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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매미가 목이 터져라 울 때면, 점심은 어김없이 팥 칼국수나 수제비였다. 지금 생각하니 쌀이 귀했던 시절이라 한 끼만이라도 밀가루로 때우고자 했던 것 같다. 여름이면, 부엌에서 불을 때면 방이 더워지기 때문에 집집마다 마당에 흙으로 빚은 화덕이 턱하니 버티고 있었다. 엄마는 밀가루를 마루로 가져와 반죽을 되직하게 한 후 깨끗한 거즈에 물을 축여 올려놓고, 팥을 씻어 푹 퍼지게 삶아 놓은 후 마루에 앉아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로 얇게 밀었다. 홍두깨가 하나밖에 없던 탓에 아이들은 술병을 가지고 와서 반죽을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얇게 밀었다. 또 엄마가 얇게 썰어놓은 칼국수 솜씨를 따라하려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민 칼국수 반죽을 최대한 예쁘게 썰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그런 후 마른 밀가루 두 숟가락 뿌려 서로가 붙지 않게 둥그런 양은 밥상에 털어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데 마당에서는 팥물이 끓느라 온 집안은 사우나는 저만치 가라했지만, 아이들은 그 팥죽을 먹을 욕심에 침을 삼키며 기다렸었다. 죽이 완성되면 엄마는 빨리 식으라며 큰 양푼에 팥 칼국수를 떠준다. 그 칼국수를 들고 우물가로 달려간 아이들은 큰그릇에 물을 가득 담고 칼국수 그릇을 배 띄우듯 띄우고 찬물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히 저었다. 그때 한 젓가락씩 먹던 그 맛. 정말 꿀맛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죽을 싫어 하셨다. 2, 30년대에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보낸 아버지는 죽을 호랑이보다 더 싫어 하셨다. 그래서 엄마는 죽을 끓이는 날에도 꼭 밥을 별도로 하셨다. 며칠 전부터 남편은 팥 칼국수 먹던 어린 시절 얘기를 자주 했다. 그래서 맘먹고 아침을 먹은 후 팥을 씻었다. 돌이 들어가지 않게 조리로 일어 물에 불린 후 압력 밥솥에 앉히고 밀가루 반죽을 했다.
그리고 새 행주에 물을 약간 적신 후 반죽 위에 덮어놓고 삶아진 팥을 곱게 간다. 그 사이 반죽을 수시로 주물러 줘야 한다. 팥물을 은근한 불에 올린 후 반죽을 홍두깨로 얇게 밀어 일반 시중에 나와 있는 칼국수보다는 약간 더 굵게 썬다. 그렇게 썰어놓은 칼국수는 밀가루를 살살 뿌려서 쟁반에 준비해 놓는다. 팥물이 끓어오르면 그때 면발을 넣는다. 이때 자리를 뜨면 넘칠 우려가 있으니 불 옆에 꼭 지켜 서서 바닥이 면이 눌지 않도록 저어줘야 한다. 면발이 끓으면 면발을 건져 국수 삶을 때처럼 찬물을 두 번 정도 끼얹어준다. 그러면 면발이 쫄깃쫄깃해진다. 그리고 먹는 도중에 되직해지니까 너무 뻑뻑하게 끓이면 안 된다. 마지막에 소금으로 간을 하고, 식성에 맞게 설탕을 넣은 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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