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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가 먹고 싶어서 부천 중동으로 향했다. 한때 자주 드나들던 단골집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 어디 갔지? 아무리 둘러봐도 단골집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이쯤인데 싶은 거기에는 상호가 다른 참치집이 자리 잡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서 물어보았다. “여기 주인 바뀌었어요?” 그러자 주인이라는 사람이 “일단 앉으세요. 잘 해 드릴게요”하면서 상호만 바꾼 거라고 한다. 원래 자기가 주인이라면서. 근데 그 말이 우습지도 않게 들린다. 원래 이집에 있던 백두참치 주인과 나는 아는 사인데도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자기가 주인이었다니. 그나저나 단골집이 사라졌으니 어쩐다. 고민 좀 하다가 근처에 그날 개업한 듯한 집으로 들어갔다. (설마 개업한 날부터 실망스럽게 나오진 않겠지) 그러나 기대와 달리 자리에 앉자마자 곧 실망감이 밀려왔다. "뭐야..에어컨도 안틀었나. 왜 이리 더워?" 종업원에게 얘기했더니 에어컨이 고장 났다고 한다. 물론 그 정도 온도를 못 참을 정도는 아니지만 음식은 실내의 온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뜨거운 매운탕 같은 건 좀 시원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먹는 동안 땀 뻘뻘 흘리면서 먹고나면 개운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참치처럼 차가운 음식은 땀을 흘리면서 먹는 음식은 아니다. 실내 온도가 높으면 참치가 빨리 해동되어 미지근한 참치를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런 참치를 먹느니. 차라리 넙치를 먹는 게 낫다. 분위기를 살피니 확장 개업한 듯 보인다. 가게만 넓혔지 일 하는 사람은 그대로인 듯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바쁘다. 내 속에서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빨리 일어나 다른 집으로 가'라고 부채질을 하고 있지만 참치는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내 속마음한테 인내와 끈기를 요구했다. 물론 그런 나에게 참치는 실망감으로 보답해 준다. 속상한 마음에 새우튀김을 한 입 베물었더니, 이럴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새우튀김에서 새우 향이 나지 않는다. 짧은 내 생각으론 새우는 남녀노소 누가 튀겨도 고소한 새우 향이 날 것 같은데 새우깡보다도 못하다. 음. 신기하군. 이 집의 참치에 대한 미련을 더 이상 가지면 안 되겠구나. (반 병밖에 마시지 않은 매실 골드가 아깝군) 계산을 하는데 주인아주머니의 말씀이 걸작이다. “오늘 부족한 게 있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다음에는 잘 해 드릴게요.” (흥! 됐거든요)
그로부터 며칠 후, 내 단골 참치집인 백두참치에 대한 검색을 해 보았더니 신림동으로 이전한 걸로 나온다. 그럼 그렇지! 부천 참치집을 주름잡았던 실력인데 없어질리는 없겠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 일요일 저녁, 사당동 집에 들렀다가 나오면서 실로 오랜만에 백두참치에 들렀다. 사람들은 비가 오면 삼겹살이나 빈대떡집으로 향하지만 난 참치를 먹으러 간다. 비가 오면 참치집은 아무래도 손님이 줄 수밖에 없다. 그럴 때 가야 만족할 만한 대접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역시 예상대로 가게 안은 한산했다.
참치 도마가 있는 바로 앞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유는 다들 아실 것이다. 가까이 앉으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단골집을 찾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음식의 맛은 기본이겠지만 한편으론 그 편안함에 있을 것이다. 그 편안함은 익숙한 공간에 대한 편안함 일수도 있겠고. 신뢰에서 오는 편안함일 수도 있다. 그날 내가 백두참치에서 느낀 편안함도 신뢰에서 오는 편안함이다. 신림동으로 이전한 후 처음 가본 그곳이지만 참치가 잘 나올까 하고 의심하지 않는 편안함이다.
언젠가 백두참치 이진구 사장님에게 왜 백두참치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치와 백두산과는 어울리지 않아서다. 사장님의 답변은 길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이 백두산 아닙니까? 백두산처럼 참치의 최고봉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그 말을 듣고도 한 동안은 백두참치라는 상호가 별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이젠 어느 참치집보다 더 친숙한 느낌이 든다.
참치는 1만7000원부터 있다. 이 집도 가격을 선택하면 참치가 무제한 제공된다. 복분자와 함께 2만3000원 하는 스페셜을 주문했다. 언제나 그렇듯. 초생강과 초마늘을 푸짐하게 내놓는다. 무순도 넉넉하게 나온다. 참치는 다른 집에서처럼 물리게 하는 부위는 나오지 않는다. 특히 머릿살 부위가 많이 나오는 게 이 집의 장점이다.
시원한 참치회가 먹음직스럽다. 식기 전에 먹어보자. 참치에 고추냉이를 조금 올려서 간장에 살짝 찍어 먹는 게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몇 번 씹히는가 싶더니 사르르 녹으면서 입 안에선 시원함이 감돈다. 한번에 두세 점씩 접시에 올려지는데도 천천히 즐기면서 먹다보니 해동이 다 된 참치는 한쪽으로 밀려나 찬밥신세가 되기도 한다.
참치 먹으러 가서 '참치 눈물 주'를 맛보지 않으면 되겠는가. 적당한 타이밍에 눈물주가 나온다. 내용물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자 한잔 들이켜볼까? 요건 아낄 필요 없다. 한번에 쭈욱~ 마치 날계란을 먹는 느낌이랄까? 시원하면서 미끌한 것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맛이 기가 막히다. 부위별로 나오는 참치를 그렇게 한점 두 점 먹고 나니. 먹는 속도가 점차 느려지기 시작한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이만하면 됐다. 해서 “그만 올리세요. 여기 있는 것만 먹고 일어설게요” 말했더니. “천천히 드시고 가세요. 계속 드릴게요” 한다. 그러면서 몇 점을 더 올린다. 그래 성의를 봐서 저건 먹고 가자. 백두참치. 상호에 걸맞게 맛도 서비스도 최고봉에 오르기를 기대해본다. 물론 초심을 잃지 않는 건 최고봉에 오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겠지만. 밖으로 나오니 비는 꾸준히 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