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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놀던 아스라한 곳 ‘통일1번지’ 고성

[新택리지]신선이 놀던 아스라한 곳 ‘통일1번지’ 고성

<경향닷컴 신동호기자 hudy@khan.co.kr>
남한 동북단에 북한과 접경하고 있는 분단군이다. 면적은 약 664㎢(북한 지역 853㎢), 인구는 3만2500여 명이다. 전체 면적의 46%가 군사보호구역으로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 산과 계곡, 하천, 호수, 해안, 섬 등 자연 풍광이 수려하고 청정하다. 56km에 이르는 해안에 26개의 해수욕장이 있는데, 밟으면 소리가 나는 명사(鳴砂)로 유명하다.

한반도 지도를 펴면 휴전선이 동쪽으로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고성군 경계에 이르러 가파르게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6·25전쟁이 터진 직후부터 휴전 직전까지 계속된 향로봉·건봉산·월비산·351고지 등의 치열했던 전투 결과다. 전국 230개 자치 시·군·구 가운데 고성군이 특별한 점은 우선 여기에 있다.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다 속초를 지나면 공기부터가 다른 느낌이다. 각종 통제선과 군사 시설이 눈에 띄는 빈도가 부쩍 잦아진다. 흉물스런 철조망 대신 금속 울타리나 목책으로 많이 바꾸었지만 분단 현실을 체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 [화보] ‘통일1번지’ 고성

지구상에서 단 하나뿐인 자산

고성은 분단국 가운데서도 분단도에 속한 분단군이다. 나라가 나뉜 것도 서러운데 도까지 남북으로 갈리고 군마저 반 토막이 났다. 분단군으로는 철원도 있지만 고성이야말로 그 아픔이 가장 큰 군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의 동북단에 위치한 데다 군 자체가 남북으로 갈렸으니 지리적으로는 최고 변방이고 행정적으로는 파행지역이다. 산맥과 민통선에 막히고 군사적 이유로 개발마저 극도로 제약되는 등 모든 면에서 발전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 <신동호기자>

바로 이것이 고성의 미래 자산이다. 개발에서 뒤처졌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이 깨끗하고 앞으로 이용할 한계자원이 많다는 뜻이다.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고장’이라는 고성군 홈페이지의 대문글이 이를 잘 함축한다. 단장의 아픔을 준 분단 역시 이제는 희귀한 자원이 됐다. 비무장지대는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으며 지금도 살아 있는 냉전박물관이자 자연생태공원이다. 금강산이 바라다 보이는 통일전망대와 전쟁체험관, 남북교류타운, 남한 최북단 명파마을과 오는 7월에 개관할 DMZ박물관 등은 분단의 상처도 발상을 바꾸면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지난해 7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고성군의 손실이 월 26억 원에 이른다는 군 관계자의 얘기가 이를 반증한다. 어쨌든 ‘녹색성장, 통일고성’이라는 군정 슬로건처럼 고성은 깨끗한 자연 환경과 ‘통일관광 1번지’임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분단과 통일은 고성과 질긴 인연이 있다. 지금의 남고성과 북고성은 신라시대까지 다른 군이었다. 두 군의 ‘통일’은 고려 초에 처음 이뤄졌다. 지금의 남고성인 수성군을 간성군으로 개명하고 고성으로 불린 지금의 북고성까지 관할하게 한 것이다. 고려 말 간성과 고성은 다시 분리되어 조선 말까지 이어졌다. 일제시대에는 1914년 두 군을 합쳐 간성군이라고 부르다가 1919년 5월 고성군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6·25전쟁 후 옛 고성군은 북한, 간성군은 남한의 영역에 들어 또 다시 분단됐다. 양측은 일제 때 확립된 고성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 고성과 간성은 역사적으로 다른 행정 단위로 존재한 기간이 더 길었고, 합쳐졌을 때는 간성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경우가 더 많았다. 한글과 인터넷 사용으로 강원도 고성(高城)과 경남 고성(固城)의 군명은 많은 불편과 혼동을 야기한다. 고성군 향토사가인 김광섭씨(고성향토문화연구회 이사)에 따르면 몽둥이 간(杆) 자는 간성을 표기하기 위해 만든 한자다. 산맥이 지렛대 모양이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역사적 내력과 유래가 깊은 지명을 일제가 바꾼 것은 고성읍의 장전항이 더 쓸모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공교롭게 간성읍은 1919년 3월 17일 영동지방에서 처음으로 3·1만세운동을 벌여 미운털까지 박히지 않았을까.

“흥에 취해 다락에 기대니 돌아감을 잊었네”

<택리지>나 <동국여지승람>에 간성군과 고성군으로 따로 언급되는 고성은 경치가 천하제일이라는 영동 아홉 고을에 속한 만큼 아름답고 신비한 자연 풍광이 즐비하다. 남북 최고 명산이라는 설악산과 금강산 사이에 위치한 남쪽 고성은 산과 하천, 바다, 호수, 섬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그윽하기 이를 데 없다. 이중환이 영동 아홉 고을을 일컬어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며 물과 돌이 많고 조촐하여 간혹 선인(仙人)의 이상한 유적이 전해 오기도 한다”라고 표현한 부분은 고성의 자연 환경과 딱 맞아 떨어진다. 드러난 명소도 그렇지만 감춰져 있는 비경이 더 많은 것이 고성의 특징이다.

전국 4대 사찰 중 하나였던 금강산 건봉사. <신동호기자>

고성군이 내세우는 팔경은 건봉사, 천학정, 화진포, 청간정, 울산바위, 통일전망대, 송지호, 마산봉이다. 건봉사는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켰던 곳으로서, 한때 신흥사·백담사 등을 말사로 거느렸던 대가람이었다. 석가의 진신 치아사리를 친견할 수 있다. 동해안에서 가장 큰 자연 석호인 화진포에는 이승만·김일성·이기붕 등의 별장과 해양박물관 등이 있다. 청간정은 관동팔경의 하나인 만큼 수백 편의 한시가 전한다. 조선 숙종도 “흥에 취하여 다락에 기대니 돌아감을 잊었네”라고 절찬했을 정도다. 천학정은 일출과 해안·바다 전망이 빼어나고, 철새관망타워가 있는 송지호는 오토캠핑과 탐조관광의 명소다. 통일전망대에서는 금강산 구선봉과 해금강이 지척에 보이며,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남한 제2봉이라는 마산봉은 설경이 좋다. 울산바위는 설악산 편에 언급한 바 있다.

2007년 발족한 고성향토문화연구회의 회원들에 따르면 고성팔경은 단지 밖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감춰져 있는 문화·관광자원이 더 많다는 얘기다. 옛 간성군의 진산인 향로봉(옛 지명 마기라산, 1296m)과 큰새이령[大間嶺] 일대, 고성산(297m) 자락의 수타사지와 관대바위(311m) 등 깊은 산의 비경과 팔곡 구사맹이 ‘수성팔절’로 꼽은 선유담과 능파대 등 해안 절경들이 그 예다. 수타사지는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의 비사와 절이 홍천으로 옮겨간 재미있는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 화랑들이 노닐었다는 선유담과 화강암 해식의 기경을 이루는 능파대에는 많은 선인(先人)의 시문과 각자가 전한다.

고성은 비경을 바다 속에까지 감추고 있다. 능파대에서 조망되는 바다 속은 스킨스쿠버 다이버 사이에서 국내 3대 포인트 가운데 하나로 통한다. 문암2리 항구에서 1.1km 지점에는 ‘수중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비경이 있고, 3km 떨어진 낙산내기에도 엄청난 규모의 해저 장관이 숨어 있다고 한다. 낙산내기를 처음 발견했던 스킨스쿠버 다이버 이광수씨는 “마치 설악산이 그대로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농촌 인심보다 어촌 인심이 더 좋다”

영동 아홉 고을의 자연 조건이 모두 엇비슷하다지만 고성은 특별한 점이 더 있다. 공통점이라면 산맥과 바다 사이가 좁아 경치는 좋지만 생리가 박하다는 것일 터이다. 최근 영동지역이 겪고 있는 물 기근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고성은 물이 마르는 일이 없다. 산이 깊고 골이 많기 때문이다. 영동지역에 잘 없는 ‘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남강은 북고성으로 흐르는데, 남고성의 하천은 규모는 작지만 그 수가 많다. 향로봉에서 발원하는 북천은 고성의 젖줄이다. 그 아래위로 저진천, 명파천, 자산천, 남천, 문암천, 오호천, 토성천, 용촌천 등이 흐른다. 관아 안에만 4개의 우물과 3개의 못[三井四池]이 있었다는 옛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샘이 많아 사계절 물 걱정을 하지 않는다.

수성팔절의 하나인 능파대의 기암. <신동호기자>

작은 하천 주변에 들도 제법 발달해 지금도 ‘고성 오대미’를 특산으로 꼽는다. 요즘 와서 사정이 달라졌지만 어족자원도 풍부했다. 거진항은 ‘명태의 고향’이다. 가진항은 <동국여지승람>에 은구어로 소개된 도루묵의 이름이 유래된 곳이다. 일제시대 가진항은 덕포항으로 불렸는데, 이는 고기가 하도 많이 잡혀 ‘막 퍼준다’는 뜻의 방언인 ‘더 푸’가 변한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로 농사와 고기잡이를 함께 했던 고성 주민의 살림살이가 그리 옹색하지 않았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하듯이 먹을 것이 풍부하면 여유가 있는 법이다. “농촌 인심보다 어촌 인심이 더 좋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명태의 주산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명태도 도루묵도 거의 잡히지 않는다. 남획과 지구온난화에 따른 수온 상승도 원인이지만 일본과 러시아가 전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명태 잡이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 더 큰 이유라고 한다. 고성군은 동해안 해양심층수 개발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는데, 이를 어족자원 고갈 극복에도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황종국 군수는 “해양심층수를 이용한 한해성 종묘 배양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구 치어 양식에 성공한 만큼 명태 치어의 생산·방류 가능성도 열려 있다.

동해안에서 섬이 가장 많은 군

간성읍 어천리 라벤더밭과 그 뒤의 인삼밭. <신동호기자>

한반도 기후변화는 명태와 같은 고성의 특산물 자리를 위태롭게 하고 있지만 새로운 자원의 재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남 보성이 주산지인 녹차를 40여 가구가 4년째 재배하고 있고, 라벤더·인삼·피망·다시마장·표고버섯·흑돼지 등이 신흥 특산물로 떠오르고 있다. 그윽한 자연과 ‘양간지풍(襄杆之風) 통고지설(通高之雪)’로 대표되는 독특한 기후를 응용한 것이다. 이를테면 표고버섯은 해풍을 맞으면 품질이 더 좋게 생산된다.

고성의 또 다른 점은 동해안 군 가운데 가장 많은 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광개토대왕릉이 있다는 설이 제기돼 화제가 된 화진포 앞의 금구도를 비롯해 봉포섬, 죽도, 괘도, 저도, 백도, 가도 등이다. 죽도와 봉포섬(옛 지명 무로도)은 전죽이 좋기로 유명했고, 금구도와 죽도에는 옛 성곽 유적이 있다. 섬은 바다 경관을 아름답게 할 뿐 아니라 새의 보금자리가 되는 등 생태계를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동녘의 다도해’라고 할 만한 해안은 고성의 자연을 더욱 신비롭게 하는 감초와 같다.

<경향닷컴 신동호기자 hudy@khan.co.kr>


가는길/
동해고속도로로 현남나들목까지 와서 7번 국도를 타면 속초를 지나 고성에 이른다. 서울에서는 6번 국도에 진입해 양평 용두교차로→44번 국도→인제 한계삼거리→46번 국도→진부령 순으로 달리면 고성에 닿는다. 버스로는 서울 동서울터미널과 상봉터미널에서 간성 및 거진까지 3시간10분 소요된다.

연락처/
고성군청 문화관광과 033-680-3362
화진포관광안내소 033-680-3677
통일안보교육관(통일전망대) 033-682-0088
대진시외버스터미널 033-681-0404

맛집/
가진항활어회센터/ 죽왕면 가진항에 있다. 2호점에 삼숙이·잡어 매운탕과 물회가 인기 있다. 033-681-2504
먹고보세/ 간성읍 하리 6-9번지에 있다. 고성 특미인 도치 알탕과 두루치기, 아구·명태찜 전문이다. 033-682-5307
고향막국수/ 간성읍 교동리 402번지에 있다. 동치미 또는 육수가 특별한 고성식 막국수와 편육, 추어탕 등을 맛볼 수 있다. 033-681-3167

숙박/
하옵바위모텔/ 죽왕면 공현진리 1-2번지에 있다. 옵바위 일출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033-632-8803
바다추억/ 죽왕면 가진리 275번지에 있다. 가진항과 가깝고 장군바위 일출을 볼 수 있다. 033-681-0604
민박·펜션 사이트/ http://www.goseongminbak.com
[소읍기행]600년 씨족 부락, 고성 왕곡마을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타임머신을 타고 600년 전으로 타이머를 맞춘다. 전통가옥이 고즈넉하게 들어선 왕곡마을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춰버린 듯 하다. 항아리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에는 마을을 지켜 온 함씨와 최씨 가문의 뚝심이 풍겨 나온다.

☞ [화보] 600년 씨족 부락, 고성 왕곡마을

“길지 중의 길지야. 몇 백 년 동안 전란과 화마가 피해간 마을이거든.”

600년 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왕곡마을. 비결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왕곡마을은 하늘에서 보면 영락없는 배의 모습이다. 유선형 배가 동해바다로부터 송지호를 거쳐 마을로 들어섰다. 오음산이라 불리는 5개의 봉우리는 겹치듯이 마을을 감싸 안았다. 방주모습의 지형은 외기가 틈탈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왕곡마을] 길지 중의 길지 오음산이라 불리는 5개의 봉우리가 겹치듯이 왕곡마을을 감싸 안았다. 동해바다로부터 송지호를 거쳐 마을로 들어선 방주모습의 지형은 외기가 틈탈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윤정기자〉


마을은 조선왕조 건국에 반대한 고려충신 함부열이 은거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강릉 최씨가 들어오면서 마을은 최씨와 함씨의 집성촌이 됐다. 그러다 보니 고성왕곡마을보존회 회장부터 사무국장, 마을 주민까지 서로서로 가족이고 사촌이자 친척이다.

조선왕조를 훌쩍 넘어버린 씨족마을의 집은 19세기 지어진 북방식 전통가옥 모습 그대로다. 20여 채의 ‘ㄱ자’형 기와집은 안방, 사랑방, 마루, 부엌이 건물 안에 나란히 배치돼 있다. 마구간을 덧붙인 부엌은 추운 산간지방의 겨울을 나는 노하우다. 30여채나 되는 초가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초가집이 밀집 보존돼 있는 곳이다.

최근 왕곡마을 전통가옥은 수세식화장실과 기름보일러를 갖춘 집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진흙과 기와를 쌓고 그 위에 항아리를 엎어 놓은 굴뚝에서는 여전히 따스한 연기가 올라온다. 나무로 아궁이를 지펴 음식과 난방을 하는 집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항아리를 통해 나온 열기는 집 내부로 들어오지 않아 초가집을 안전하게 지킨다.

왕곡마을은 보존 가치 때문에 외지인에게는 집을 팔 수가 없다. 빈 집들은 정부가 매입해 전통생활체험 공간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일반 민속촌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마을을 고스란히 지켜낸 몇 백년 뚝심이 왕곡마을의 힘이기 때문이다.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숙박/
고성왕곡마을보존회 ‘ㄱ자’형 북방식 전통가옥에서 묵을 수 있다. 전통생활체험 프로그램 참여도 가능하다. 033-631-2120

맛집/
오봉식당 왕곡마을 주민이 직접 운영한다. 막국수와 추어탕, 토종닭이 주메뉴다. 033-633-9238
왕곡식당 왕곡마을 안쪽에 있다. 순메밀국수와 토종닭을 맛볼 수 있다. 033-632-0358

가는길/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대관령 터널을 지나 현남톨게이트에서 나온다. 속초를 거쳐 송지호해수욕장를 지나 공현진교를 건너기 전에 좌회전한다. 1.3km정도 들어서면 왕곡마을이 보인다.
[길,숲,섬]푸른 바다와 산책을 즐겨요, 거진등대공원 산책로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
동해에서 태평양을 마주하는 느낌은 어떻게 표현될까. 일출에서 오는 희망, 푸른 바다에서 오는 깨끗함, 파도 소리에서 오는 아련한 추억까지 바다를 맞이하는 느낌은 다양하다. 강원도 고성의 거진등대공원에 올라 동해를 만났다.

[화보]거진등대공원 산책로





대한민국 최북단 산책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위치한 거진등대공원은 항구를 내려다보는 등대 옆에 자리했다. 2007년 각종 어류를 형상화한 조각공원으로 조성됐고 지난해 700m에 이르는 산책로를 추가로 만들면서 거진항의 명물이 됐다.

"물회 한 그릇 먹고 산책하면 대뜨번에 소화가 될 끼래요"

거진항에 도착해 곧바로 오징어를 말리는 한 가게에 들어갔다. 하루 종일 심심풀이로 씹을 반건조 오징어를 한 마리 샀다. "천원이래요." 무뚝뚝하게 대답하던 주인아주머니는 오징어가 구워지는 동안 이런저런 말을 붙이자 동네 자랑을 시작했다.

"거진에 첨 오셨드래요?" 아주머니는 거진항 자랑에 붙여 등대공원 얘기도 했다. 항구에서 물회 한 그릇 먹고 등대공원 산책하면 소화가 그리 잘된단다. 1970~80년대는 명태로 이름을 날리던 거진항이었지만 지금은 러시아산 명태가 주류를 이루고 오징어잡이도 시원치 않아 재미가 덜 하다고 했다.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바다와 함께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아직 식사 때가 아니기에 물회는 제쳐두고 등대공원부터 올랐다. 항구 옆길에 차를 두고 계단으로 올라가도 되고 등대 기슭 주택가를 통해 올라갈 수도 있다. 기슭에 켜켜이 자리 잡은 집들 사이로 한걸음씩 오를 때마다 경치가 달라진다. 바다를 보며 뒷걸음질로 오르니 재미가 색다르다.

마지막 집에서 100여 m를 올라가니 벌써 등대 앞이다. 겨울이라도 푸르게 반기는 소나무가 있어 길이 심심치 않다. 곳곳에 설치된 조각품과 의자 그리고 지압 효과를 주는 작은 길과 소나무 오솔길까지 꼼꼼하게 꾸며진 산책로를 걸었다.
길의 좌우에는 동해안 절경이 모두 담겨 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는 파도가 부딪치고 있다. 좀 더 멀리 시선을 옮기면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바다가 펼쳐진다. 소나무 사이 의자에 앉아 경치를 감상하려 했지만 아직 겨울이 가시지 않아 추위가 옷 속으로 파고든다.

손에 장갑을 끼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도 있고 나이 지긋한 노인 내외가 나란히 걷기도 한다. 동네 뒷산 700m의 길이 사람들에겐 더없이 여유로운 삶의 공간이 된 것이다.

매콤새콤한 물회로 든든한 점심을

두어 시간 바다 바람을 맞으며 경치 감상을 하니 허기가 밀려온다. 주머니에 넣어뒀던 오징어는 벌써 동났다. 해안 쪽으로 난 철제 계단을 내려와 항구로 향했다. 고성 사람들은 회를 그냥 먹지 않는단다. 시원한 얼음물에 양념을 하고 회를 넣어 물회로 먹거나 각종 야채와 함께 초고추장으로 무쳐 먹는다. 물회는 해장국 대신 먹기도 한다니 그 맛이 궁금했다.

어시장에 들어서니 지금껏 다녔던 여느 항구보다 소박한 모습이 눈에 띈다. 한눈에 들어올 만한 작은 어시장 입구에서 건오징어 주인아주머니가 추천한 집을 물어보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오징어와 가자미가 주로 들어가던 물회는 오징어의 몸값이 높아져서 주로 가자미로 만든다. 해삼도 송송 썰어 넣어 맛을 더한다. 물회 먹고 산책하면 소화가 잘된다더니 산책하고 출출한 허기를 물회로 달래는 것도 별미다.

장비 챙겨 새벽부터 오르는 등산도 매력적이지만 푸른 바다를 감상하며 천천히 산책하는 거진등대공원 산책로 역시 몸과 마음이 시원해지는 매력이 있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


<관련정보>

가는길/
속초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간성을 지나 거진항까지 30분 정도 걸린다. 서울에서 고성행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린다. 다시 1번 혹은 1-1번 시내버스를 타면 거진항에 갈 수 있다.

맛집/
무진장횟집 / 거진항 활어회센터내에 있다. 물회, 회무침이 별미다. / 033-681-9765
해변건어물종합할인센타 / 거진항 입구에 있다. 오징어, 명태를 직접 말려 판매한다. / 033-681-6060

숙박/
금수장여관 / 거진읍내에 있다. 20개의 객실을 보유했다. / 033-682-2588
삼호장여관 / 거진항 초입에 있다. 인근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 033-682-2534
조나단모텔 / 거진항에 있다. 바닷가를 향한 3층 방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 / 033-682-5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