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치씨의 유래]
흑치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백제 부흥운동사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흑치상지’일 것이다.
흑치상지는 부흥운동을 일으키다가 풍왕과 도침, 복신장군이 서로 죽이는 것을 보고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끼는 와중에 663년 9월의 백강전투에서 당나라장수 유인궤에게 항복하였다.
당나라로 건너가 혁혁한 전공을 세워, 승승장구하다가 이를 시기한 주위의 모함으로 감옥에서 자결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흑치상지의 묘지명이 중국 낙양 북망산에서 발견되었다.
흑치상지묘지명을 통해서 흑치씨의 내력을 알 수 있다.
“그 선조는 부여씨에서 나와 흑치에 봉해졌으므로 자손이 그로 인하여 씨를 삼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흑치는 중국문헌에서 등장하는 동남아시아지역의 군도를 가리키는 지명인데,
백제는 유구국(오키나와)를 중간기항지로 삼고 필리핀군도까지 항로를 연장시켜 해양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인 일이 있고, 백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일본과 교역하려는 나라의 사신을 바다에 빠뜨린 일도 있다.
이 필리핀군도를 흑치국으로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