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썸네일형 리스트형 무쇠솥 [기루의 무쇠솥]- 사랑의 증표 삼국은 철제농기구를 사용하고 우경(牛耕)을 실시하여, 벼농사 위주의 농업을 경제의 근간으로 삼았으나 벼농사와 동시에 쌀을 익혀 밥을 먹은 것은 아니다. 밥을 지을만한 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시절이 제법 길었다. 농업초기에는 낟알을 불에 달군 갈돌(곡물의 껍질을 벗기고 가루를 만드는데 사용)에서 볶아 껍질을 날리고 부수어 미숫가루형 음식을 만들고, 낟알을 갈돌에 부수어 반죽해서 동물의 기름으로 지져서 떡을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또한 곡물을 토기에 담아 죽을 끓인 것으로 보이고, 시루를 쓰면서부터 찐밥과 떡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유물을 보면 삼국시대에 시루가 많이 등장한다. 솥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낙랑 9호 고분에서 돌로 만든 솥이 발견됨에 따라.. 더보기 신라의 로먼글래스 [신라의 로먼글래스] 신라시대 고분에서 발견된 유리용기들은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보는 이를 감탄하게 만든다. 이 유리병들은 멀리 서방에서 만든 제품들이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로 ‘수입’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유리용기류의 유입과 제작이 시작된 것은 약 4세기경부터로 경주 제98호 고분(황남대총 남분·북분), 천마총, 금관총, 금령총 등에서 발견된 고분출토 유리용기는 특히 유명하다. 이 시기 고분들에서 발견된 대개의 유리용기류가 후기 로마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인다. 로마는 기원전 1세기경 대량으로 유리제품을 만들 수 있는 대롱불기 기법을 발명했다. 당시 귀중품으로 인식되던 유리제품은 로마인들의 활발한 상업활동에 기대어 이집트, 터키, 독일 등 유럽 전역과 흑해연안까지 전파된다. 지난 1973년 발굴된 황남.. 더보기 흑치씨 [흑치씨의 유래]흑치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백제 부흥운동사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흑치상지’일 것이다. 흑치상지는 부흥운동을 일으키다가 풍왕과 도침, 복신장군이 서로 죽이는 것을 보고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끼는 와중에 663년 9월의 백강전투에서 당나라장수 유인궤에게 항복하였다. 당나라로 건너가 혁혁한 전공을 세워, 승승장구하다가 이를 시기한 주위의 모함으로 감옥에서 자결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흑치상지의 묘지명이 중국 낙양 북망산에서 발견되었다. 흑치상지묘지명을 통해서 흑치씨의 내력을 알 수 있다. “그 선조는 부여씨에서 나와 흑치에 봉해졌으므로 자손이 그로 인하여 씨를 삼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흑치는 중국문헌에서 등장하는 동남아시아지역의 군도를 가리키는 지명인데,.. 더보기 초두 [초두] 우수의 뒤에 있는 그림초두는 손잡이가 휘어 있어 전체적으로 북두칠성 모양을 하고 있고, 바깥쪽으로 말려진 주둥이(口緣)에 동글납작한 몸통을 지니고 있는데, 몸통은 보다 반듯하고 정연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중앙에 융기된 선을 둘러놓았다. 또한 짐승의 다리를 닮았다 하여 수족(獸足)이라 칭하는 다리 3개를 곡선적으로 처리하면서도 밑으로 내려갈수록 굵어져 단단한 조형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손잡이에 보이는 용의 목은 직선적으로 나왔다가 급격히 치켜들고 있으며, 그 끝에는 용머리를 장식하였다. 용머리는 도안화되었으나 세부적으로 보다 깊게 파 들어가는 수법을 사용하여 용의 모습을 구체화시키고 있는데, 더욱 화려하게 보인다. 초두는 주로 제사 같은 신성한 의식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물건이다. 실제 요.. 더보기 이전 1 ··· 91 92 93 94 95 96 9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