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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내내 아내와 나는 김장배추 모를 부었다. 그늘에서 일하는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모판에 상토를 붓고 씨 하나하나를 넣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 사나흘이면 싹이 틀 것이다. 오후에는 선풍기에 의지해 낮잠을 잤다. 한 시간 남짓 곤하게 잤는데도 머리가 개운하지 않다. 더위에 지쳐 자면 몸도 늘어지는 것 같다. 더위에 지친 입맛, 무엇으로 돋울까? 오후 6시가 다 되니 햇빛이 많이 수그러졌다. 우리가 사는 곳은 산 밑이라 도회지 아스팔트 열기와는 다르다. 강화도 마니산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아내가 저녁 찬거리를 걱정한다.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랠 맛난 음식이 없을까 궁리한다. 여름철에는 자칫 입맛을 잃기 쉽다. 더위에 지치면 입맛도 까다로워진다. 아내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밭에 나가잔다. 우리 텃밭에는 오이, 가지, 풋고추 말고는 달리 반찬거리가 없다. "간단하게 호박잎 데쳐 뜨거운 밥에 싸먹을까?" "호박잎쌈을?" "금세 할 수 있고, 맛도 좋은데…. 싫어요?" "아냐, 좋아." "애호박이 있으면 부침개도 하나 하죠." "막걸리도 한잔 하면 좋겠네." 갑자기 일감이라도 생긴 양 우린 밖으로 나왔다. 며칠 전 깎아놓은 잔디밭이 단정하다. 잔디를 밟는 느낌이 좋다.
"여보, 애호박이 왜 없어? 보이질 않네."
늙은 호박은 겨울철 귀중한 음식재료가 될 것이다. 우린 늙은 호박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 호박죽을 쒀 먹기도 하고, 호박떡을 해먹기도 한다. 푹 삶아 즙을 내먹으면 몸에도 좋지만, 겨울철 음료로 맛이 그만이다. 호박잎쌈, 예전 생각이 나는 여름철 음식 호박처럼, 관심을 두지 않아도 잘 크는 작물도 드물 것이다. 봄에 구덩이를 판 뒤 잘 썩은 두엄을 한 삽 정도 넣고, 그곳에 호박씨를 넣으면 잘 자란다. 처음 자리를 잡을 때 잡초만 뽑아주면 된다. 아내와 나는 연한 호박잎 20여 장을 땄다. 한 끼 먹을 양으로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호박잎을 데칠 차례다. 아내는 끓은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잎을 살짝 넣었다가 꺼냈다. 연한 것은 금방 꺼내고, 좀 뻣뻣하다 싶은 것은 약간 끓이면 된다. 데친 것은 찬물에 흔들어 씻은 다음 꼭 짜서 물기를 뺀다. 그리고 먹기 좋게 접시에 펼쳐놓으면 준비는 끝난다. 내가 예전 호박잎 데칠 때를 생각하여 말을 꺼냈다. "당신, 가마솥에 밥할 때는 어떻게 데친 줄 알아?" "알죠. 밥물이 넘쳐오를 때 호박잎을 넣고, 약한 불로 뜸을 들이면 되죠." 지금이야 압력밥솥에 밥을 짓느라 그리 못하지만, 예전처럼 할 수만 있으면 맛이 더 있을 거라고 한다. 호박잎 준비가 끝나자 아내가 내게 묻는다. "쌈장은 뭐로 할까요? 간장으로 하는 게 좋지?" "그럼. 호박잎쌈은 간장 쌈장이어야 돼." 우리는 재래식 간장을 담가먹는다. 음식 맛은 장맛이라고, 나물을 무칠 때나 미역국을 끓일 때 아내는 꼭 집 간장을 쓴다. 집에서 담근 간장이 지금 맛이 들었다. 아내는 파, 마늘에 청양고추와 홍고추를 저며 간장에 넣는다. 여기에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니 맛있는 쌈장이 되었다.
나이 들면서 예전에 자주 먹었던 음식이 생각날 때가 있다. 호박잎쌈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호박잎쌈은 더위에 지친 요즘 같은 날씨에 입맛을 되살려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