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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옥수수 여물려면 멀었어요?" "이 사람, 벌써 꺾으면 어떻게 해. 수염이 말라야 익는 거야." "나 길거리에서 사먹고 싶어도 집에 여문 것 먹으려고 참았는데." "그까짓 것 먹고 싶으면 사먹지…." "내가 심은 게 많은데 왜 사먹어요?" "그럼 조금만 기다려!" 아내는 내가 나무라자 시험 삼아 꺾어보았다고 둘러댄다. 얼마나 옥수수가 먹고 싶으면 애들처럼 익지도 않은 옥수수를 꺾어 보았을까 웃음이 나왔다. 아내가 꺾어온 것을 보니 똑똑 여물지는 않았지만, 며칠 내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의 관심 종목은 옥수수
옥수수밭 바로 옆의 강낭콩밭의 풀은 무성하게 자라도 못 본 채 하였다. 언젠가 내가 얄미워서 한마디했다. "당신은 옥수수만 먹으라구! 토마토, 참외랑 다른 것은 먹지 말구." "왜 옥수수만 먹어? 다 먹지!" "그럼 얌체처럼 그래?" "옥수수밭은 내 책임이잖아요." 내가 어이없어 웃고 말았다. 자기가 씨 뿌리고 가꾸는 관심사항이라 그러려니 할 수밖에. 하여튼 그간 아내는 옥수수를 가꾸느라 애를 썼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옥수수만 먹고 사느냐고 할 정도로 많은 양을 심기도 했다. 양도 양이지만 일주일에서 열흘 간격으로 시차를 두고 심었다. 한꺼번에 심으면 여러 날을 두고 못 먹는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씨를 뿌리고 혹시 잘 트지 않을까 노심초사 기다렸다. 다행이 잘 났지만, 싹이 트지 않은 데는 모종을 옮겨심기까지 하였다. 와! 옥수수 꺾어 쪄먹자! 비 개인 오후, 아내와 나는 질척거리는 밭에 장화를 신고 나왔다. 한 이틀 밭에 나오지 않았더니 거둘게 많이 있다. 이것저것 달린 열매를 딸 때는 신이 난다. 우선 빨갛게 익은 찰 토마토가 대여섯 개 눈에 띈다. 장마철에 가지가 부러지는 수난 속에서도 빨간 열매가 맺혀있는 게 고맙기만 하다. 방울토마토도 질서가 없이 가지가 엉겨있는 상황에서 꽤 많은 것을 땄다.
"여보, 참외가 노랗잖아. 익은 거 아냐?" "응. 그러네!" 널찍한 잎 속에 가려있던 푸른 열매가 연일 내리는 빗속에서 언제 익었을까? 노란색을 띤 탐스럽게 익은 참외 네 개가 눈에 띈다. 첫 수확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익기 시작할 것 같다. 20여 그루 심은 참외밭에서 한동안 과일 걱정은 안 해도 될 성 싶다. 질척거리는 밭을 빠져나오려는데 아내가 내 손을 붙잡으며 옥수수밭을 가리킨다. "옥수수 안 익었을까?" "글쎄, 가보자구." 며칠 전 여물지 않은 옥수수를 꺾어본지라 이젠 익었을 거라는 기대를 하는 모양이다. 우리 옥수수 밭은 시차를 두고 심어 크는 속도에서 차이가 난다. 가장 먼저 심은 것은 수확을 앞두고 있다. 키 작은 어린 것이 있는 반면, 지금 한창 수꽃이 올라오기도 한다. "수염이 이 정도면 마른 거 아냐?" "그래 됐어. 그런 것으로만 꺾어 봐." 아내의 얼굴 표정이 밝아진다. 옥수수대가 부러질까 조심스럽게 꺾는다. 옥수수 여문 것은 수염을 보면 알 수 있다. 수염이 말라있으면 대개 잘 여문 것이다. 그런데 수염이 마른 채 오래두면 옥수수 껍질이 누렇게 변하면서 너무 여물어 맛이 떨어진다. 아내와 함께 열 개 남짓 꺾었다. 옥수수를 비롯하여 오늘 거둔 것들을 평상에 올려놓고 보니 마음이 뿌듯하다. 농사지은 보람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연신 '옥수수 하모니카'를 부는 아내
"나중 심은 것은 그러지 않을 거예요. 밭 가장자리라 거름기도 부족했구요. 그렇지만, 장마 통에 이렇게 여물어준 것만도 너무 고맙네요. 이래도 찌면 맛은 그만일걸요." 여러 말할 것 없이 빨리 쪄먹자며 주방으로 손을 잡아끈다. 압력밥솥에 찌면 잠깐이면 된다고 한다. 자주감자도 몇 개 넣어 함께 찌자고 한다. 옥수수와 감자 찌는 데는 적당히 물을 붓고 소금만 넣으면 된다. 얼마가지 않아 압력밥솥에서 김빠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완전히 김이 빠진 뒤 밥솥뚜껑을 열자 김에서 단내가 난다. 아내가 뜨끈한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연신 불어댄다. 생전 옥수수 맛을 보지 못한 사람 같다. 내가 하나 먹는 동안, 두 개는 먹는 것 같다. 자주감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아내의 즐거운 표정을 보며 내가 한마디하였다. "누가 훔쳐가지 않으니까 천천히 좀 먹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