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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산지의 확보 [나라의 사활이 걸린 소금산지의 확보]만주에서 남하해온 온조와 비류형제가 나라의 터전을 잡는데 부여왕으로 불리었던 북한산에 올라 사방지세를 살피면서 수도를 선정하는데, 의견이 달랐다. 온조는 지금의 서울을 가리키는 위례성에 국가를 형성했고, 비류는 지금의 인천으로 비정되는 미추홀에 국가를 만들었다. 두형제가 세운 국가가 한동안 같이 존재하였지만, 온조가 터를 잘 잡아서 나라의 주춧돌을 잘 놓았다고 판정이 나서 비류백제를 흡수하였다. 비류가 미추홀에 수도의 소재를 택한 건 무슨 이유가 있을까 그것은 연맹단계를 벗어나 고대국가를 이루는 터전을 이루는데 중요한 부국강병의 하나인 대외교역이 유리하다는 점과 소금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류는 아마도 강성한 해상국가를 이루려고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상재의 자질.. 더보기
해도주 ■ 백제의 로열 패밀리 해씨와 진씨 백제의 귀족가문으로는 먼저 건국초부터 등장하는 성씨로서 해씨가 있다. 해씨는 부여씨 왕족들과 함께 부여에서 남하하여 백제건국의 한 축을 형성한 가문이었기에 만만치 않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해씨세력은 18대 전지왕의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므로 병권을 비롯한 조정의 요직을 장악, 왕비족으로서 위세를 자랑한 해씨세력은 20대 비유왕대까지 왕실의 외척으로 군림하였다. 삼국사기 아신왕조에 의하면, 병권을 장악하면서 고구려와의전쟁을 주도하던 진씨세력은 그 지위가 크게 흔들렸다. 결국 패전으로 인해 진씨세력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지만, 반면 해씨세력에게는 그 부상을 가져오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아신왕말기에 해씨세력과 왕권과의 유착이 이루어지는 배경이 구축되었.. 더보기
야명주(夜明珠) [야명주] -과연 왕자의 신표일까 야명주는 중국전설에서 내려오는 구슬로 어둠속에서 빛을 내는 보석으로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해 화학작용을 일으켜 빛과 열을 내는 신비한 구슬이다. 전지왕 5년(409)에 왜국이 사신을 파견하여 야명주(夜明珠)를 보내니 왕이 후한 예로 대접하였다. 五年 倭國遣使 送夜明珠 王優禮待之 대외관계에 있어서 왜와의 우호관계도 계속 유지하였는데, 야명주(夜明珠)를 보내온 왜의 사자를 우대하고 또 왜에 비단 10필을 보내기도 하였다. 마한에서는 금은보다 구슬을 보배로 여기는 관습이 있었는데, 구슬 가운데 명품은 왜의 특산물이기도 하였다. 히미코의 야마다이국에서 대방군에 헌상한 물품 가운데 백주와 대구주라는 구슬이 저명한 사례다. 또 왜에서는 푸른색을 띠고 있으며 크기가 계란만한 여의보주.. 더보기
삼국시대의 종이 [삼국시대의 종이에 대해서] -목라수가 서동을 시험하였죠 우리 나라는 중국에서 개발된 제지법이 전래된 이후 특산 재료인 닥나무나 마(麻) 등을 활용해 일찍부터 품질 좋은 한지(韓紙)를 생산했다. 그 중에서도 닥종이[楮紙]는 희고 두텁고 질겨서 오래 견딜 수 있음이 가장 큰 장점이었는데, 중국에서는 이를 계림지(鷄林紙), 백추지라고 일컬으면서 품질을 칭송했다. 백추지란 명칭은 결백(潔白)하고 질긴 백면지(白面紙)라는 특징에서 나온 것이다. 기록을 보면 신라시대에는 백추지(白錘紙)가 생산되었는데 이 종이는 중국에서조차 '천하에 비할 수 없는 종이 '라 예찬한 바 있고 삼국 유사에는 진덕여왕 원년에 종이로 연(鳶)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 우리나라에 언제 제지술이 들어왔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중국의 에는 백..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