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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이 묻어버린 연개소문의 진실

사대 사관으로 잃어버린 영웅 연개소문
[서평] '당태종이 묻어버린 연개소문의 진실'을 읽고
김현(dasolsori) 기자
▲ <당태종이 묻어버린 연개소문의 진실> . 글쓴이 : 신영란
ⓒ 작은키나무
"수백 년 사대주의의 용렬한 종이 된 역사가들이 그 좁쌀만 한 눈에 보이는 대로 연개소문을 가혹하게 평하고 ‘신하는 충성으로 임금을 섬긴다.’는 불구의 도덕률로 그의 행위를 규탄하며…. 그 업적을 부인하고 시대적 대표 인물의 유체를 한 점 남김없이 씹어대는 것은 내가 크게 원통히 여기는 바이다."

연개소문. 우리는 그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신채호 선생의 탄식처럼 한편으론 영웅이라 칭하고, 또 한편으론 역적이라는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는 고구려의 마지막 영웅 연개소문. 잘못된 사대사관에 밀려 철저히 버림받았던 고구려의 자존심 연개소문. 그에 대한 기록은 미미하게 간접적인 흔적으로만 남아있을 뿐 그 어디에도 없다.

<당태종이 묻어버린 연개소문의 진실>. 손에 쥐어진 한 권의 책의 무게는 가벼웠지만 왠지 마음은 무거운 침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요즘 드라마 속의 두 연개소문의 얼굴이 중첩되어 왔다. 중원 정벌이라는 꿈과는 전혀 다른 젊은 연개소문의 모습, 천하를 호령하며 당태종 이세민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나이 든 연개소문. 그리고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가련하면서도 영웅의 모습을 끝내 지키려는 연개소문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책장을 한 장 한 장 펼쳐갔다. 그러면서 연개소문의 모습을 더듬어 갔다.

당나라 사람들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연개소문

연개소문의 흔적들을 더듬어가면서 그의 인간됨과 리더십, 그리고 그의 애국심과 자신감을 찾아갔다. 그러면서 당시 삼국의 관계와 수나라와 당나라에 빌붙어 생존을 연장하려 했던 신라. 당시 힘이 가장 약했던 신라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당에 굽신거리며 그들을 끌어드리고 결국 백제를 멸망시키고 후에 고구려까지 망하게 하는 아픈 현실도 보게 된다.

고구려의 망함을 보고 함석헌 선생은 "삼국시대가 실패한 원인은 고구려가 망한 데 있다. 우리 역사를 읽는 사람이라면 민족의 혼이 거기에 있음을 알 것이다. 만일 고구려가 갑자기 망하지 않았더라면 만주, 조선은 반드시 하나로 통일되어 큰 나라를 이루었을 것이고 민족 전체의 운명은 잘못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그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신채호 선생은 저자와 인터뷰 형식을 빌려 당의 계략에 농락당해 고구려를 멸망에 이르게 한 신라에 대해 "슬프다, 저 신라가 만년의 원대한 계책을 생각지 않고 도적을 도와 형제를 해쳤으니 우리 역사상 하나의 큰 부끄러움을 남겼도다"라고 애통해하고 있다.

역사에 가정이란 게 있다면 누구나 한 번은 삼국을 외세의 힘을 빌린 신라가 아닌 민족적 자존심으로 뭉친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가정이란 게 없다. 그저 승자의 편에서 기록되고 후손들은 그것이 진실인양 배우고 믿는다.

그렇다면 연개소문은 진정 어떤 인물일까? 당시 당나라 인들에게 연개소문은 어떤 존재였을까? 한 마디로 두려움의 존재였고 공포의 존재였다고 말하고 있다.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던 당태종 이세민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철저하게 패퇴당하는 굴욕을 당하게 된다. 안시성 전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전쟁이 끝난 지 3년 만에 울분과 질병으로 죽고 만다.

그는 죽기 전에 "절대로 고구려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유언까지 했다고 하니 연개소문의 존재가 어느 만큼이었는지 심히 생각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중국의 역사서엔 당태종의 죽음의 원인을 내종(內종腫)으로 죽었다니, 한질(寒疾)로 죽었다느니, 이질(痢疾)로 죽었다느니 모호하게 기술해 놓았는데 신채호 선생은 이를 양만춘 장군의 화살 독으로 인해 죽은 치욕을 은폐하려 모순된 기록을 남겼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천하의 성군이라 칭송받던 당태종의 이러한 비참한 굴욕은 역으로 연개소문을 부정적으로 표현하였고, 당태종의 치욕을 숨기려는 쪽으로 역사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중국인들에 의한 연개소문이 어떤 존재였는지는 현재 연개소문이 나오는 경극에서 당태종이 벌벌 떨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심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연개소문만 살아 있었다면

수당의 수백만 대군을 거뜬하게 물리치며 한 치의 물러섬이 없던 고구려는 갑자기 망한다. 연개소문이 죽고 얼마 안 있어서다. 연개소문이 죽자 고구려는 아들들에 의해 내분이 일어나고 연개소문의 장남이었던 연남생은 당나라에 투항하여 오히려 고구려 공격의 선봉장이 된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멸망의 원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분열에 있었던 것이다.

연개소문이 죽고 고구려가 힘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당에 망한 서기 668년. 수많은 고구려인들이 북으로 눈보라를 맞으며 끌려간다. 그 맨 앞자리엔 짐승 우리 같은 수레에 보장왕이 타고 끌려가고 있었다. 그는 비참하게 그렇게 끌려가면서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태막리지만 살아 있었어도!"

한 영웅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멸망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는 나라의 구심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오늘의 우리 현실의 모습이 다가왔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당리당략만 일삼은 위정자들. 수많은 백성들의 민생과 소망에는 별 관심 없이 이전투구만 일삼는 저 위정자들의 모습과 나라와 백성을 위해 평생을 다 바친 한 영웅의 모습이 자꾸 비교되었다.

<당태종이 묻어버린 연개소문의 진실>. 이 책에 대해 저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바탕으로 해서, 연개소문이 수나라 말기 중국정벌을 마음에 품고 중국 땅을 주유했다는 중국소설 「규염객전」과 「갓쉰동전」의 진위 여부를 추론하며 쓴 글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글 내내 저자는 중국인들의 역사 왜곡 행태에 대해 분개하면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러 사실들을 전해주고 있다.

독자들은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두 드라마, ‘연개소문’과 ‘대조영’에 나오는 연개소문의 행적과 이 책을 비교해가며 감상하면 당시의 역사적 진실과 거짓은 무엇인지 조금은 알아가는 재미를 누릴 수 있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