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따지

산과 강과 바다가 다 좋다,‘해오름의 고장’ 양양

[新택리지]산과 강과 바다가 다 좋다,‘해오름의 고장’ 양양
진산인 설악산 대청봉, 동해의 기암과 모래 해변, 국내 회귀하는 80% 연어의 모천인 남대천. 양양은 산과 강과 바다가 다 좋은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가졌다. 경관만 빼어난 게 아니라 생리를 돕는 ‘플러스 알파’가 있다.

[화보] '해오름의 고장' 양양

참으로 신비한 곳이다. 양양군은 그 이름과 지리, 산수, 생리(生利), 역사 모든 면에서 불가사의한 요소를 갖고 있다. 영동의 제1도시 강릉과 외설악 관광의 관문인 속초 사이에서 두 도시의 유명세에 가려 있을 뿐이지 고유한 지리적 조건과 역사, 문화를 가진 점이 그렇다. 베일을 하나씩 들추면 그때마다 놀라운 모습과 흥미진진한 얘깃거리를 쏟아내는 곳이 양양이다.

아름다운 항구와 모래, 기암의 파노라마

남대천에서 바라본 양양읍과 설악산 <신동호 기자>

강릉에서 북쪽으로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 하조대를 지나 해안으로 난 지방도로로 달리면 낙산대교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 위가 양양의 전모를 볼 수 있는 원의 중심과 같은 지점이다. 남대천과 동해, 설악산, 그리고 군 소재지인 양양읍이 한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산과 강과 바다는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하고 심신의 휴식을 취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환경이다. 양양은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가졌다. 그것도 전국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것이다.

양양의 해안은 절경의 파노라마다. 북쪽에는 ‘해오름[襄陽]의 고장’이라는 지명의 뜻 그대로 동해 일출의 명소이자 관동팔경의 하나인 낙산사 의상대가 있다. 남단에는 ‘동양의 베네치아’라는 별명과 더불어 강원도 3대 미항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남애항이 자리한다. 그 사이의 약 100리에 이르는 해안은 항구와 백사장과 기암이 동해안에서 가장 짜임새 있게 배치돼 있다.

“10년이 지나도 얼굴에 산수의 기상이 남는다”

2004년 양양군은 ‘양양팔경’을 선정하면서 의상대, 하조대, 남애항, 죽도정 등 네 곳의 해안 경관을 포함시켰다. 낙산해변을 포함한 20여개의 모래 해변, 와불과 거북 형상의 바위로 유명한 휴휴암, 암초 위에 대나무가 무성한 또 다른 죽도가 보이는 38선휴게소 등 다른 곳에서는 한몫할 진경들이 끼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낙산사 의상대 일출 <신동호기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그 안에 들어간 이는 인간 세상이 어떤 곳인지 제 형체가 어떤 것인지 모를 만큼 황홀하고 하늘로 날아오른 듯한 느낌을 받는다”며 “이 지역을 한번 거친 이는 저절로 딴 사람이 되고 10년이 지나도 그 얼굴에 산수 자연의 기상이 서려 있게 된다”고 이곳 경치를 극찬했다. 낙산사 의상대를 비롯한 동해안 네 곳의 정자를 두고 한 말이지만 마치 양양의 해변을 묘사한 듯하다.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은 양양의 진산이다. 지번도 서면 오색리 산1번지다. 원래 오색령이었다가 이름이 바뀐 한계령,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오색약수와 온천, 폭포와 단풍과 주화에 얽힌 전설이 서린 주전골 등 남설악 일대는 사계절 관광․휴양객이 찾는 특급 명소다.

선사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

오색령․구룡령․칠갑령 등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들어가는 남대천은 그 길이가 60km에 이르고 하구의 폭이 500m가 넘는 영동 제일의 하천이다. 이중환의 말대로 “산수가 좋은 곳은 생리가 박한 곳이 많다”지만 남대천과 같은 큰 하천을 가진 양양은 생리 면에서도 옹색하지 않다. 낙산대교에서 둘러보면 농사를 짓거나 시가를 조성할 편편한 땅이 제법 눈에 띈다.

낙산대교와 가까운 곳에 1981년 발굴한 오산리 유적이 있다. 당시까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 된 신석기 유적(8000년 전)으로 밝혀져 세계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은 곳이다. 양양에는 도화리 구석기 유적(10만년 전), 지경리(6000년 전)․가평리(5000년 전) 신석기 유적, 포월리 청동기 유적(BC 800), 범부리 고인돌(BC 500~600), 가평리 철기 유적(AD 300) 등 선사시대 문화 흔적이 많다.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전유길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양양은 선사시대 거의 모든 문화층이 골고루 확인되는 지역이다.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땅이었음을 말해준다.

양양대교 입구에 세운 송이 조형물<이다일기자>

양양의 산과 강과 바다는 주민에게 좋은 경관을 통한 이득뿐만 아니라 선사시대 거주민에게서처럼 의식주와 직결되는 자원도 풍부하게 제공하고 있다. 조선시대 관찬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오는 송이와 연어가 대표적인 예다. 설악산과 점봉산 일대의 송림에서 산출되는 송이는 단단하고 영양이 풍부하며 휘발성 향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일본인들도 그 품질을 인정하는 ‘양양 송이’는 2006년 산림청 지리적표시제 1호로 등록됐다.
양양군은 송이축제와 송이밸리 건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송이의 인공 재배 연구와 가공식품 개발 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산천어를 바다로 내보낸다?

양양대교 입구 남대천 변에 있는 영동내수면연구소는 국내 유일의 연어 전문 국가 연구기관이다. 양양 남대천은 동해안에서 큰 하천이고 오염되지 않아 회귀어종의 대표적인 모천으로 자리잡았다. 연구소에서는 매년 연어 치어 1000만~1200만 마리, 시마연어 치어 약 2만 마리를 방류하고 있다. 참송어․바다송어라고도 불리는 시마연어는 영동지역 고유 어종인 산천어 가운데 바다로 내려가는 종으로서, 연어보다 맛이 좋고 값도 더 나간다.

‘연어 박사’로 불리는 성기백 수산연구사에 따르면 남대천 연어의 회귀율은 0.5~0.7%이고, 2006년부터 인공 방류한 시마연어는 아직 공식적인 회귀 기록이 없다. 연구소는 삼척 오십천, 울산 태화강, 섬진강 등에 치어를 방류하는 한편 북한 안변 남대천(동해안에 남대천이 10여개 있다)에도 부화장 건설과 기술 지원을 하고 있다. 자원 공동 활용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다.

해양심층수 산업의 메카를 꿈꾸다

2007년 남애항과 가까운 현남면 원포리에 들어선 (주)워터비스 공장은 요즘 새롭게 뜨는 바다 자원의 가치를 보여주는 사례다. 먹는 해양심층수 1호 업체인 워터비스는 이곳을 심층수 생산의 최적지로 보고 연장 거리 17.5km, 수심 1032m에 취수구를 설치했다. 심층수 시장은 2012년 2000억에 이르고 빠른 성장이 예상된다. 워터비스는 먹는 심층해양수와 혼합음료, 각종 산업 원료의 생산뿐만 아니라 해양 워터파크와 테라소테라피 등 심층수를 이용한 산업을 발전시켜 양양을 심층수 산업의 중심권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남애항과 낙산해변 중간쯤에 국가어항인 수산항이 있다. 지난 가을 이례적인 연어병치 풍어로 전국 낚시꾼들이 몰렸던 곳이다. 이곳에 요트 계류장이 들어선 것은 양양의 바다 경치에다 양강지풍(襄江之風)이라는 특유의 계절풍 덕이다. 향토사학가 이재풍씨에 따르면 양양의 바람은 옛날부터 유명하다. 예전에는 양양과 간성의 바람이란 뜻으로 양간지풍(襄杆之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수산항에 건설 중인 요트 계류장은 5월까지 60척의 접안 시설이 완료된다. 금년 6월 해양경찰청장배 전국요트대회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조계종의 발상지 진전사의 복원 불사

양양을 둘러본 사람이라면 쉽게 눈에 띄는 이곳 특징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을 표석이 대부분 돌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양양에는 돌이 많다. 낙산사 해수관음상이나 휴휴암 관세음보살상과 같이 최근에 만든 대규모 석상은 빼놓더라도 국보․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9개 가운데 8개가 석탑․탑비․부도와 같은 석조 유물이다.

조계종의 종조 도의국사가 세운 진전사<신동호기자>

이 가운데 국보 122호인 진전사지 삼층석탑이 있는 진전사는 우리나라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발상지로서 의미가 크다. 강현면 둔전리 설악산 자락에 위치한 이 절은 헌덕왕 821년 신라 선종의 종조인 도의국사가 창건했으며, 염거화상․보조선사가 이곳에서 가지산문의 맥을 이은 선종대찰이었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선사도 이곳에서 삭발하고 득도했다.

진전사는 폐사된 채 있다가 2005년에 다시 지었는데, 주지인 금강 스님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의도적으로 절을 소각하고 인근 주민까지 몰살해 기억에서 지워버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일제시대까지 둔전사로 불리다가 ‘진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편이 발견되어 이름을 되찾았다. 진전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008년 말 조계종 선종의 근원지라는 이유로 전통사찰로 지정한 데 힘입어 복원 불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교통의 사각지대에서 환동해 허브도시로

강원도가 한때 원양도(원주-양양), 강양도(강릉-양양)로 불린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양양은 과거부터 영동의 중심지였다. 고려 때 양주군이었다가 조선 들어서 태조의 고조부 목조의 외향이라고 해서 양주부로 승격됐다. 태종 때부터는 양양도호부로 이름이 바뀌어 군수나 현감보다 품계가 높은 종3품 도호부사가 고을 원을 맡았다. 서해의 풍천, 남해의 나주 지방과 함께 국가적 제례 행사로서 바다 신에게 제사지내는 동해신묘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적․문화적 배경 때문인지 이 지역은 연구 대상의 소재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향토사학가 이재풍씨는 이를 ‘양양학’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고려 때 몽고군 격퇴, 1906년 현산학교 설립, 양양 3․1만세운동, 공산 치하의 각종 반공투쟁 등은 이 지역 특유의 가치관과 자존심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양양이 강릉이나 속초와 달리 시로 발전하지 못했던 가장 큰 요인은 접근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사정이 달라질 것 같다. 올해 동해고속도로 양양 구간이 완공되고 2014년 동서고속도로가 개통될 예정이다. 서울까지 153km, 1시간 반 거리로 단축된다. 지금은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양양국제공항도 언젠가 활성화될 것이다. 북한과의 교류도 멀지 않은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양은 ‘환동해의 허브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양양은 말 그대로 밝은 해오름의 시대를 열 것인가.

〈신동호기자 hudy@khan.co.kr〉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강릉분기점에서 동해고속도로를 타면 현남나들목이 끝이다. 다시 7번 국도를 타고 속초 방향으로 달리면 양양읍에 닿는다. 6번 국도를 타고 양평에 이르러 홍천 방향으로 44번 국도에 들어서면 홍천, 한계령(또는 구룡령)을 거쳐 양양읍까지 내달릴 수 있다. 버스는 강남고속터미널(3시간 30분)과 동서울터미널(3시간 20분), 상봉터미널(4시간)에서 탈 수 있다.

연락처/
양양군 문화관광과 033-670-2225
양양군 종합관광안내소 033-670-2397~8
양양군 농업기술센터 033-671-5959, 8772
낙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 033-670-2518~9

맛집/
옛뜰/ 손양면 송전리에 있다. 섭국으로 유명하며 직접 빚은 두부를 산초기름으로 구워 먹는 것이 별미다. 033-672-7009
그린생칼국수/ 양양 재래시장에 있다. 양양 감자와 멸치 등으로 만든 육수에다 고추장을 풀어서 만든 장칼국수가 구수하면서 얼큰하다. 033-671-5694
꺽지랑 뚜거리랑/ 양양군청 부근에 있다. 양양 남대천 토속 어종인 뚜거리로 만든 보양식인 뚜거리탕을 맛볼 수 있다. 033-673-6422
왕건횟짐/ 강현면 주청리 낙산해변에 있다. 일급 호텔요리사가 싱싱한 회를 준비한다. 033-672-4439

숙박/
대명쏠비치호텔 & 리조트/ 아쿠아월드, 테라피센터, 연회장, 카페 등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033-673-8311
거평프레야 낙산콘도/ 낙산해변 가까이 있어 바다 전망이 좋다. 022-672-5000
법수치 폭포펜션/ 현북면 어성전과 법수치 계곡에 펜션이 많다. 033-673-1188
[소읍기행]체험과 공존의 공간, 양양군 해담마을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
봄에는 새싹이 돋고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 그늘이 있으며 가을에는 구수한 인심이 넘친다. 눈 쌓인 겨울에도 체험과 공존은 끊이지 않는다. 해담마을은 바다로 향하는 이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자연을 체험하는 경험은 세상 어느 경치보다 가치 있기 때문이다.

[화보] 양양군 ‘해담마을’

동해를 코앞에 둔 길목.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 해담마을은 해변과 불과 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해가 드리워진 모습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해담마을이란 이름을 지었다.


체험학습의 장
날이 따뜻하면 은어 맨손 잡기, 뗏목 타기와 같은 물놀이를 할 수 있고 겨울에는 연날리기 얼음썰매타기 등을 즐길 수 있다.〈이다일기자〉



서림리 주민은 외딴 오지를 똘똘 뭉쳐 색다른 자연 체험 공간으로 만들었다. 54가구의 마을 주민의 공동 작품이다. 정보화 마을에 선정되면서 온라인으로 마을 모습을 알리기 시작했다. 나무가 빽빽이 자라던 숲은 그대로 삼림욕장이 됐고, 계곡물은 그 모양 그대로 뗏목과 수륙양용차를 타는 코스가 됐다. 널찍한 계곡 옆 공간에는 자연을 닮은 통나무로 지어진 방갈로가 들어섰다.

바다로만 달리던 사람들의 발길은 이내 해담마을에 멈추기 시작했다. 낮에는 바다에서 시원한 피서를 즐기고 저녁이면 조용한 계곡으로 돌아왔다. 마을 캠핑장에서는 음악회가 열리고 바비큐 파티가 벌어진다. 해담마을을 가족 단위 피서객이 즐겨 찾는 이유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


관련정보/
2006년 정보화마을에 선정되어 홈페이지가 잘 꾸며져 있다. 마을 홈페이지(http://hd.invill.org)에 접속하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숙박/
마을방가로, 마을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이다. 계곡과 인접했고 봄부터 가을엔 다양한 부대행사가 열린다. 010-373-0911
물레방아민박, 마을 초입에 위치했다. 체험마을과 연계 관광이 가능하다. 033-673-0831
개울민박, 솔밭 옆으로 조용하게 쉴 수 있는 계곡 옆에 위치했다. 033-673-1698

맛집/
운두령식당, 해담마을 정보센터 옆에 있다. 오삼불고기가 잘 팔린다. 033-673-8807
서림가든, 해담체험마을 길 건너편에 있다. 메밀막국수, 수육을 주로 한다. 033-673-3969

가는길/
서울에서 양양까지 고속버스로 이동한 뒤 양양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갈천행 시내버스를 이용해 서림리에서 하차하면 된다.(1시간간격)
승용차로 44번 국도를 따라 한계령을 넘어 오색약수를 지나면 구룡령과 갈림길이 나온다. 구룡령 방면으로 양수발전소를 지나면 서림리가 나온다.
[길,숲,섬]험한 산골의 고요한 안식처, 미천골 자연휴양림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백두대간 능선에서 양양으로 뻗은 골짜기에 미천골 자연휴양림이 자리 잡고 있다. 공양미를 씻은 하얀 쌀 물이 계곡을 따라 흘렀기 때문에 붙여진 미천골이라는 이름처럼 하얀 눈이 온 계곡을 뒤덮고 있었다.

[화보] 미천골 ‘자연휴양림’

양양에서 56번 국도를 타고 깊은 산중으로 내달렸다. 백두대간 능선에서 양양으로 뻗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미천골 자연휴양림을 가기 위해서다. 옛날에는 ‘하늘 아래 끝 번지’라고 불릴 정도로 험한 산중이었다는데, 1993년 휴양림이 자리 잡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식처가 됐다.




하얀 계곡물의 근원지, 선림원

미천골에 들어서자 하얀 눈과 얼음에 뒤덮인 계곡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얀 쌀 뜬 물이 계곡을 따라 흘렀기 때문에 ‘미(米:쌀 미)천(川:내 천)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마치 그 이름과 같은 풍경이 펼쳐진 듯하다. 자연휴양림 매표소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축대 위에 선림원 옛터가 나온다.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고 선림원지를 그냥 스쳐 지나간다면 미천골의 옛 이야기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

1000여 년 전 이 골짜기에는 선림원이라는 절이 있었다. 숲 속에서 참선을 한다는 이름처럼 스님들의 수도를 위한 절이었다고 전해진다. 804년 순응법사가 세운 선림원은 900년을 전후해 일어난 산사태로 절터가 완전히 매몰됐다. 선림원지에 올라서자 텅 빈 공터에 삼층석탑(보물 제444호), 석등(보물 제445호), 홍각선사탑비(보물 제446호), 부도(보물 제447호)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선림원의 공양미를 씻은 물이 온 계곡을 뿌옇게 물들였을 정도로 성대했던 곳이 이제는 그 흔적만으로 역사를 더듬어야 하다니. 한 절의 흥망성쇠가 아름다운 계곡 사이에 묻혀 아련해진 느낌이었다.

고요한 산 속의 휴식처

미천골 자연휴양림에 오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선림원지만 둘러본 뒤 통나무집 숙소에 몸을 뉘었다. 휴양관, 캠프장, 숲속의 집 등 휴양관 내 숙박시설은 여느 펜션 못지않게 관리가 잘 돼 있다. 추운 겨울이라 숙박객이 많지는 않지만, 여름에는 예약자들에게 추첨을 해서 방을 내 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불바라기 카페<이윤정 기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불바라기 약수터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옛날에는 철이 풍부해 미천골 계곡에 대장간이 많았는데 그것이 유래가 돼 불바라기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미천골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불바라기카페에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산행에 지친 몸을 녹일 수 있다. 15년 동안 산장을 지켜 온 주인이 직접 만들어 주는 건강차와 빵을 맛보면 미천골의 후한 인심이 느껴진다. 다시 나선 등산길 옆으로는 박달, 물푸레, 고로쇠, 층층, 피나무, 음나무, 복자기, 서어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자라나고 있다. 계곡에서는 굽이쳐 흘러야 하는 물과 폭포가 꽁꽁 얼은 채로 멈춰 서 있다. 매표소에서 6.1km정도 올라가면 토종벌 민가가 나온다. 직접 토종꿀을 사고 맛볼 수도 있다.

불바라기 약수터마저 덮어버린 눈

보름 전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아 12.4km에 달하는 미천골 등산로는 중간부터 차가 다닐 수 없다. 매표소에서 7.3km 올라온 지점의 오토캠핑장까지 차로 올라간 뒤 그 뒤부터는 걸어서 가야 했다. 카메라를 메고 홀로 눈 쌓인 길을 걷다 보니 꽁꽁 얼어버린 상직폭포를 만난다. 폭포를 마주보는 곳에 미천정이 있고 조금 더 걸으니 멍에정이 나왔다. 이 정자 위로는 임도 차단기가 설치돼 있고 사람의 발길도 뜸하다.

불바라기 약수터까지는 4.8km를 더 올라야 한다. 2시간을 꼬박 걸었는데 지나는 사람 하나 없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불바라기 약수터 근처에 도착했지만 계곡 밑으로 나 있는 약수터 길은 보이지 않았다. 눈이 쌓인 약수터에 보름 이상 발길이 끊기다 보니 길마저 눈에 뒤덮인 것이다. 더듬더듬 길을 찾아 계곡으로 내려갔다. 자신들의 영역을 빼앗긴 산새들이 경계의 울음소리를 보냈다.

철분을 함유해 붉은 색을 띄는 불바라기 약수는 위장병,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는데 모든 것이 눈에 뒤덮여 보이지가 않았다. 얼어붙은 계곡 사이로 붉은 물줄기 한자락 만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불바라기 약수터에서 흘러내린 물이 얼음 사이로 지나가는 것이다. 목이 너무 마른 나머지 맨손으로 계곡물을 떠 입에 가져갔다. 험한 산골에서 맛보는 시원한 계곡물. 속세를 뒤로 하고 산중에 묻혀 수도를 하던 스님들의 천년 역사가 고스란히 물맛에도 스며 있었다.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현남 IC로 빠져나와 양양으로 향한다. 44번 국도를 타고 한계령 방면으로 가다가 논화삼거리에서 56번 국도에 오른다. 15km를 더 가면 양양 서면 서림리 골짜기에 미천골 자연휴양림이 위치해 있다. 표지판을 따라 산으로 1km정도 올라가면 자연휴양림 매표소가 보인다.

숙박/
미천골 자연휴양림 1박 2일에 3만원 정도한다. 많은 사람이 찾기 때문에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033-332-6664

맛집/
불바라기카페 15년 산장지기 주인이 직접 내오는 건강차, 커피, 빵 등이 일품이다. 라이브음악을 들으며 간단한 식사와 함께 와인, 케이크를 곁들일 수 있다. 함께 운영되는 펜션에 묵으면 바비큐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 . 033-673-4589

'따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호의 도시 속초  (0) 2009.02.21
마지막 ‘청정 곳간’ 인제  (0) 2009.02.17
‘삼재 없는 명당’ 오대산  (0) 2009.02.07
간도협약 100년  (0) 2009.02.05
한국의 알프스 평창  (0) 2009.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