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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학사 개혁의 단초를 제공한 격물, 도르래

[18회]태학사 개혁의 단초를제공한 격물, 도르래


■ 도르래


바퀴에 줄이나 벨트 또는 체인을 걸어 힘의 방향을 바꾸거나 힘의 효력을 확대하는 장치. 활차(滑車)라고도 한다. 지렛대, 쐐기 등과 함께 옛날부터 사용되는 힘의 전달기구(傳達機構)의 하나이며, 고대 로마의 서적에도 도르래를 이용한 무거운 물체를 운반하는 기계의 예가 실려 있다.

도르래를 사용하는 두레우물이라든가 그 외에도 권양기(捲揚機)를 비롯하여 각종 기계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고정도르래는 우물의 두레박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도르래에 걸친 줄의 한쪽을 당겨서 줄의 다른 쪽에 걸려 있는 하중을 끌어올리거나 끌어당기는 것인데, 힘의 방향을 바꾸어 힘을 걸기 쉽게 되어 있으나, 하중과 같은 크기의 힘을 요하며, 힘의 효과를 크게 하는 작용은 없다.

고정도르래는 고정되어 움직이지 못하며, 힘의 방향을 바꾸는 작용만을 한다.


움직도르래는 매달린 로프의 한쪽끝을 고정하고 다른 끝을 아래위로 움직이면 도르래도 아래위로 움직인다. 매달린 하중의 절반의 힘으로 움직이지만 로프길이의 절반밖에 움직이지 않는다.

즉, 움직도르래 줄을 보통보다 길게 끄는 대신 힘의 효과를 크게 한다.


도르래·받침대·밧줄(또는 다른 구부릴 수 있는 물체)과 결합된 것을 복(複)도르래라고 한다. BC 3세기경 아르키메데스는 이 복 도르래를 사용해 배를 육지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지렛대의 반비례 법칙을 발견한 그는 시라쿠사왕 히에론 앞에서 "긴 지렛대와 지렛목만 있으면 지구라도 움직여 보이겠다"고 장담하였다. 왕이 해변 모래톱에 올려놓은 군함에 무장병을 가득 태우고 이것을 물에 띄우라 하였더니,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를 응용한 도르래를 써서 이를 쉽게 해냈다.

■ 유래

고구려 여성들이 집안일을 하는 모습은 여러 고분들에 나타나지만, 황해도 안악 3호분의 벽화를 보면 앞 칸 동벽에 딸린 곁방에 빙 둘러 집안의 생활상이 그려져 있다. 방에 들어서면 맞은편 동벽에 부엌과 푸줏간이, 북쪽에 우물이, 남쪽에는 외양간이, 서벽 입구 왼편에 마구간이, 입구 오른편에 방앗간이 각각 배열돼 있다.

정사각형의 목책을 두른 우물에는 모래주머니를 달아 지렛대와 도르래를 이용한 용두레 형태의 물 긷는 장치가 있다.


우물가에는 두 여인이 떡시루와 그릇들을 닦으러 나온 듯하고 서 있는 여인 위에 ‘아광(阿光)’이라는 붉은색 글씨가 씌어 있다. 또 우물 앞에는 물을 담는 목제 구시통(구유)이, 그 왼편으로는 두 점의 배부른 큰 토기가 놓여 있다.

또한 미천왕릉의 우물도에서도 도르래를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삼국시대 이래로 쓰여 오던 활차(움직도르래)와 녹로(고정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조선시대에 거중기를 만들어 수원화성을 쌓는데 활용했다.


정약용(丁若鏞)이 고안한 거중기(擧重機)는 여러 개의 활차(滑車-도르래)를 이용하여 무거운 돌을 적은 힘으로 들어 올리도록 한 장치로 공사의 효율을 높였으며 녹로, 유형거(遊衡車) 등 근대적인 운반기구 사용과 용재 규격화로 공사기간을 단축했다.


거중기는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한 수동식 크레인이며, 그 원형은 중국의 '기기도설'에 소개된바 있다. 그러나 다산이 고안한 거중기는 8개의 도르래를 사용하여 적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어올리는가 하면, 밧줄을 물레에 감아 더욱 큰 힘을 쓰게 했다.


녹로는 도르래와 기둥을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올리거나 이동하는 데 쓰며, 현재의 진폴에 해당된다. 유형거는 석재 기타 무거운 재료를 운반하기 위하여 특별히 고안된 수레이다

기존의 수레는 바퀴가 커서 짐을 싣거나 내리는데 힘이 많이 들었고 열악한 도로 사정에도 맞지 않아서 작고 튼튼한 바퀴를 가진 유형거를 개발, 유용하게 쓰이도록 했다.


화성성역의궤의 기계각도(器械各圖)편에 거중기전도가 있다. 거중기는 '1만2천근의 큰돌을 30여명의 장정이 들어올리므로, 결국 한 사람이 4백근의 무게를 감당하는 기구로 도르래를 이용하여 큰 물체를 들어올리는 원시적인 기중기이다.

이외에 조선시대에는 녹로노라는 것이 있었다.

한꺼번에 여러 발의 화살을 발사할 수 있는 강노(强弩)의 일종이다. 여러 발의 화살을 발사하기 위해서는 강한 활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장전시 녹로를 이용하여 시위를 당긴다


■ 일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의 산실인 동천석실과 세연정

부용동이 발아래 내려다 보이는 이곳 반석위에서, 윤선도는 차를 달이고 바로 앞에 있는 두 바위 사이에 도르래 장치를 해놓고 산 아래와 줄을 연결해 필요한 물건이나 음식을 운반하기도 했다고 한다.






안악 3호분에 그려져 있는 우물 풍경. 지렛대와 도르래를 이용한 우물은 4세기 중엽 고구려 사람들의

과학 기술 수준을 추측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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