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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등록된 80년 역사 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 맛은? |
‘국민 여동생’ 문근영의 변신으로 관심을 모으는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 자신의 속내를 들킬까 위악적인 독설을 퍼붓는 은조(문근영 분)가 유일하게 마음의 안식을 취하는 곳은 새아버지가 담근 술독 곁이다. | ||
李善珠 TOP CLASS 편집장(sunlee@chosun.com) |
충북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에 있는 세왕주조의 덕산양조장. 이곳에 가면 80여 년간 술을 떨어뜨리지 않고 담그는 술독들이 있다. 진천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덕산양조장으로 가자고 했더니, 택시 기사는 “진천 사람치고 덕산양조장 모르는 사람 없어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있었으니”라고 말한다. 길가에 척 보기에도 고풍스러운 건물이 서 있다. 1930년에 양조장으로 지은 단층의 목조 건축물. 2003년 문화재청의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문화재가 된 이 건물을 오래된 측백나무들이 양옆에서 호위하듯 지키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시금털털한 술 익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곳을 지키고 있던 이규행 대표가 유서 깊은 양조장을 안내한다. 현재까지 원형이 잘 유지되고 있을 뿐 아니라 용도도 그대로 쓰이고 있는 347.1m의 건물. 건물 벽체는 수수깡을 칡넝쿨 줄기로 엮은 뒤 지푸라기를 썰어 황토와 치댄 진흙을 바르고 나무판을 대어 마무리했는데, 흙벽과 나무판 사이에 왕겨를 채워 넣었다. 측백나무는 자외선을 막아주면서 나무에서 날아간 진이 양조장 벽을 천연 코팅해주며 해충방지 역활 등 덕산 양조장의 보호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스물여덟 살 때 이 양조장을 지었는데, 압록강 제재소에서 백두산 전나무와 삼나무로 만든 목재를 수로를 이용해 들여왔다고 합니다. 술을 만들기 시작하신 것은 1929년인데, 이 건물이 완공된 것은 1930년이죠. 큰돈을 들여 양조장을 짓는 할아버지를 보고 동네 분들이 다들 미쳤다고 했대요. 그런데 3년 만에 빚을 다 갚을 정도로 빨리 자리 잡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시대를 잘 내다보신 거지요.” 이후 덕산양조장은 진천의 자랑이 되었다고 한다. 발효실로 들어갔더니 오래된 술독들이 열을 지어 있다. 발효실의 나무 천장에는 환기구가 나 있어 발효실 자체가 ‘숨 쉬는 방’인 셈이다. “저희 술은 꼭 세워서 보관해야 합니다. 판매한 후에도 왕성히 살아 있는 효모균 활동으로 발효가 계속되면서 자연 탄산가스가 나오기 때문에 뚜껑도 숨을 쉴 수 있도록 해놓았죠. 옆으로 눕혔다가는 술이 숨구멍을 막아 큰일납니다. 김치처럼 술이 계속 익어가는 거죠.” 세왕주조의 막걸리는 탄산가스가 많아 톡 쏘면서 개운하다는 평을 듣는다. ‘생거진천(生居鎭川)’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비옥한 진천 땅에서 나는 햅쌀 80%와 밀가루 10%, 전분당 10%를 섞어 술을 빚는다고 한다. 일제시대 때 처음 술도가를 만들어 주류 품평회에서 특등을 휩쓸 정도로 ‘최고의 술’로 발전시킨 할아버지(故 이장범)와 아버지(이재철)에 이어 이규행 대표가 1998년부터 세왕주조를 이끌고 있다. 80여 년 전 할아버지가 만든 양조장 살리기 위해 낙향
80여 년 양조장 역사에서 막걸리는 여러 번 부침을 반복했다. 쌀로 막걸리를 만드는 게 금지되었던 시절에는 보리·옥수수 등 갖가지 재료를 이용해 막걸리를 만들어냈다. 이규행 대표는 중학교 때 먹었던 보리막걸리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면서, 이를 새롭게 재현해내고 싶다고 말한다. 1970년대 정부에서 약주 제조업체를 통폐합하면서 양조장은 또 한 차례 위기를 맞았는데, 세왕주조는 이때 더욱 성장했다. 업체들끼리 투표해 충북 유일의 약주 제조업체로 뽑힌 것이다. 1980~90년대 맥주와 희석식 소주에 자리를 내주었던 막걸리는 요즘 열풍을 일으키며 되살아나고 있다. 세왕주조는 만화 〈식객〉,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등에 유서 깊은 양조장으로 등장하면서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전국에서 불쑥불쑥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이규행 대표는 양조장 곁에 새로 지은 저온저장고에 아예 시음장을 마련해두고 세왕주조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술들을 맛보게 하고 있다. 막걸리에 곁들일 안주까지 내놓는 옛날식 주막도 만들 예정이다. 할아버지가 지은 양조장이 문화재로 등록된 것에 대해 이규행 대표는 무척 뿌듯해한다. “이 건물이 노후화돼 사라진다 해도 이 모습 이대로 다시 지어야 합니다. 자세한 설계도까지 준비되어 있지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건설업을 하면서 한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다. 그런데 늙으신 아버지 혼자 지키시느라 양조장이 점차 쇠락해가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 그는 가족을 이끌고 내려와 양조장을 되살려내기로 했다. 이규행 대표에게 막걸리의 시금털털한 냄새는 언제나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항상 손님이 들끓었어요. 술도가의 아들답게 초등학교 때부터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막걸리에 밥을 말아 먹으면 초밥처럼 꼬들꼬들해지는 게 정말 맛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는 술을 좋아했다. 주종 가리지 않고 많이 마셨는데, “술은 입으로만 마시는게 아니라 몸으로 마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술의 진면목은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신 후에야 나타나지요. 그러고도 뒤끝이 깨끗해야 합니다. 술은 맛뿐 아니라 목 넘김이 어떤지, 취하고 난 다음, 반 년 정도 마신 후 몸에 나타나는 변화 등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양조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술 제조에 있어서는 문외한이었다. 어릴 적부터 마셔만 보았지, 정작 어떻게 만드는지는 몰랐다. 양조장 일꾼들은 그를 경계해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다. 머리는 좀 모자라지만 우직한 일꾼한테 그는 하나하나 막걸리 만드는 법을 배웠다. “수십 년 내려오는 방법 그대로, 하나라도 공정을 달리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분이었어요. 그분 덕에 하나하나 철저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술에 대해 공부하고, 실험을 거듭하며 만드는 법을 개선하고, 새로운 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5년간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막걸리를 발효시키는 백국균을 단련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한다. “5년째 되던 때,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깨달음이 왔죠. 우여곡절을 겪지 않고 곱게 자란 균은 상황 변화에 쉽게 흔들리지만, 이런저런 환경에 부딪히며 적자생존을 익힌 균은 훨씬 자생력이 강해집니다”라고 말한다. 고두밥에 백국균을 섞어 발효시킬 때 그는 일부러 물과 온도 등 외부 환경을 들쑥날쑥하게 해 백국균의 자생력을 키웠다고 말한다. 그 결과 보통 15도 정도인 약주 원주(原酒)의 알코올 도수가 19.6도까지 올라갔다. 어느 정도 발효되고 나면 스스로 중단해 약주의 품질이 유지되는 것도 그 덕이라고 말한다. “참 신기한 것은 따로 효모균을 넣지 않는데도,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효모가 생긴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분명 없었는데. 이 오래된 양조장에 사는 효모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들어오나 봐요.” 그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한 흑미로 와인을 만들고, 동의보감에 나오는 한약재를 넣은 약주를 개발하는 등 계속해서 신제품을 내놓으며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생산 규모는 늘릴 생각이 별로 없다고 한다. “무작정 생산량을 늘리면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다 보면 품질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져요. 최고의 원료로 옛 방식대로 만든다는 원칙이 흔들릴 수 있지요. 저는 천천히 그리고 끈질기게 이 길을 가고 싶어요. 최고의 술을 만드는 술도가로 남고 싶으니까요.” 사진 : 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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