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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

수제비, 맛보다 마음으로 먹어야 제 맛
[맛객의 맛있는 이야기] 부드러운 촉감, 담백한 국물
김용철(ghsqnfok) 기자
▲ 수제비는 배를 채워주던 음식에서 허한 마음을 채워주는 음식이 되고 있다
ⓒ 맛객

약간 식었을 때, 약간 불었을 때 국물과 함께 후루룩 떠먹어야 수제비 맛의 진수를 느낀다. 그렇게 씹는 둥 마는 둥 목 넘김이 수월한 게 수제비라 절로 급하게 먹게 된다. 만들기 쉽고 별 다른 비법도 없어 가정에서 즐겼던 수제비, 때론 이처럼 부담 없는 음식으로 바쁜 세상살이 잠시 쉬어 가면 어떨까.

모두들 제 잘났다고 나서는 이 세상에 수제비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지만 그는 과실을 따먹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음식이 풍요로워진 요즘, 사람들이 수제비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찾지 않아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다. 세상에 바보도 이런 바보도 없다. 에라!

수제비는 자신의 독자성을 지키려 하지 않고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룬다. 멸치국물에 들어가면 멸치수제비, 김칫국물에 들어가면 김치수제비, 그건 그나마 다행이지. 매운탕에 뼈다귀 탕에 들어가면 자신의 이름조차 사라지고 만다.

시골에서 살 때 부모님은 언제나 농사일로 바빴다. 하루 세끼 차리기도 시간 모자랐던 터라 간식이나 별식은 주로 누나가 만들어 주었다. 별식 이래봤자 뭐 있겠는가? 밀가루 음식이 대부분이지. 라면은 배부른 소리였고 밀가루 음식이라도 있어 다행인 그 시절, 수제비와 친해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기억나는 재료는 멸치와 감자 양파다. 감자는 수제비에 들어가도 감자다. 어찌나 뜨겁던지 입으로 후우~ 불고 먹어도 참 뜨거운 감자였다.

사실 수제비는 맛 외적인 요인 때문에 찾기도 한다. 이를테면 가격대비 푸짐함이다. 배부름을 조절해가면서 먹는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먹는 행위의 첫째 조건은 배부른 데 있는 이들도 있다. 꼭 배고픈 사람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언젠가 만화가 이두호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혹시 좋아하는 음식 찾으러 가는 단골집 있으세요?”
“나는 먹어서 배부르면 그만이야, 필요 이상으로 과식하는 동물은 우리 인간밖에 없어.”

음식 가지고 사치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로 들린다. 어디 사치뿐이겠는가? 음식 앞에서 위선 떨기도 하고 똥 폼 잡기도 하는 게 우리 인간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보면 담백한 수제비는 우리 인간의 허영과 가식을 정화하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김치 하나와 수제비 한 그릇 앞에 두고 잠시라도 솔직 담백해지는 마음가짐, 하찮고 보잘것없는 수제비 앞에 앉았을 때만이라도 그렇지 못하는 인간은 수제비만도 못하리라.

효자동엔 이발소, 삼청동엔 수제비 집이 있다

▲ 오랜 세월 삼청동을 지키고 있는 수제비집이 있다
ⓒ 맛객

신촌 현대백화점 오른편 길로 들어가다 보면 조그만 공간에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 있다. 가본 지 오래 되어 상호가 생각나지 않는 건지, 원래부터 상호 같은 건 중요시 여기기 않은 집인지 모르겠지만 그 집의 수제비만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 가면 겨우 수제비 한 그릇도 다 못 비울 정도로 내 양이 작았나 싶을 정도다. 양만 많은 게 아니다. 맛을 보면 웬만큼 하는 칼국수와 비교해서 판정승 정도는 거두리라고 본다. 그 집의 김밥도 인기메뉴였나? 십 년도 넘은 일이라 애써 가물가물한 기억 탓만 해본다.

서울 한복판에서 수제비와 어울리는 동네가 있다. 인접한 청와대와 총리공관이 개발바람을 막아서고 있는 삼청동, 1m도 안 되는 인도가 곡선으로 나 있어 걷고 싶은 거리 낭만적인 거리가 유럽 못지 않다.

중간 중간 인도 중앙에 서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는 개발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듯 보인다. 통쾌하지 않은가? 도심에서 사람 우위에 서 있는 자연이 있다는 게. 난 그 은행나무를 보고 있으면 심산에서 천하 절경을 보는 것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다. 한편으론 애달프기도 하지만….

수제비 찾아 삼청동에 왔다가 얘기가 새 나갔다. 삼청동을 대표하는 음식이 수제비다. 왠지 효자동에 가면 이발소가 있어야 하고 삼청동에 가면 수제비집이 있어야 한다. 이곳에서 어림잡아 몇 십 년째 수제비를 떠 왔으니, 삼청동과 수제비가 잘 어울린다. 자연미란 이런 게 아닌가. 상호도 ‘삼청동수제비’ 다.

이곳에서만큼은 세대 간 입맛 차이를 구분하기 힘들다. 오래 전부터 드나든 노인부터 명성 듣고 찾아온 젊은이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한 공간에서 음식을 나누고 있다. 노인과 젊은이 간 구역이 갈수록 명확해지는 요즘에 비하면 신기한 광경이다. 그렇다면 이 집의 음식은 어느 편에 서 있을까? 약간 노인공경사회 분위기다.

▲ 담백하고 개운한 김치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있다
ⓒ 맛객

김치는 단맛을 죽이고, 아니지 원래 우리네 김치는 단맛보단 감칠맛 아니었던가. 그렇다. 이 집의 김치는 개발에 휩쓸리지 않은 삼청동을 닮았다. 무조건 달게 만들어서 젊은 사람 비위나 맞추는 음식에 비하면 맛없어도 한참 없다. 그런데 어쩌랴, 나는 이 달지 않은 김치가 좋은 걸, 김치 통에서 꺼내온 게 아니라 시간의 저편에서 꺼내오지 않았을까.

▲ 삼청동 수제비 한 그릇, 부드러운 건지와 진한 국물 맛으로 사랑받고 있다
ⓒ 맛객

뚝배기에 담겨진 수제비가 나온다. 들어가는 재료를 살펴보니 김 가루와 호박 채, 당근 채, 그리고 조갯살 몇 개가 들어 있다. 수제비는 얇고 길게 떴다. 마치 칼국수를 다시 얇게 민 것처럼. 후루룩~ 후루룩~ 국물과 함께 떠먹는 수제비가 잘도 들어간다.

얇은 수제비에 다른 집 수제비보다 좀 더 끓였나 보다. 쫄깃하기보다 부드러움을 선택했다.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온 고무 같은 수제비에 길들여진 이라면 실망이 크겠다. 어른들은 안다. 힘들어가지 않은 이 수제비가 옛날에 먹던 그 맛이란 걸. 뽀얀 국물은 진하다고 해야 하나, 걸쭉하다고 하기에는 좀 맑은 상태다. 해물 맛이 나는 걸 보면 조개로 국물을 뽑은 것 같다.

수제비 1인분에 5000원 한다. 비싸다 싶기도 하지만 흘러온 세월이 만들어낸 명성과 맛이 포함 된 거라 생각하면 그만한 가치는 있다. 삼청동 길에 나간다면 수제비를 떠올려보시라. 그대가 수제비를 만나러 가는 그날, 촉촉이 겨울비라도 내렸으면 한다. 그래야 더 맛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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