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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전사’ 대관령

[新택리지]설원에 펼쳐진 바람의 나라, ‘기후전사’ 대관령

사람만이 아니라 구름도 쉬어가는 곳. 대관령은 ‘기후의 마술사’이다.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과제 앞에 대관령은 재발견되고 있다.

2002년 8월 31일 하루 동안 강릉에 870.5mm의 비가 내렸다. 국내 기상 관측 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2006년 7월 14~24일 평창 지역에 쏟아진 집중호우 역시 대단했다. 이 기간 봉평의 누적 강우량은 694mm에 이르렀다.

2000년대 들어 이상 강우 현상이 대관령 양쪽 지역에서 자주 나타나고 있다. 루사(2002년), 매미(2003년), 메기(2004년), 에위니아(2006년) 등 태풍 진로만 탓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왜 태풍이 전보다 자주 이 지역을 지나는지, 왜 그때마다 기록적인 비를 퍼붓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숱한 역사적 사연과 애환이 서린 곳

반정에서 바라본 대관령 동쪽 사면 대관령 지역은 동쪽이 험한 급경사이고 서쪽은 완만한 고원지대를 이룬다. 반정에서 본 백두대간 능선은 구름이 낮게 걸쳐 있어 마치 하늘에 닿은 듯하다. (이다일기자)

이 지역의 기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대관령일 것이다. 강릉시와 평창군은 한반도의 등뼈 격인 백두대간(태백산맥)을 끼고 있다. 북쪽 오대산국립공원의 두로봉(1422m)·노인봉(1338)·소황병산(1328m)에서 남쪽 능경봉(1123m)·고루포기산(1238m)으로 이어지는 산맥의 큰 줄기가 두 지역의 경계를 이룬다. 그 사이에 있는 해발 832m의 고개가 바로 영동과 영서를 잇는 오랜 관문인 대관령이다. 일반적으로 대관령 지역이라면 이 대관령을 중심으로 한 백두대간의 양쪽 사면을 일컫는다.

대관령의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크다. 영동 지역에서 서울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로서 수많은 역사적 사연과 선인들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김유신이 무술을 연마하고, 명주군왕 김주원의 후손인 왕순식이 왕건을 도우러 출정했으며, 백성에서 관리에 이르기까지 숱한 눈물을 뿌렸던 곳이다. 원울이재, 하제민원, 굴면이골 등과 같은 신기한 지명과 신사임당 사친시를 비롯한 옛 사람의 글에서 그 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

전통문화의 살아 있는 보물 창고

이처럼 대관령은 풍부한 문화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대관령산신 김유신을 모신 산신당과 국사성황신 범일국사의 사당인 국사성황사는 전통문화의 살아 있는 보물 창고이다. 세계무형유산인 강릉단오제는 대관령산신에게 제를 지내고 국사성황신을 강릉 시내로 모시는 데서 시작된다. 산신당과 국사성황사에는 지금도 전국 무속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국사성황사에서 성황맞이 기도를 드리던 한 무속인의 말처럼 “이곳을 거치지 않으면 무당이 될 수 없다”고 할 정도다.

삼국 통일 후 대관령 산신으로 대관령 정상 부근 국사성황당에는 죽어서 대관령 산신이 된 김유신 장군을 모신 산신당이 있다. 강릉단오제의 주신 범일국사의 사당인 국사성황사와 나란히 있다. (신동호기자)



과거의 악조건이 지금은 호조건으로

자연이 선물한 가치도 상당하다. 대관령 지역은 동쪽은 경사가 급하고 서쪽은 완만하면서 펑퍼짐하다. 전형적인 경동지괴 지형이다. 이런 지형적 조건이 수증기를 포함한 대기의 동서간 이동을 막아 앞서 말한 기록적인 집중호우의 요인이 되지만 뜻밖의 혜택을 안겨주기도 한다.

대관령 지역은 대한민국에서 서리가 가장 먼저 내리는 곳이다. 겨울에는 가장 춥고 눈과 바람이 많다. 예전에는 악조건이었던 이런 요소들이 지금은 이 지역을 먹여 살리는 자원이 되고 있다. 고원지대에서나 가능한 목초지, 고랭지 작물, 황태덕장 등이 그 예다. ‘눈의 나라’라는 별명에 걸맞게 동계 레포츠가 산업과 문화의 기반을 이루었고, 여름 또한 서늘해 사계절 휴양과 위락을 위한 시설이 최근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자연 조건은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대관령만의 자산이다.

대관령 브랜드 놓고 강릉시-평창군 갈등도

이 때문에 강릉시와 평창군이 갈등을 빚기도 했다. 행정구역상으로 대관령 동쪽은 강릉시 성산면, 서쪽은 평창군 도암면이었다. 2007년 9월 평창군은 도암면의 행정명을 대관령면으로 바꾸었다. 강릉으로서는 서울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지역 문화의 산실이며 조상 대대로 진산(鎭山)으로 삼았던 대관령을 평창에 빼앗긴 셈이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강릉시와 평창군의 ‘대관령’ 브랜드 경쟁 평창영월정선축산농협이 직영하는 대관령한우타운. 청정하고 사람이 살기 좋은 고원지대를 상징하는 ‘대관령’은 강릉시와 평창군이 공유하는 명품 브랜드가 됐다. (이다일기자)

하지만 이미 브랜드를 선점당한 것은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평창군 도암면은 물론 대화·진부면까지 강릉부 관할이었고 ‘문화적’으로 강릉이 대관령을 포함하고 있다는 데서 애써 자위하는 모습이다. 현재 대관령은 ‘대관령 한우’ ‘대관령 명품 소나무’ 등 여러 브랜드의 이름으로 양쪽에서 사용되고 있다.

‘착한 임금 밑에 산천은 손해가 많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14세에 강릉 원으로 부임하는 아버지의 가마를 따라 대관령을 넘었다. 뒷날 그는 대관령 지역을 다시 지나면서 빽빽하던 숲이 모두 개간되어 한 치 굵기의 나무도 없는 것을 보고 “착한 임금 밑에 인구가 점점 많아짐을 알겠으나 산천은 손해가 많다”며 개탄했다.

이 말은 25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의미 있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이중환의 아버지가 울고 넘었을 법한 원울이재(員泣峴)는 이미 민가와 펜션 지역 안으로 들어와 있고 길도 잘 포장되어 있었다. 최근 정비된 대관령옛길은 인기 있는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한반도 기상 변화의 포인트

전국 구석구석이 갖가지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에서 대관령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각별하다. 대관령은 한반도 기상 변화의 포인트이자 그 영향이 극심하게 나타나는 지역이다. 전 지구적 문제로 대두한 기후변화의 중요한 영향권 가운데 하나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글머리에 쓴 강릉과 평창 일대의 기록적인 폭우가 한 가지 예가 될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한반도 평균 기온은 세계 평균의 약 2배인 1.5도 상승했다. 온난화의 영향은 기후에 민감한 지역에 더욱 증폭되어 나타나게 마련이다. 태풍 세력이 약화되지 않고 북쪽으로 더 올라오는 일이 생기는 것도 온난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바로미터 가운데 하나가 지역민의 생업이다. 목축업이나 고랭지 농사, 황태덕장 등은 시들해지고 펜션 등 관광업은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시장 논리나 세태 탓도 있지만 기후변화 요인도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새롭게 발견되는 대관령의 가치

기후변화의 대책은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이고 흡수를 늘이는 쪽으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문화·관광 자원으로서 대관령의 가치는 여기서 재발견된다. 바로 기후변화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고 육성할 수 있는 자원이다. 즉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것이다. 옛날 이 지역의 삶을 어렵게 했던 폭설을 오히려 관광 자원으로 만들었듯이.

대관령은 ‘바람의 나라’이다. 대관령 정상에 서본 사람이라면 몸이 날아갈 듯한 강풍을 경험했을 것이다. 문제는 바람의 질이다. 대관령에는 연평균 초속 6.7m의 바람이 꾸준히 분다. 유능수 강원대 교수에 따르면 대관령은 풍속이 대체로 꾸준해 풍력발전의 최적지다.

대관령 삼양목장, 모든 국민에게 쇠고기와 우유를... 삼양축산이 운영하는 대관령목장. 전 국민에게 우유를 먹이고자 박정희 대통령이 지시해 1970년대에 조성했다고 한다. 이 일대에는 53기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이다일기자)



2006년 10월 완공된 대관령 풍력발전단지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발전 용량은 소양강 다목적댐의 절반에 해당하는 98MW급인데, 이는 약 5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다. 매출은 연간 200억~300억 원이고, 15만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대관령은 풍력발전의 새로운 메카를 꿈꾸고 있다.

‘명품 소나무’의 두 가지 용도

기후변화와 관련한 대관령의 또 하나 자원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숲이다. 산림청과 강릉시는 대관령 숲, 특히 소나무를 명품화하는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관령 일대에는 곧게 자란 금강송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1920년대에 씨를 뿌리는 방식으로 조림한 것이라고 한다. 동부지방산림청이 인공으로 조림한 금강소나무 숲 400ha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숫자가 14만 그루에 이르며 이들의 평균 수령은 85년, 가슴높이 지름은 38cm이다. 1989년 국내 최초로 개장한 국립자연휴양림이 그 안에 있다.

금강송은 곧게 잘 자라고 가지가 많지 않아 문화재 복원용으로도 이용된다. 산림청 산하 강릉국유림관리소 이상인 소장에 따르면 가슴높이 지름 60cm 이상의 대관령 금강송 약 600그루가 숭례문 복원 등에 쓰일 예정이다.

대관령 명품 소나무는 강릉의 얼굴 고속도로 진입로에 심어진 금강송은 강릉시가 자랑하는 대관령의 명품 소나무다. 대관령에는 목재로 우수한 황장목 적송이 가장 많이 분포한다는 게 강릉시의 주장이다. (신동호기자)



나무는 탄소 덩어리나 마찬가지다. 금강송처럼 크게 자라는 나무는 그만큼 이산화탄소를 많이 흡수한다. 산림청과 강릉시가 추진하는 ‘소나무 명품화’는 숲을 잘 가꾸어 보존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관령의 바람과 소나무는 새롭게 대두하는 탄소경제의 ‘명품 자원’이 될 수 있다. 대관령산신이 된 김유신 장군이 지구를 지키는 ‘기후전사(氣候戰士)’로 나선 것일까.

[화보] ‘기후전사’ 대관령

〈경향닷컴 신동호기자 hudy@khan.co.kr〉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횡계IC에서 나오면 대관령 서쪽 사면인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이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횡계행 시외버스(2시간30분 소요)를 탈 수 있다. 횡계에서 옛 영동고속도로(456번 지방도로)를 타고 강릉 쪽으로 가면 대관령 동쪽 사면인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이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강릉행 고속버스(15분 간격, 3시간10분 소요)를 타고 강릉터미널에 내려 503번 시내버스(1시간 간격)를 타면 대관령 옛길 입구에 있는 대관령박물관에 이를 수 있다.

연락처/
대관령박물관 033-640-4482~3
대관령삼양목장 033-335-5044~5
대관령자연휴양림 033-641-9990
강릉국유림관리소 033-661-8322

맛집/
삼포암쉼터식당/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가마골에 있다. 456번 지방도로에서 대관령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마을이다. 집에서 직접 달인 옻으로 만든 옻닭이 유명하고 토종닭, 오골계 요리도 맛볼 수 있다. 033-641-9091
대관령한우타운/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 있다. 평창영월정선축산농협에서 직접 운영하는 만큼 엄격한 기준으로 사육·도축한 한우 고기를 사용한다. 부위 별로 눈으로 보고 고기를 골라 구워 먹을 수 있고,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 033-332-0001

숙박/
대관령유스호스텔/ 강릉에서 456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가 보현사 방향에 있다. 대관령 옛길과 가깝다. 033-648-4001
파스칼모텔/ 초고속 인터넷 이용이 가능하다. 강릉 신터미널 부근에 있어 강릉 시내와 대관령으로 접근이 쉽다. 033-646-9933

[소읍기행]하늘 아래 첫 동네, 대관령 횡계
평창 사람들은 대관령을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해발 700m의 자연 도시’라고 부른다. 겨울이면 눈세상으로 변하는 횡계리는 한국의 알프스라 부를만 하다.

산 너머 산 횡계의 산은 한 폭의 동양화 같다. 눈 내린 산등성이가 굽이굽이 이어져 있다. 횡계리는 평균 해발 700m의 고원에 위치해 아시아의 알프스라 불릴 만하다. |이다일기자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해 뜨는 동쪽으로 달리다 귀가 멍멍 하는 고도 차이를 느낄 즈음이면 ‘하늘 아래 첫 동네’ 횡계가 가까이 있다. 백두대간 마루에 위치한 평균 해발 700m의 고원지대다.

설국의 길 눈의 나라 횡계리. 밤새 눈이 80cm의 내렸지만 횡계리에선 일상 생활일 뿐이다(위). 고드름 실로폰 지붕에 내린 눈이 녹아 흘러 고드름이 되었다. 야구 방망이보다 기다란 고드름이 처마 끝에 모였다. 마치 실로폰처럼 길이도 제각각이다. 횡계의 겨울은 눈이 연출하는 다채로운 풍경으로 둘러싸여 있다.(아래) |이다일기자

산속의 횡계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인근에 용평리조트와 조성 중인 알펜시아리조트가 위치해 스키, 골프를 즐기기 위한 방문객이 많다. 여름에도 새벽녘엔 보일러를 틀어야 하는 서늘한 날씨 덕에 계곡마다 펜션이 들어서 무더운 도시의 여름을 피해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겨울 횡계의 꽃은 눈이다. 대관령눈꽃축제가 열리고 곳곳에 눈썰매장이 들어선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의 소재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설원’, ‘한국 스키의 발상지’라고 쓴 큰 표석이 세워져 있다.

횡계에는 고랭지 채소, 황태덕장과 함께 양과 소를 키우는 목장들이 들어서 있다. 모두 높은 고도의 자연에 순응한 생활 방식이다.

☞ [화보] ‘한국의 알프스’ 횡계의 아름다운 자연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

<숙박>
신세계대명리조트콘도(033-335-5011) 횡계리에 위치했다. 150개의 객실로 용평리조트, 대관령과 가깝다.
용평리조트 유스호스텔(033-335-5757) 73개의 객실이 있다. 주로 청소년들의 수련회에 사용된다.

<맛집>
고향이야기(033-335-5033) 대관령면 사무소에서 용평리조트 가는 길목에 있다. 엄나무돌솥밥, 곤드레돌솥밥이 별미다.
황태회관(033-336-5975) 산채나물, 생선구이와 함께 나오는 황태해장국이 일품이다.

<가는길>
영동고속도로 횡계IC에서 나가면 된다. 구 영동고속도로로 강릉에서 넘어오면 횡계IC에서 신고속도로와 만난다. 고속버스는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