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박잎쌈

더위에 지친 여름, 호박잎쌈 어때요
간단하게 해먹는 호박잎쌈으로 잃은 입맛을 되찾다
전갑남(jun5417) 기자
▲ 여름철에 간단하게 해먹는 호박잎쌈. 쌈장은 간장으로 하는 게 좋다.
ⓒ 전갑남
찌는 듯한 더위가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절기상으로는 가을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가 8일이다. 지금 같아서는 막바지 더위가 며칠 계속될 것 같다. 입추가 지나면 가을 김장배추와 무를 심을 때다.

오전 내내 아내와 나는 김장배추 모를 부었다. 그늘에서 일하는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모판에 상토를 붓고 씨 하나하나를 넣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 사나흘이면 싹이 틀 것이다.

오후에는 선풍기에 의지해 낮잠을 잤다. 한 시간 남짓 곤하게 잤는데도 머리가 개운하지 않다. 더위에 지쳐 자면 몸도 늘어지는 것 같다.

더위에 지친 입맛, 무엇으로 돋울까?

오후 6시가 다 되니 햇빛이 많이 수그러졌다. 우리가 사는 곳은 산 밑이라 도회지 아스팔트 열기와는 다르다. 강화도 마니산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아내가 저녁 찬거리를 걱정한다.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랠 맛난 음식이 없을까 궁리한다. 여름철에는 자칫 입맛을 잃기 쉽다. 더위에 지치면 입맛도 까다로워진다. 아내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밭에 나가잔다. 우리 텃밭에는 오이, 가지, 풋고추 말고는 달리 반찬거리가 없다.

"간단하게 호박잎 데쳐 뜨거운 밥에 싸먹을까?"
"호박잎쌈을?"

"금세 할 수 있고, 맛도 좋은데…. 싫어요?"
"아냐, 좋아."

"애호박이 있으면 부침개도 하나 하죠."
"막걸리도 한잔 하면 좋겠네."

갑자기 일감이라도 생긴 양 우린 밖으로 나왔다. 며칠 전 깎아놓은 잔디밭이 단정하다. 잔디를 밟는 느낌이 좋다.

▲ 호박은 풀숲에서도 자란다.
ⓒ 전갑남
애호박을 따기 위해 호박밭을 뒤지기 시작했다. 풀밭인지 호박밭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풀숲에서 고개를 내민 호박꽃이 탐스럽다. 누가 못생긴 꽃을 호박꽃에 비유했을까? 가당찮다는 생각이 든다. 암꽃과 수꽃이 나름대로 노란색의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여보, 애호박이 왜 없어? 보이질 않네."

▲ 호박꽃. 왼쪽이 암꽃이고 오른쪽이 수꽃이다.
ⓒ 전갑남
▲ 어느새 호박이 익어가고 있었다.
ⓒ 전갑남
좀처럼 애호박이 눈에 띄지 않는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필요할 때 뭔가 찾으려면 눈에 띄지 않는 게 이상하다. 되레 따는 시기를 놓친 늙은 호박이 여러 개 눈에 띈다. 길쭉한 호박, 단호박, 토종호박이 풀숲에서 어느새 익어가고 있었다.

늙은 호박은 겨울철 귀중한 음식재료가 될 것이다. 우린 늙은 호박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 호박죽을 쒀 먹기도 하고, 호박떡을 해먹기도 한다. 푹 삶아 즙을 내먹으면 몸에도 좋지만, 겨울철 음료로 맛이 그만이다.

호박잎쌈, 예전 생각이 나는 여름철 음식

호박처럼, 관심을 두지 않아도 잘 크는 작물도 드물 것이다. 봄에 구덩이를 판 뒤 잘 썩은 두엄을 한 삽 정도 넣고, 그곳에 호박씨를 넣으면 잘 자란다. 처음 자리를 잡을 때 잡초만 뽑아주면 된다.

아내와 나는 연한 호박잎 20여 장을 땄다. 한 끼 먹을 양으로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 손질한 호박잎. 쌈장 재료로 청양고추를 활용하면 좋다.
ⓒ 전갑남
호박잎쌈은 아주 간단한 요리다. 기다랗게 꺾인 호박잎 줄기를 따라 껍질을 벗기면 잎줄기가 그냥 딸려 벗겨진다. 껍질이 벗겨지면 꺼칠꺼칠한 드센 잎이 부드러워진다.

호박잎을 데칠 차례다. 아내는 끓은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잎을 살짝 넣었다가 꺼냈다. 연한 것은 금방 꺼내고, 좀 뻣뻣하다 싶은 것은 약간 끓이면 된다. 데친 것은 찬물에 흔들어 씻은 다음 꼭 짜서 물기를 뺀다. 그리고 먹기 좋게 접시에 펼쳐놓으면 준비는 끝난다.

내가 예전 호박잎 데칠 때를 생각하여 말을 꺼냈다.

"당신, 가마솥에 밥할 때는 어떻게 데친 줄 알아?"
"알죠. 밥물이 넘쳐오를 때 호박잎을 넣고, 약한 불로 뜸을 들이면 되죠."

지금이야 압력밥솥에 밥을 짓느라 그리 못하지만, 예전처럼 할 수만 있으면 맛이 더 있을 거라고 한다.

호박잎 준비가 끝나자 아내가 내게 묻는다.

"쌈장은 뭐로 할까요? 간장으로 하는 게 좋지?"
"그럼. 호박잎쌈은 간장 쌈장이어야 돼."

우리는 재래식 간장을 담가먹는다. 음식 맛은 장맛이라고, 나물을 무칠 때나 미역국을 끓일 때 아내는 꼭 집 간장을 쓴다. 집에서 담근 간장이 지금 맛이 들었다. 아내는 파, 마늘에 청양고추와 홍고추를 저며 간장에 넣는다. 여기에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니 맛있는 쌈장이 되었다.

▲ 뜨거운 밥에 쌈장을 끼얹어 먹는 호박잎쌈.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 전갑남
널찍한 호박잎을 한 장 펴고 그 위에 뜨거운 밥을 올려놓았다. 쌈장을 끼얹은 뒤 호박잎을 둘둘 말아 한입에 쏙 집어넣으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 느낌이다. 고추의 매운 맛과 잘 어울려 식욕을 돋운다. 금세 밥 한 그릇을 비웠다.

나이 들면서 예전에 자주 먹었던 음식이 생각날 때가 있다. 호박잎쌈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호박잎쌈은 더위에 지친 요즘 같은 날씨에 입맛을 되살려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솥뚜껑 감자탕  (0) 2006.08.17
한여름에 가을전어 참맛을 찾다  (0) 2006.08.16
황태국  (0) 2006.08.08
참치  (1) 2006.08.07
옥수수  (0) 200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