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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 하면 왜 '남원'일까?
가을은 전어, 낙지, 송이, 그리고 추어탕과 함께하기에 진미의 계절로 불린다. 특히 추어탕, 가을에 얼∼매나 맛이 좋으면 가을(秋)이란 말까지 갖다 붙였을까? 맛도 맛이지만 여름내 무더위에 시달려 허약해진 몸을 다스리기에 추어탕만 한 게 없을 정도로 보양식이다. 그래서 일찍이 미꾸라지의 영양을 알아본 선인들은 좋은 음식을 가족에게 먹이고자 노력했나 보다. 미꾸라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세상 사람 다 알 테고, 미꾸라지탕 하면 왠지 맛있다는 느낌보다 징그럽다는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추어탕이라고 불러 가족들이 부담 없이 맛나게 먹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지레짐작해본다. 추어탕 하면 남원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추어탕의 대명사가 된 남원, 이제 남원을 빼놓고 추어탕을 얘기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남원의 추어탕은 왜 유명해졌을까? 그보다 먼저 살펴볼 게 있다. 남원처럼 어떤 음식이 유명해진 지역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병천순대와 화평동냉면, 곤지암소머리국밥처럼 지리적 연관 없이 원조격인 한 집으로 인해 주위에 아류격인 여러 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진 경우가 있고, 고성(명태), 용대리(황태), 양양(송이), 벌교(꼬막), 그리고 남원처럼 지리적 특성에 의해 음식이 발달하게 된 경우가 있다. 남원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아우르고 있다. 무엇을 의미할까? 섬진강의 지류는 남원 곳곳으로 흐르고, 풍부한 퇴적층은 자연스레 미꾸라지를 비롯한 민물고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갖추게 된 것이다. 여기에 지리산에서 나는 고랭지 우거지와 추어탕에 빠져서는 안 되는 향신료 초피(전라도에서는 젠피라 부른다)를 쉽게 구할 수가 있어서 어느 지역보다 손쉽게 추어탕을 끓여 먹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남원은 추어탕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고장인 것이다.
남원추어탕을 대표하는 집은 두말할 것도 없이 '새집'이다. 지금은 건물의 위용이 도시의 유명하고 값비싼 음식점 못지않지만, 시작은 억새 지붕으로 된 집에서 소박하게 시작했다 한다. 그때가 59년도이니 꽤 오래된 집이다. '새집'이란 말은 '억새집'의 순 우리말이라고 한다. 새집은 추어탕을 맛보기 위해 남원을 찾은 외지인들이 가장 많이 가는 집이다.
남원에서 택시를 굴리는 기사님의 말에 따르면 새집은 명성은 쌓였는데 맛은 거기에 못 미친다고 한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맛도 없는 집에 손님이 미어터지고 명성이 날 수도 있단 말인가? "남원사람들은 입맛이 까다로워 맛없게 하는 집은 절대 가지 않습니다. 처음에 장사하던 할머니가 할 때는 맛있었는데, 조카한테 물려준 뒤로는 맛이 예전만 못합니다." 택시기사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제 서야 좀 이해가 간다. 쉽게 말해 예전의 명성 때문에 손님이 많다는 말이다. 새집의 외관은 번쩍번쩍 해진 만큼 맛에 대한 발전도 함께 하기를 바라본다. 남원사람들은 어디 가서 추어탕을 먹을까? 여기서 또다시 드는 궁금점, 새집이 외지인의 단골집이라면 누구보다 추어탕을 즐기며 살았을 남원사람들은 어디 가서 먹을까? 증언을 듣기 위해 남원에서 잠시 부천으로 이동해보자. 맛객이 종종 가는 단골술집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손님들과도 친분이 꽤 있는데 그중에 한 분, 벌말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는 소사장님과는 음식에 대해 활발한 대화를 나눈다. 이분의 고향이 남원이어서 추어탕에 관한 대화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주 사장님이 추천하는 집은 '부산집'이다. 사람들에게 '남원 부산집' 하고 말하면 '남원에 부산집이 있어?' 할 정도로 남원과 부산집이란 상호는 어떤 괴리감이 있나 보다. 나 역시도 선뜻 와 닿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주 사장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남원에 가면 부산집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집에 대한 설명은 대략 이렇다. "다른 집은 대형화 되었는데 부산집은 조그만 집이다.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가 주인인데 추어탕을 직접 만든다. 손님이 오든 안 오든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주사장님의 아버지가 애용하는 단골집인데 언젠가 한번 새집에서 맛을 보고는 '맛이 아닐세' 할 정도로 부산집의 추어탕을 높이 쳐준다고 한다. 손님접대 할 때는 새집으로 가고 추어탕이 먹고 싶을 때는 부산집으로 간다." 해서, 부산집으로 맛 탐방을 가 봤다. 새집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바로 옆에는 역시 소문난 '남원추어탕'이 자리 잡고 있다. 부산집은 간판과 외관 등 전체적으로 소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추어탕 맛은 어떨까? 일단 먹고 나서 말하자. "여기 추어탕 주세요."
담백한 맛을 즐기고자 국물을 몇 수저 떠먹고 나서는 초피 가루를 듬뿍 넣었다. 초피의 독특한 향과 알싸하게 쏘는 맛을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부산집 말고도 '친절식당'과 '현식당' 역시 남원사람들이 많이 찾는 집이다. 추어탕 맛있게 먹는 방법은?
간혹 보면 순댓국이든 해장국이든 처음부터 밥 한 공기를 말아서 먹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맛은 떨어진다. 종로에 있는 국밥집에서 옆 테이블의 연세 지긋하신 어른께서 일행에게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국밥은 몇 수저씩 말아먹는 맛이야." 이 말에 전적으로 수긍한다. 국에 밥이 말아져야지 밥에 국이 비벼져서는 곤란하다. 참! 추어탕을 말하다 다른 곳으로 갔다. 추어탕 역시 처음부터 밥을 많이 말 필요는 없다. 몇 수저씩 말아서 드세요∼ 추어탕엔 산초가 들어간다?
추어탕뿐만 아니라 민물고기 요리에는 어김없이 초피가 들어간다. 맛을 돋워주기도 하지만 비린내 제거에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소화촉진에도 효능이 있어 추어탕을 많이 먹어도 부담스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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