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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재 없는 명당’ 오대산

[新택리지]어머니 젖가슴처럼 포근하다, ‘삼재 없는 명당’ 오대산

불교의 성지로 유명한 오대산은 삼재가 들지 않는다고 해서 조선시대 사고가 자리했던 명당 중의 명당이다. 300년 동안 무사했던 오대산 사고의 기구한 운명은 천재를 피해도 인재는 피할 수 없었던 우리 근․현대사의 상처를 들추는 듯하다.

[화보] '삼재없는 명당' 오대산

월정사에서 시작해서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1563m)에 이르는 길은 엄동설한에도 인적이 끊이지 않는다. 성지를 찾는 순례객과 명산을 찾는 등산객의 발길 때문이다. 이들은 대개 오대산장, 상원사,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을 거쳐 정상에 이른다.

천천히 더듬으면 그 속살이 느껴진다

12km 정도 되는 이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상원사 입구까지 차로 갈 수 있고 거기서 비로봉까지는 3km에 불과하다. 흙산인 데다 산세도 험하지 않아 4시간 정도면 너끈히 왕복할 수 있는 코스다.

비로봉 정상에서 본 동대산. 뒤에 노인봉이 보인다. <신동호 기자>



그렇다고 해서 서둘렀다가는 오대산의 겉모습만 보기 십상이다. 문수보살이 상주하고 부처의 정골 사리를 모신 불교의 성지이며 우리나라 1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을 다녀온 것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오대산은 그 오묘한 사연과 멋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산이다. 서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명소 주변을 차분하게 더듬으면 오대산은 그 은밀한 부분을 조금씩 열어준다.

1만 문수보살과 오류성중이 항상 머무는 곳

오대산의 연원은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자장율사에 의해 ‘1만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산’으로 개산된 것이 가장 오랜 기록이다. 8세기 들어서는 보천과 효명 태자에 의해 오류성중(五類聖衆)이 머무는 곳으로 발전되었다. 동대에 관음보살 진신 1만, 서대에 대세지보살 1만, 남대에 지장보살 1만, 북대에 500 대아라한, 중대에 1만 문수보살이 머무른다 해서 5대가 형성됐고, 부처의 정골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중대 위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오대산의 속살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 오대산장 안의 연화탑, 상원사 입구의 관대걸이, 중대 사자암의 고사한 단풍나무에 얽힌 사연을 음미하고, 적멸보궁에 이르러서는 주변의 지세를 눈여겨봐야 한다. 1965년 여름 사망한 남녀 대학생 10명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운 연화탑에서는 산의 깊이와 자연의 엄격함에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조선 초 세조가 목욕하며 의관을 걸어두었다는 관대걸이에서는 오대산의 후덕함을, 한암 스님의 일화가 서린 단풍나무 앞에서는 생로병사의 무상함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지긋해져야 그 진면목을 알아보고…

조선조 태종과 세조가 원찰로 삼았던 상원사에 얽힌 이야기는 오대산의 품성을 알기 쉽게 일러준다.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는 이곳에서 문수동자를 직접 만나고 병을 고쳤다고 한다. [오대산](대원사, 1996)을 쓴 소설가 박용수씨는 이런 후덕함과 온유함이 오대산의 본질적인 모습이라고 하면서 어머니 젖가슴에 비유하기도 했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가까운 이들의 목숨을 빼앗은 태종과 세조가 머리 숙여 정신적 안식을 구하였고, 그런 이들을 받아들인 산,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포근하고 누나의 등처럼 향기로운 산, 세상살이를 어느 정도 겪은 뒤에야 그 가슴의 넓이와 깊이를 느끼게 되며 나이가 지긋해져야 비로소 그 진면목을 알아보고 뒤늦은 깨달음[晩覺]에 탄식하게 되는 산, 이런 산이 바로 오대산이다.”

“연단할 복지로는 이 산이 제일”

국보 48호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이다일기자>

‘나라 안의 명산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곳으로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이라고 했던 일연의 예언대로 불교의 성지가 된 것은 오대산의 이런 품성 덕분일 것이다. 불교와는 다른 측면에서 오대산을 명산으로 꼽은 이도 많다. 이중환은 “오대산은 흙산이면서 천 바위, 만 구렁이 겹겹으로 막혀져 있다. 가장 위에 다섯 축대가 있어 경치가 훌륭하고 축대마다 암자 하나씩 있다. 중대에 부처의 사리를 간직했다. 상당 한무외가 이곳에서 선도를 깨치고 시해(尸解)하였는데, 연단(鍊丹)할 복지(福地)를 꼽으면서 이 산이 제일이라고 했다”고 <택리지>에 썼다. 조선 중기의 도사 한무외는 허균에게 신선이 되는 연단법을 전해주었고, 스스로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오대산은 또 조선시대 사고가 위치했던 곳이다. 월정사와 오대산장의 중간에서 왼쪽으로 800m 지점에 사고터와 영감사가 있다. 상원사, 적멸보궁, 비로봉에 이르는 길과 달리 사람의 발길이 거의 미치지 않지만 <택리지> 이후 오대산의 지리와 역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곳이다.

“오대산의 복장이자 삼재가 들지 않는 곳”

이곳이 사고지로 지정된 데는 사명대사의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영감사 원주인 각수 스님에 따르면 사명대사가 이곳 영감암에 5년 동안 머물면서 퇴락한 월정사를 복원하려고 했다. 이때 사명대사가 이곳이 오대산의 복장이고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라고 주청해서 사고를 세우게 됐다는 것이다.

조선 조정에서 삼재가 들지 않는 곳을 사고지로 삼은 것은 임진왜란 이후이다. 왜군이 왕조실록 등 중요한 기록이 보관된 사고를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먼저 고려시대 이래 가장 많은 전적을 소장한 충주 사고가 왜군에 의해 불탔다. 성주 사고의 실록은 땅에 묻었으나 왜군에 발각돼 유린됐다. 춘추관 사고는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피난간 뒤 백성의 방화로 사라졌다. 유일하게 전주 사고의 실록을 포함한 서책만 현지 관리와 민간 유생, 승려들이 내장산 깊숙한 암자로 옮겨 전화를 피할 수 있었다.

전주 사고본의 교정본으로 학술적 가치 높아

임란이 끝난 뒤 선조는 전주 사고본을 토대로 실록을 4부 더 만들어 춘추관․태맥산․묘향산․마니산․오대산 등 이른바 5대 사고에 보관했다. 이 가운데 오대산 사고본은 전주 사고본을 재출판하면서 만들었던 교정본으로서 먹 또는 붉은 색으로 교정한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1992년 복원한 오대산 사고. <신동호기자>



오대산 사고본의 역사는 우리 기록문화의 수난사를 압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과 불과 바람의 삼재가 들지 않는다는 사명대사의 주장대로 오대산 실록은 300여 년 동안 안전하게 지켜졌다. 그러나 한일합방 후인 1914년 5대 사고본 중 유일하게 일본으로 강제 반출되는 비운을 맞았다. 식민지 연구 자료로 삼기 위해서였다. 동경제국대학 부설 도서관에 있던 오대산 사고본은 1923년 간토대지진 때 대부분 불탔다. 남은 것은 교수들이 밖으로 대출해간 74책뿐이었다. 일제는 1932년 이 가운데 27책을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에 나누어 보관했는데, 나머지 47책은 각계각층의 노력으로 2006년에야 서울대에 기증 형식으로 환수됐다.

삼재는 피했지만 인재는 어쩔 수 없었던가

일제가 실록을 수탈해간 뒤에도 오대산 사고 건물은 무사했다가 6․25 와중에 우리 군의 작전에 의해 불태워졌다. 삼재를 피하더라도 인재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일제의 수탈을 피하지 못했고, 북한 인민군의 퇴각로와 무장공비의 침투로로 이용된 것에서 보듯이 오대산은 누구든 막지 않고 품에 안을 뿐인가.

사고 터에는 영감사가 들어섰다가 1992년 다시 사고에 자리를 내주고 그 뒤에 옮겨지었다. 원래 영감암으로 불리다가 사고를 지키는 사고사(史庫寺)의 임무를 맡으면서 사(寺)라는 칭호를 받은 영감사의 역사 또한 우리의 기록 수난사와 맥을 같이 한다.

산세에서 기후까지 판이한 소금강 지구

소금강 만물상과 일월암. <신동호 기자>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오대산은 소금강 지역까지 영역을 넓혔다. 두 지역은 여러 면에서 성격이 다르다. 우선 행정구역상 월정 지구는 평창군 진부면, 소금강 지구는 강릉시 연곡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후도 백두대간 서쪽의 월정 지구는 내륙성, 동쪽의 소금강 지구는 해안 기후의 특성을 보인다. 부드러운 산세와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월정 지구와 달리 소금강 지구는 기암괴석과 폭포, 소 등이 어울려 절경을 연출한다.

소금강이라는 이름은 무릉계에서 시작해 노인봉(1338m)에 이르는 약 10km의 계곡이 금강산의 축소판이라 해서 유래했다. 율곡 이이가 춘추관 기사관으로서 명종실록을 편찬한 뒤 이곳에 들렀다가 청학산(靑鶴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이 있고, 이를 식당암에 새겼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마의태자의 망국 한이 서린 곳

소금강 지구는 국립공원이 되기에 앞서 1970년 우리나라 명승 1호로 지정된 바 있다. 주요 명소로는 무릉계, 삽자소, 연화담, 명경대, 식당암, 구룡폭포, 만물상, 백운대, 낙영폭포 등이 있다. 구룡연 동쪽 능선에 마의태자가 재기를 위해 쌓았다는 아미산성이 있고, 그 병사들이 식당암에서 밥을 먹었다는 등의 전설이 곳곳에 서려 있다.

〈신동호기자 hudy@khan.co.kr〉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나와 가우삼거리에서 직진하면 월정사, 진고개, 소금강으로 통한다. 방아다리약수로 가려면 가우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버스로는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까지 2시간 20분, 진부에서 월정사까지 시내버스로 15분 정도 걸린다. 소금강 지구로 가는 시내버스는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 있다.

연락처/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033-332-6417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소금강분소 033-661-4161
월정사 033-332-6661~5

맛집/
산촌식당/ 월정사 지구에 있는 산채 전문식당이다. 오대산에서 나는 산나물을 사용하고, 정갈한 것이 특징이다. 033-332-7975
송천식당/ 진고개에서 소금강 입구로 가는 6번 국도변에 있다. 산채정식과 토종닭 요리가 주 메뉴이고 직접 빚는 감자떡을 내놓는다. 033-661-5294
금강식당/ 소금강 상가지구 입구에 있다. 산채 전문식당이지만 토종닭 요리, 옻닭, 옻오리, 송이칼국수 등 여러 가지 메뉴가 있다. 033-661-4356

숙박/
오대산호텔/ 월정지구 입구에 있다. 330-5000
마운틴밸리펜션/ 소금강 지구에 있다. 661-0630
유니크모텔/ 소금강 입구 6번 국도변에 있다. 033-661-8855
[소읍기행]첩첩산중 자연과 동화된 삶, 오대산 부연마을
오대산에 둘러싸인 마을이 있다. 아직까지 비포장으로 남아 있는 도로를 따라 40여 분을 달려가면 나오는 산속 마을 부연동. 대자연을 만나기에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화보] 오대산 부연마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부연동. 오대산의 오지 마을로 알음알음 알려진 부연마을의 주소다. 행정구역상 강릉시에 속해 있지만 평창, 양양과 모두 인접해 있다. 가장 가까운 도시인 주문진까지 차로 1시간은 산길을 달려야 한다. 비포장의 산길은 눈이나 비가 오면 끊기기 일쑤다.

작은 동물도 배려하는 부연마을 마을의 양쪽 입구에는 '부연동'이란 표지가 세워져 있다. 또한 '작은 동물이 지나다니니 서행하시오'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자연과 친밀함을 더한다. (이다일기자)


넘치는 차들과 빽빽한 고층빌딩에서 매일 같은 일상에 지친 도시인이라면 '오지'만큼 매력적인 단어는 없다. 조용히 눈을 감고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밤새 내린 눈이 따듯한 햇살에 녹는 소리를 듣는 것은 도시인에게 꿈과 같은 생활이다.

부연마을은 겨울이면 더욱 조용해진다. 30가구 가운데 20여 가구 25명 정도만 이곳에서 겨울을 지낸다. 마을 사람들은 약초 재배와 감자, 옥수수 농사를 짓는다. 몇 해 전부터는 산촌체험마을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외지인들이 다녀가기 시작했다.

자연과 동화된 삶을 즐겨보고 싶다면 오대산 부연마을이 좋다. 봄에는 새로운 자연이 살아나는 소리가 들리고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이 있다. 가을에는 산속 마을 여유를 즐길 수 있고 겨울에는 흰색의 자연과 함께할 수 있다.

〈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


숙박/
산촌체험마을/ 통나무집에서 산촌체험을 할 수 있다. 033-661-6671
황토펜션/ 황토방으로 만들어졌다. 전통 장 담그기 체험도 가능하며, 직접 만든 장을 판매한다. 033-661-9949
가마소펜션/ 부연마을 초입에서 서낭당 방향에 위치했다. 033-661-9233

맛집/
부연동 토종꿀농장/ 부연마을의 특산품으로 영농조합에서 운영한다. 033-662-7215
일월장원/ 시골 토종닭과 산채비빔밥이 별미다. 033-661-5573

가는길/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446번 국도를 타고 월정사 방향으로 직진.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를 끼고 우회전해서 진고개로 올라간다. 진고개에서 부연동 휴양지 이정표를 따라 비포장 도로를 6km 달리면 부연마을에 닿는다.
[길,숲,섬]세속을 씻어내는 천년의 시간, 월정사 전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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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와 역사를 함께 해 ‘천년의 숲’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 들어서면 향긋한 전나무 냄새에 휩싸인다. 누군가 ‘숲은 마음을 치료하는 녹색 병원’이라 했던가. 월정사 전나무 숲을 걷다보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화보] 월정사 전나무 숲

겨울 오대산을 찾은 건 부안 내소사, 남양주 광릉수목원과 더불어 한국 3대 전나무 숲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곳이 월정사 입구에 있다고 해서다. 월정사라면 불교의 성지가 아닌가. 심신의 세속을 씻어내는 특별한 숲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오대산 입구에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 어귀부터 빼곡히 얼굴을 내민 전나무 가로수가 반긴다.



소나무 대신 전나무가 들어선 곳

멋들어지게 솟아 있는 소나무를 보는 것이 강원도 여행의 백미라면, 월정사 전나무 숲은 오대산 여행의 별미라고 할 수 있겠다. 월정사 전나무 숲은 일주문부터 금강교까지 1km 남짓한 길 양쪽에 있었다. 평균 수령 80년이 넘는 전나무가 자그마치 1700여 그루란다. 사찰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 중 첫 번째 문인 일주문 안쪽으로 숲이 조성돼 있기 때문에 전나무 숲은 월정사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월정사는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나고 온 자장율사가 643년 지금의 오대산에 초막을 짓고 수행을 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원래는 소나무가 울창하던 이곳이 전나무 숲이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고려 말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선사가 부처에게 공양을 하고 있는데 소나무에 쌓였던 눈이 그릇으로 떨어졌다. 그 때 어디선가 나타난 산신령이 공양을 망친 소나무를 꾸짖고 대신 전나무 9그루에게 절을 지키게 했다는 것이다. 그 후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월정사를 지켰기에 월정사 전나무 숲은 ‘천년의 숲’이라 불리게 됐단다.

월정사 전나무 숲 〈이다일기자〉

몸의 세속을 씻어내는 길

전나무는 나무에서 젖(우유)이 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걸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다. 탄소와 수소가 결합된 바늘잎에서는 상큼한 향이 뿜어져 나온다. 식물성 살균물질인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숲길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다. 최고령 370년에 달하는 아름드리 전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 배경 속에 와 있는 것 같다. 숲길 중간에 2006년 10월 태풍에 쓰러졌다는 전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40m가 넘는 몸체가 꺾이고 남은 나무 밑동은 성인 2명이 들어가도 남을 정도로 거대하다. 수령 500년이 넘는 최고령 나무였다고 하니 쓰러진 뒤에도 풍기는 위용이 남다르다.

숲길 옆을 흐르는 오대천 상류 계곡은 눈이 쌓인 채로 얼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따뜻한 날에는 수달, 삵, 족제비 등 야생동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매일 오전11시와 오후 1시에 열리는 전나무 숲 자연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마음의 세속을 씻어내는 길

길을 걷는 연인과 가족 사이로 행자복을 입은 사람이 눈에 띈다. 혼자 천천히 걸으며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비워내는 듯한 표정. 월정사 단기출가학교의 입학생이다. 일반 사찰의 템플스테이와는 달리 삭발을 하고 행자복을 입은 채 고행을 이어가는 프로그램이 월정사 단기출가학교다. 그 시작이 전나무 숲을 삼보일배하며 비워내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전나무 숲길에는 2004년부터 시작된 단기출가학교 입학생들을 기리는 삭발기념탑이 세워져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마을 신을 모시는 성황각이 보인다. 예전에는 이 숲길 안쪽에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절의 시작을 뜻하는 일주문 안에 성황각을 그대로 남겨놓았다는 것은 불교가 토속신앙을 포용한 흔적이다. 그래서일까. 굳이 불자가 아니어도 전나무 숲길을 걸으면 세속적인 마음을 씻어내는 기분이 든다.

전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금강교가 나오고, 그 위에 바로 월정사가 위치해 있다. 한국전쟁 때 영산전, 진영각 등 17동의 건물과 월정사 소장 문화재가 불에 타 재로 변한 뒤 1964년 탄허 스님이 월정사를 중건했다. 현재는 국보 제 48호인 팔각구층석탑만이 고려 초기 사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전나무 숲길을 걷고 난 뒤 월정사에서 절밥을 맛보고 하룻밤 몸을 누이는 것도 좋다. ‘숲은 마음을 치료하는 녹색 병원’이라는 말이 전나무 숲을 걸어 월정사에 닿으면 더욱 실감나기 때문이다.

〈이윤정기자 yyj@khan.co.kr〉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진부 IC로 빠져나와 진고개 방면 6번 국도로 4km 정도 직진하면 월정사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해 1km 정도 가면 월정사다. 버스는 강릉이나 원주까지 고속버스를 이용한 뒤 진부터미널행 시외버스를 타면 된다. 진부터미널에서 월정사는 매시간 운행되며 월정사행 첫차는 6시20분, 진부행 막차는 19시 55분이다.

숙박/
월정사 템플스테이 1박 2일에 3만원 정도한다. 많은 사람이 찾기 때문에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033-332-6664

맛집/
월정사 절 안에서 공양 밥을 먹을 수 있다. 각종 나물과 약초들로 담백하게 차려진 웰빙 밥상이 맛깔나다. 밥을 먹고 나면 자신의 식기를 직접 씻어 제자리에 갖다놓아야 한다. 033-332-6664

오대산식당 오대산에는 각종 나물로 정성스럽게 차린 산채 음식이 유명하다. 곰취, 참나물, 개두릅, 표고버섯 등이 나오는 산채정식은 1만원, 산채비빔밥은 5천원이다. 033-332-6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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