군 장수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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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 강원도 인제 일대에 쏟아진 폭우는 장수대 숲의 대부분을 앗아갔다. 6․25전쟁 당시 한계령 골짜기에서 전몰한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장수대는 벌거숭이 숲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장수대숲을 찾은 건 기온이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혹한 속이었다.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됐던 장수대 소나무숲은 날씨만큼이나 썰렁했다. 단풍나무, 피나무, 박달나무 등 천연활엽수 사이로 빼곡했던 소나무 군락은 감쪽같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마치 눈썰매장을 만들다 만 것 같은 텅 빈 비탈은 눈으로 덮여 있었고, 그 아래쪽 평지는 계곡으로 변해 있었다.

외롭더라도 자연에게 살점을 내 주리니

2006년 여름 이 일대에 어마어마한 폭우가 내렸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 내설악에 위치한 한계리였다. 한계리 마을은 물론이고, 한계령 길 자체가 물에 잠겨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캠프장을 찾았던 방문객 2명이 실종됐고, 마을 주민도 폭우에 휩쓸려 유명을 달리했다. 비가 그친 뒤 찾아간 장수대숲은 원래 넓이의 60% 이상인 151.2㏊를 잃은 상태였다. 아름드리 소나무는 한계령의 눈물에 휩쓸려갔고 캠프장은 영구 폐쇄됐다.

장수대 소나무 숲 폭우가 남긴 벌거숭이 언덕/ 억지로 소나무를 심어 장수대 숲을 복원할 계획은 없다. 홍수가 남기고 간 모습 또한 설악산의 새로운 풍경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이다일기자〉


☞ [화보]인제군 장수대 숲

설악산국립공원 장수분소 직원의 소개를 받아 옛 캠프장을 찾아갔다. 한때 내설악의 절경을 보러 온 사람들의 쉼터였던 이곳에 지금은 야영금지 팻말이 붙어 있다. 폭우에게 살점을 내어 준 숲을 한결같이 지키고 있는 장수대가 외로워보였다.

장수분소 직원은 다시 야영장을 여는 일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억지로 소나무를 심어 장수대숲을 복원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홍수가 남기고 간 모습 또한 설악산의 새로운 풍경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은 과거로 사라졌지만, 거대한 자연의 힘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리라.

대승폭포로 가는 길목에서



장수대숲이 예전만 못하다 하여 실망하기는 이르다. 여전히 장수대는 내설악 등산로 곳곳으로 이어지는 길을 터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꼭 가봐야 할 코스가 대승폭포까지 이어주는 0.9km의 길이다. 높이 88m의 대승폭포는 금강산 구룡폭포, 개성 천마산 박연폭포와 함께 국내 3대 폭포로 꼽힌다.

설악산국립공원 장수분소 사무실 뒤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눈이 얼어붙어 미끄러운 곳도 있었지만, 산기슭을 타고 계단이 잘 정돈돼 있어 겨울 산행치고는 푸근하다. 길을 따라 올라가는 곳곳에서 장수대숲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눈을 들면 솜사탕처럼 얽힌 구름과 우아하게 절벽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가 아찔하게 다가온다.

여전히 아름다운 내설악의 풍광

50분 정도 오르니 88m 물줄기가 꽁꽁 얼어붙어 사진의 한 장면처럼 멎어버린 대승폭포를 만난다. 날이 풀려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린다면 무서운 마음이 들 정도로 거대한 높이다. 춥다고 오르지 않았더라면 별천지와 같은 겨울 대승폭포를 놓치고만 말았을 터. 살점이 떨어져나간 장수대숲은 다시 볼 수 없지만, 장수대가 인도하는 내설악의 풍광은 여전히 아름답다.

장수대는 인제에서 한계령을 넘는 길 옆에 우아하게 서 있는 한옥의 이름이다. 거기에는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 제3군단장 소장 오덕준 장군은 6․25전쟁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한계령 골짜기를 잊지 못했다. 1959년 10월 100여명이 묵을 수 있는 산장을 지어 장수들의 넋을 위로한 것이 장수대의 유래다. 장병들의 넋이 서린 장수대숲은 자연의 위력을 역설이라도 하듯 한계령의 눈물을 머금고 설악산을 지키는 것만 같다.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가는 길
승용차를 이용한다면 양평~홍천~인제를 잇는 국도를 타는 것이 빠르다. 인제에서 한계령 방면 44번 국도에 올라 8.6km를 가면 옥녀탕 팻말이 보인다. 조금 더 길을 타고 가면 설악산국립공원 장수분소와 장수대를 만날 수 있다.

숙박 및 맛집
장수가든(펜션)/ 가든과 펜션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산채돌솥비빔밥을 시키면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황태국이 함께 나온다. 펜션은 2인실부터 30인실까지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바로 앞에 장수대가 있어 관광객이 이용하기 좋다. 033-463-5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