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역 , 현대문학, 2007.11 발간 13,500원>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17세기 페르시아 시인 사이브에타브리지는 그의 시 <카불>에서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400년이 지난 지금 아프가니스탄을 보고 온 국제분쟁전문기자 김재명은 그의 책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전쟁의 신’이 있다면 20세기 후반기의 아프가니스탄은 바로 그 전쟁의 신에게 저주받은 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나라이다. 20년을 넘게 아프가니스탄을 읽는 코드는 파괴와 살육, 그리고 절망이다. 얼마나 많은 이가 죽고 다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벽 뒤에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숨어 반짝인다고 시인이 노래할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카불이 파괴와 살육, 절망의 땅으로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전쟁 때문이다. 김재명의 표현대로 ‘무한 폭력이 합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특수한 공간’인 전쟁은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은 민중들에게 눈물과 고통, 피를 요구하고 있다. 또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의 집을 빼앗고, 가족을 빼앗고, 몸의 한 부분을 빼앗으며, 끝내 삶마저 빼앗아간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작품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폭력적인 사회와 잔혹한 전쟁 속에서 인권을 유린당한 채 살아가는 두 여인의 지난한 삶을 통해 아프간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아프간에도 인권을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한다.
1. 마리암
마리암은 ‘하라미(사생아를 비하하여 일컫는 말)’란 말을 다섯 살 때 처음 들었다. 그녀가 다기 세트를 깼을 때 엄마는 그녀에게 “등신 같은 하라미 년”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그때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바퀴벌레처럼 추하고 역겨운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마리암의 아버지 잘릴은 영화관과 카펫 가게 등을 소유한 부자였다. 그에게는 세 명의 가정부가 있었는데 마리암의 엄마 나나는 그 가정부들 가운데 하나였다.
나나와 마리암은 헤라트에서 한참 떨어진 개간지 언덕배기의 작은 오두막에서 살았다. 침대 두 개, 목조식탁 한 개, 의자 둘, 창문 하나, 토기와 다기 세트를 놓을 수 있는 선반이 전부인 집이었다. 잘릴은 매주 목요일 마리암을 보러 왔다. 마리암은 화요일 밤부터 잘릴이 사업상의 이유로 목요일에 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열다섯 살 되던 해 마리암은 잘릴에게 생일선물로 영화관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잘릴은 대답 대신 한숨만 쉬었다. 나나는 마리암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마리암, 나를 떠나지 마라. 제발 있어다오. 네가 가면 나는 죽는다.”
다음날, 마리암은 아침부터 머리에 녹색 히잡을 쓰고 잘릴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마리암은 엄마 몰래 잘릴이 살고 있는 헤라트로 향했다. 높은 담장의 잘릴 집 앞에 선 마리암은 마음을 가다듬고 문을 두드렸다. 맨발의 젊은 여자가 문을 열었다.
“잘릴 한을 만나러 왔어요. 저는 그분의 딸인 마리암이에요.”
하지만 잘릴은 나오지 않았다. 마리암은 그의 집 밖에서 밤을 샜다. 아침에 운전사를 밀치고 잘릴의 집으로 뛰어든 마리암의 눈에 위층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던 사람의 얼굴이 들어왔다. 잘릴이었다. 그는 후다닥 내려진 커튼과 함께 사라졌다. 서럽게 울며 집으로 돌아온 마리암을 기다리고 있는 건 버드나무 끝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나나였다.
나나의 장례를 치른 후 잘릴은 마리암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한 주가 지난 어느 날 오후, 잘릴의 세 부인과 잘릴이 마리암을 불렀다.
“너한테 청혼자가 있어. 너보다 나이가 약간 많긴 하지만 아직 마흔은 안 됐을 거야. 많아야 마흔다섯일 걸.”
다음날 마리암은 구두공인 라시드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곤 헤라트에서 동쪽으로 65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 카불로 떠났다. 라시드는 마리암에게 잘해주었다. 마리암을 데리고 음식점에 가기도 하고 카불 시내를 산책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마리암에게 아기가 들어섰다. 그 사실을 안 순간 그녀는 이 행운이 자신에게서 빠져나가지 않게 해달라고 신께 빌었다.
하맘(목욕탕)에 가자고 한 것은 라시드였다. 목욕탕에 처음 간 마리암은 구석에 혼자 앉아 속돌로 발뒤꿈치를 문지르고 있었다. 그때 피가 쏟아졌다. 결국 마리암은 손톱보다 작은 태아를 유산하고 말았다. 목욕탕 사건 이후 라시드는 변했다. 인상을 찌푸리고 마리암이 만든 음식을 타박하고, 사소한 것을 갖고 트집을 잡았다. 그리고 이따금 밤늦게 들어와 거칠게 그녀의 몸을 취했다. 마리암은 그 후 4년 동안 여섯 번에 걸쳐 아이를 유산했다. 그럴 때마다 라시드는 불같이 화를 냈다.
2. 라일라
라일라가 아홉 살 되던 해 전쟁터에 나갔던 두 오빠가 죽었다. 땅딸막한 남자가 찾아와 오빠의 죽음을 알렸다. 라일라의 아버지 바비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얘졌고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라일라는 별로 슬프지 않았다. 마음속에 살아 있는 존재로 느낀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피와 살을 가진 진짜 사람은 그녀가 좋아하는 타리크였다. 비록 의족을 했지만 그녀에게 파슈토어로 욕을 가르쳐주고, 소금에 절인 클로버 잎을 좋아하는 그가 진짜였다.
라일라가 열한 살이 되기 3개월 전,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있던 마지막 소련군이 카불을 떠났다. 그리고 지방 군벌간의 전쟁이 시작됐다. 공동 적이 없어진 군벌들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다. 로켓탄이 비 오듯 카불 시내에 쏟아졌고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갔다.
어느 날에는 로켓탄이 라일라의 친구 기티와 두 명의 동급생들을 덮쳤다. 나중에 라일라는 기티의 어머니가 달려와 비명을 지르며 앞치마에 딸의 살점을 주워 담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몸에서 떨어져 나간 그녀의 오른발은 2주 후 어떤 집 옥상에서 발견됐다. 그때까지 나일론 양말에 자주색 운동화가 신겨져 있었다고 했다.
카불 시민들은 서둘러 피난을 떠났다. 타리크 가족들도 카불을 등졌다. 라일라와 타리크는 눈물겨운 이별을 했다. 얼마 후 라일라 가족들도 카불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타리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짐을 꾸리던 라일라의 눈앞에 뭔가가 번쩍했다. 이어 귀를 찢을 듯한 소리와 함께 뜨겁고 강력한 것이 뒤에서 그녀를 덮쳤다. 불붙은 나뭇조각이 날아갔다. 산산조각 난 유리조각들도 날아갔다. 라일라의 몸이 벽에 부딪쳐 땅으로 떨어졌다. 근처에서 쿵 소리를 내며 피범벅된 물체도 함께 떨어졌다. 깨진 벽돌조각 틈에서 그녀를 찾아 꺼내준 사람은 라시드였다. 라일라의 부모를 죽게 만든 폭발이 있은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한 남자가 라일라를 찾아왔다. 그 남자는 타리크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라일라를 그리워하며 죽었다고 전했다.
3. 마리암과 라일라
라일라는 파키스탄으로 떠날 작정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떠날 수 없게 됐다. 날마다 터져 나오는 구토, 커지는 가슴, 이 혼란의 와중에 생리를 하지 않았다는 깨달음.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라일라는 라시드의 후처로 들어앉았다. 라일라는 곧 딸을 낳았다. 라시드는 그 아이를 싫어했다. 마리암은 라일라가 지어준 아지자란 이름을 라시드가 부르는 걸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라시드는 라일라와의 관계가 좋지 못할 때면 그 원인을 마리암에게 돌렸다. 둘이 싸움이라도 한 날이면 그는 갈색 가죽벨트를 손에 들고 마리암을 찾았다. 그리고는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마리암을 때렸다.
어느 날 밤, 갈증으로 잠이 깬 마리암은 물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가다 깨어 있는 아이와 마주쳤다. 마리암은 아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이도 누워서 마리암을 골똘히 쳐다보았다. 마리암이 물러나려고 하자 아이는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잡았다. 마리암은 아이가 움직임을 멈추고 부드럽게 코를 골기 시작할 때까지 앉아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마리암은 라일라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곧 라일라와 아지자는 마리암의 일부가 되었다.
라시드의 폭력은 갈수록 심해졌다. 라일라와 마리암이 파키스탄으로 도망가려다 잡혀 왔을 때에는 죽기 직전까지 때렸다. 그리고는 음식은 물론 물 한모금 주지 않고 빛 한줌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 가두어 놓았다.
그럴 즈음 타리크가 거짓말처럼 라일라 앞에 나타났다. 라일라는 그제서야 라시드가 사람을 고용해 타리크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곤 자신을 취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일라가 타리크를 만났다는 사실을 안 라시드는 분노로 이성을 잃었다. 움켜쥔 벨트의 버클이 라일라의 가슴, 어깨, 팔, 손가락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버클이 닿은 곳은 어디나 피투성이였다. 나중에 라시드는 라일라 위에 올라타 그녀의 목을 졸랐다. 라일라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갔다. 마리암은 문을 박차고 공구실로 달려가 삽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라시드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다. 라일라는 마리암에게 같이 파키스탄으로 도망가자고 애원했지만 마리암은 조용히 거절했다.
“그들은 빵을 훔쳤다는 이유로 손목을 자르는 자들이야. 남편이 죽고 부인 둘이 사라졌다는 걸 알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사형이 집행되던 날, 마리암은 마지막 스무 걸음을 걸으면서 조금 더 살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라일라를 딱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연합군이 탈레반을 주요 도시에서 산악지대로 몰아내고, 유엔평화유지군이 카불에 파견됐다. 파키스탄에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라일라는 카불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녀는 타리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고향이 아니잖아. 카불이 고향이야. 그곳에서는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나는 뭔가를 하고 싶어. 나는 기여하고 싶어.”
라일라는 카불에 도착한 후 마리암이 어디에 묻혔는지 몰라 괴로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마리암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들이 새로 칠한 벽, 그들이 심은 나무, 그들의 베개와 책과 연필 속에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 속에도 있었다. 하지만 마리암은 대부분, 라일라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 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있었다.
4. 관계를 만든다는 것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 보면 여우와 어린왕자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길들인다는 게 뭐지?”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관계를 만든다고?”
“넌 내게는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어린애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네가 필요하지 않고 너도 내가 필요하지 않아. 너에게 난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지.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해지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이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이 세상 하나뿐인 여우가 되는 거지.……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하게 밝아질거야. 다른 모든 발소리와 구별되는 발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소리는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겠지만 너의 발소리는 땅 밑 굴속의 나를 밖으로 불러낼거야. 그리고 저길 봐.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먹지 않아. 그래서 밀은 내겐 아무 소용도 없어. 밀밭은 나에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거야. 밀은 금빛이니까 내게 네 생각을 하게 만들거야. 그럼 난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조차도 사랑하게 될거야.”
우리는 거의 날마다 지구촌 어디에선가 전쟁으로 수많은 건물이 파괴되고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를 듣는다. 하지만 무심하게 흘려듣는다. 당연히 아프가니스탄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이다. 전 세계 수많은 국가 가운데 전쟁을 치르고 있는, 그렇지만 우리와는 별 상관없는 그런 나라쯤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음으로써 우리와 아프가니스탄 간에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제 우리는 뉴스에서 아프가니스탄이란 말이 귀에 들어올 것이다. 전쟁 이야기를 들으면 아프가니스탄과 거기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또 마리암과 라일라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일단 맺어진 관계는 확장한다. 어린왕자에게 길들여진 이후 여우가 밀밭과 그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조차 사랑하게 된 것처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통해 우리는 아프가니스탄뿐 아니라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구상의 여러 나라와 수많은 사람,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북한주민의 시련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지난해 봄, 대학로에서 열린 반전영화제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개막작 <조각난 이라크>를 본 후 참석자 몇몇이 작은 호프집에 모였다. 거기서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우물 안 개구리란 말은 관심 영역이 나에게로만 쏠려 있는 사람 아닐까? 나와 상관이 없으면 어떤 것에도 관심조차 가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관심 영역이 확대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더욱 폭넓고 따뜻한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분쟁전문기자 김재명은 이렇게 묻고 있다.
“전쟁은 무한 폭력이 합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특수한 공간이다. 그러나 과연 ‘합법적인 전쟁’을 인정해야 하는가? ‘전쟁 없는 세상’은 요원하기만 한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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