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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국

"애쑥국에 산촌 처자 속살 찐다잖아요"
여자들에게 좋은 쑥국, 속 풀이로도 그만
전갑남(jun5417) 기자
아내와 나는 오후에 텃밭으로 나왔다. 텃밭에 나오면 할 일이 많다. 요 며칠간은 비닐 구멍을 뚫고 올라온 감자 싹이 잘 자라도록 북을 주고 있다. 한차례 비를 맞더니만 파릇파릇한 감자 싹이 제법 실해졌다.

북 주는 일을 마치자 아내가 옥수수씨를 가져왔다. 또 옥수수를 심을 모양이다. 아내는 며칠 간격으로 밭 가장자리에 옥수수를 심었다. 한꺼번에 심지 않고 시차를 두고 심어 수확하는 시기를 늘려 잡을 요량에서이다.

호미를 찾아 일을 시작하려는데, 아내가 자라난 풀을 보고 심란한 표정을 짓는다.

"여보, 언제 이렇게 풀이 자랐지요?"
"그러게 말이야."
"가만 놔두면 밭 가장자리는 쑥밭이 되겠어요."
"그래, 옥수수를 심으니까 좋지?"

나물을 알면 돈이 보인다?

▲ 요즘 들에는 쑥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 전갑남
반갑지도 않은 풀은 어느새 많이도 자랐다. 들풀의 생명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는데도 싹이 트고 알아서 잘도 큰다. 나름대로 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의 법칙에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봄에 올라오는 하찮은 들풀이라도 개중에는 사람이 먹을 게 많다. 어떤 이는 나물을 알면 돈이 보인다고 한다. 햇살 가득한 날, 산과 들로 나가 보라.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품을 들이면 약이 되고 영양이 되는 나물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이맘때는 냉이, 달래를 비롯해 민들레·돌나물·씀바귀·머위·돌미나리 등이 딱 좋은 시기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쑥은 어떤가? 아마 다른 것은 몰라도 쑥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먹을 수 있는 들풀 중 쑥만큼 흔한 것이 또 있을까? 쑥은 조금만 눈을 돌리면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다.

한방에서 쑥은 여러 경우에 순순하고 무던히 잘 화해시키는 약(和藥)으로 알려졌다. 해열과 진통작용뿐만 아니라 해독과 구충작용까지 있다고 한다. 또 열압을 낮추는 작용이 있어 흔하지만 정말 요긴한 약재로 쓰이고 있다.

여성에게 좋은 쑥

▲ 우리 텃밭에서 짧은 시간에 캔 쑥이다.
ⓒ 전갑남
내가 옥수수 심을 자리에 자란 쑥을 호미로 캐냈다. 아내는 버리지 않고 하나하나 다듬었다. 쑥 캔 자리가 말끔해지자 옥수수씨를 넣었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다듬어 놓은 쑥이 꽤 됐다.

"여보, 이것으로 쑥국 끓일까요?"
"된장 풀어서? 술 먹은 뒤 쑥국은 속 풀이로 그만이지!"
"며칠 술을 먹더니만 속이 안 좋아요? 쑥은 여자들한테 더 좋은 거예요."
"음식에 남자, 여자가 어디 있어!"
"'애쑥국에 산촌 처자 속살 찐다'는 속담도 못 들어봤어요?"
"그런 말도 있나?"

사실, 쑥은 여성을 위한 좋은 음식이다. 임산부의 유산을 막아주고, 여성의 월경주기를 고르게 해준다고 한다. 특히 냉증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여성은 쑥을 가까이 하면 아주 좋다고 한다. 얼굴에 바르면 항균작용과 혈액순환을 원활히 해준다고 알려져 피부미용 재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쑥국 끓이는 건 간단

그렇지만 속 풀이 해장국으로도 쑥국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예전 어머니께서 술 드신 아버지를 위해 쑥된장국을 끓이셨던 일이 생각난다. 된장과 쑥이 만난 향긋한 쑥국을 아버지께서는 시원하다며 맛나게 드셨다.

아내가 속이 확 풀리는 쑥국을 만들자며 내 팔을 잡아끈다. 우리 집은 색다른 요리를 할 때 늘 같이 한다. 맛을 내는 일은 아내 몫이고, 대개 잔일은 내가 맡아서 한다.

▲ 쑥국을 끓이기 위해 된장을 풀고 마른 새우를 넣어 끓이기 시작한다.
ⓒ 전갑남
▲ 깨끗이 씻은 쑥을 바락바락 주물러 치대면 쑥국이 부드러워진다.
ⓒ 전갑남
▲ 끓기 시작한 국물에 쑥을 넣어 한소끔 끓인다.
ⓒ 전갑남
▲ 완성한 쑥국이다.
ⓒ 전갑남
아내는 쌀을 씻어 텁텁한 뜨물을 냄비에 받아 된장을 풀었다. 그리고 마른 새우를 넣었다. 조갯살이 있으면 좋은데 집에 있는 마른 새우로 대신했다. 나는 잘 다듬어 놓은 쑥을 깨끗이 씻었다. 끓는 국물에 쑥을 그냥 넣으려 하자 아내가 손사래를 친다.

"쑥은 그냥 넣으면 부드럽지가 않아요. 치대서 넣어야 해. 파란 물이 우려 나올 때까지 바락바락 주물러 주세요."

살짝 데쳐서 끓이는 방법도 있지만 아욱국을 끓일 때처럼 잘 치댄 뒤 끓여야 영양 손실도 적고 부드러운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치댄 쑥을 꼭 짜서 넣고 한참을 끓이니 정말 구수한 쑥국이 간단하게 완성됐다. 향긋한 쑥향과 구수한 된장 냄새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쑥국으로 속이 확 풀리네

아내가 저녁상을 차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주 가까운 친구한테서 온 전화이다.

"저녁 먹었나?"
"아냐. 지금 막 먹으려던 참인데, 왜?"
"그럼 잘 되었다. 빨리 우리 집으로 와. 오늘 주꾸미하고 소주 한잔하자!"
"무슨 일 있어?"

다짜고짜로 오라는 통에 내키지 않은 발걸음을 나섰다. 다 차려놓은 저녁상을 놔두고 나가는 나를 아내가 빤히 쳐다본다. 또 술타령을 하러 나가는가 싶어 고운 눈빛이 아니다.

나는 친구를 만나 꽤 많은 술을 먹었다. 배짱 맞은 친구와 맛난 안주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 늦은 시간까지 먹었다. 아침까지 숙취가 남아 있다. 이른 새벽부터 아내는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당신, 어제 너무 과음한 거 알아요? 자다 깨보니 어찌나 정신없이 자는지…. 속 쓰리지 않아요?"
"속이 울렁울렁 좋지 않아. 속을 달래 줄 뭐 없나? 아참! 쑥국 있지?"

▲ 쑥국이 있는 단출한 아침상이다. 숙취가 확 달아난 느낌이 들었다.
ⓒ 전갑남
그러지 않아도 쑥국으로 속을 풀어줄 심산이라고 한다. 뜨끈한 쑥국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으니 숙취가 확 달아나는 느낌이다.

흔하디 흔한 쑥이지만 이렇게 몸에 좋은 맛있는 요리가 될 줄이야. 예전 산골 처녀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쑥으로 자주 국을 끓여 먹었더니 살이 쪘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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