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양탕

맛도 영양도 최고입니다
중복 날 점심시간 어느 영양탕 집 표정
이승철(seung812) 기자
중복 날인 어제(30일) 점심시간. 동료들이 좋은 곳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무심코 따라 나서고 보니 서울 동대문구 장안평에 있는 어느 영양탕 집이었다. 그런데 입구에 도착하니 출입문을 지키고 선 주인이 문밖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 애호가들은 여름철에는 그저 이 탕 한 그릇이 최고랍니다.
ⓒ 이승철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일행들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몇 팀이나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이미 예약을 했었던 모양이지만 소용이 없었다. 먼저 온 순서대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번호를 받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약을 했다고 해서 먼저 들여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문밖에서 잠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식당 안을 들여다보니 70여명이 앉을 수 있는 방과 30여명이 앉을 수 있는 방 두 개가 모두 빈자리 없이 가득하다.

입구의 신발장도 모자라 바닥에 무질서하게 벗어놓은 신발들이 어지럽다. 먼저 먹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을 때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주인이 먼저 온 순서대로 입장을 시키고 있었다.

"아니 이 집이 무슨 대단한 집이라고 이렇게 기다리지, 다른 곳으로 갑시다."

식당 앞에서 기다리기에 익숙하지 않은 일행 중 한 명이 불평을 한다. 무슨 대기실이나 앉아서 기다릴 만한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차장을 겸한 마당에서 기다리려니 짜증이 날만도 했다.

▲ 들어가 앉을 자리가 없어 문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 이승철
"그래도 조금 더 기다려 보세요. 이 집 영양탕 정말 대단합니다."

웬 할머니 한 분이 우리들 옆에 서 있다가 우리 일행의 불평에 거들고 나서는 것이었다. 출입문 입구에 혼자 서 있는 것이 주인 할머니인 것 같기도 했다.

"아니요, 딸 사위랑 영양탕 먹으러 왔어요. 오산에 사는 사위가 오늘 중복 날이라고 장모 몸보신 시켜준다고 찾아와서 같이 왔어요."

내가 '주인 할머니냐'고 묻자 할머니는 자신도 지금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참 이쁘고 좋은 사위네요. 장모님을 위해서 먼데까지 몸보신 시켜드리려고 찾아오고, 그런데 여자 분들은 영양탕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따님도 좋아합니까?"

내 질문에 할머니가 펄쩍 뛴다. 좋은 사위라는 말에는 동의를 하는데, '여자들은 영양탕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못 마땅했던 모양이다.

"왜요? 여자들도 영양탕 얼마나 좋아하는데…. 내 친구들 모임이 있는데 아홉 명 모두 얼마나 좋아한다고요. 벌써 10년째 모임은 항상 이 집에서 하는데."

식당 근처에 살고 73세가 되었다는 이 할머니는 그야말로 영양탕 애호가였다. 할머니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딸과 사위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쪽으로 오라고 부른다.

"73세나 되신 할머니가 왜 이렇게 피부가 곱고 예쁘신 가 했더니 영양탕을 자주 드셔서 그렇구나."

누군가 옆에서 할머니를 놀리듯 농담을 던진다. 기다리는 것이 지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피부가 곱고 예쁘다는 칭찬이 기분이 좋은 듯 자신의 볼을 한 번 쓰다듬으며 만족한 표정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70이 넘은 나이에 비하여 정말 혈색도 좋고 피부가 고운 편이었다.

▲ 신발장도 넘쳐 입구 통로에까지 무질서하게 벗어놓은 신발들
ⓒ 이승철
그 사이 우리 일행들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몇 팀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아직 우리 차례는 조금 더 기다려야 될 것 같았다. 그때 승용차에서 내린 몇 사람이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던 젊은 주인에게 제지를 당하고 돌아선다.

"아니, 30년 단골을 이렇게 푸대접해도 되는 거야? 이 집 안주인 좀 나오라고 해!"

그들 중 한 명이 몹시 기분이 상한 듯 젊은 주인에게 거칠게 항의를 한다. 그러자 젊은 주인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달랜다.

"30년 단골이시니까 좀 참고 기다려 주셔야죠, 죄송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한 층 더 기세가 등등해졌다. 30년 단골이라 장담하고 다른 손님들을 모셔왔는데, 이렇게 되면 자신의 체면이 뭐가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자신들은 조금 기다려도 괜찮으니 참으라고 그를 말린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억지를 부리는 일행을 보며 민망했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그도 어쩔 수 없이 잠잠해진다.

"이 영양탕 집 30년 단골이시군요? 그런데 영양탕 중에서 어떤 걸 주로 즐기십니까?"

조금 전에 기세가 등등했던 60대 초반쯤의 사람에게 내가 슬쩍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러자 그가 흘깃 나를 쳐다본다. 별 말 같지 않은 질문이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 방안 가득한 영양탕 애호가들, 여성들과 아이들도 보입니다
ⓒ 이승철
"아, 그야 당연히 보신탕이지요, 뭐 다른 게 있습니까?"

그 역시 오래 전부터 보신탕을 즐기던 애호가였던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며 조금 전에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던 생각이 나 슬쩍 약을 올려 주기로 했다.

"요즘 동물애호가들이나 애견가들은 보신탕 먹는 사람들을 사람 취급도 안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질문은 적중했다. 그의 눈이 커지는 가 했는데, 그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놓기 시작한 것이다.

"뭐라구요? 보신탕 먹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한다고요? 개는 동물 아닙니까? 개하고 소하고 뭐가 다른데요? 사람들이 정말로 미안해해야 할 동물은 솝니다. 소! 지금이야 다 기계화되었지만, 옛날에는 소 없으면 농사도 짓지 못했습니다. 그런 소는 잡아먹어도 괜찮고 개는 안 되는 이유가 뭐랍니까?"

그가 열변을 토하고 나자 그의 다른 일행 한 사람이 점잖은 목소리로 뒤를 잇는다.

"맞아! 다 서양 사람들 영향을 받아서 그래! 우리 앞집에 사는 사람들은 개를 가족이 아니라 상전 모시고 사는 것 같다니까. 얼마나 떠받드는지 원! 노숙자나 가난한 사람들이 밥을 굶는다고 해도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쯧쯧."

"아무렴,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 아니야? 사람보다 개가 더 우선 되는 건 문제가 있어."

"전에는 서양 X들이 시비를 걸더니만, 요즘은 같은 우리나라 사람들까지 별걸 가지고 야단들이야 정말! 싫으면 자기네들이나 안 먹으면 그만이지…."

또 다른 사람이 거들고 나섰다. 그때 순서를 챙겨주고 있던 젊은 주인이 우리 일행들을 불렀다. 기다린 지 20여 분만에 드디어 우리들의 차례가 돌아온 것이었다.

▲ 미국인 단골손님도 즐기는 보신탕이랍니다
ⓒ 이승철
안으로 들어가니 빈자리가 없이 꽉 찬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소주나 사이다를 곁들여 음식을 먹고 있었다. 영양탕으로 보신탕 외에 오리고기와 삼계탕을 같이 하는 집이었지만 상 위의 음식들을 보니 거의 대부분 보신탕이다. 그리고 보신탕을 먹는 사람들의 30∼40 퍼센트는 여자들이고, 아이들도 몇 명 눈에 띈다.

문 밖에서 만난 할머니의 말처럼 보신탕이 남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렵사리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그때까지 몇 사람이 문밖에서 기다리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집에 보신탕 먹으러 오는 외국인도 있습니까?"

문에서 순서를 챙겨주는 젊은 주인에게 물어 보았다.

"예, 몇 사람 있습니다. 그 중에 한국인 친구와 함께 자주 오는 미국인, 백인이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은 보신탕 엄청 잘 먹습니다. 국물도 남기는 법이 없으니까요."

그 백인이 처음 한국인 친구와 함께 왔을 때는 상당히 망설이며 먹는 것 같았는데 몇 번 온 후로는 한국인 친구보다 더 잘 먹는다는 것이었다.

보신탕을 금기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보신탕을 최고의 영양식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보신탕에 맛들인 미국인들도 있다는 것을 보면 음식문화의 차이라는 것도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몸에 좋은 영양이 듬뿍 들어 있어서 영양탕이랍니다
ⓒ 이승철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여름철이면 보양식으로 즐겨 먹었다는 보신탕. 그 보신탕을 오늘도 즐기는 사람들과 그것을 혐오식품으로 규정짓고 반대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중복 날의 영양탕 집은 그야말로 만원사례였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팥 칼국수  (0) 2006.08.03
부침개  (0) 2006.08.02
호박죽  (0) 2006.07.30
부추수제비  (0) 2006.07.28
비 오는 날, 입맛 당기는 수제비와 부침개  (0) 200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