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

'대이변 주인공' 문대성

'대이변 주인공' 문대성, 류샹도 이겼다
조선닷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영웅' 문대성(32.동아대교수)이 아시아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 됐다. 문대성의 선수위원 당선은 중국의 육상 영웅 류샹, 호주의 수영 영웅 그랜트 해켓 등을 제친 대이변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이 이번 올림픽에서 장외 금메달을 땄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문대성은 21일 결과가 발표된 IOC 선수위원 투표에서 총 후보자 29명 가운데 1위를 차지, 임기 8년의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됐다. IOC 선수위원은 올림픽에 출전한 1만3000여 선수가 직전 올림픽이나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를 대상으로 투표하는 제도로, 아시아 선수 출신의 선수위원이 선출되기는 문대성이 처음이다


문대성은 당초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올림픽 기간에 선수촌과 경기장을 누비며 선수들 앞에서 태권도복을 입고 직접 수천 번의 태권도 발차기를 선보이며 표심 획득에 나선 결과 당선됐다.


문대성은 이번 투표에서 유효 투표 수 7217표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220표을 얻었다. 2위로 선수위원에 당선된 러시아의 수영 스타알렉산더 포포프(1903표)보다 1300표나 많았다.이번 올림픽 육상 110m 허들에 출전했다 중도 기권한류샹도 선수위원으로 출마했지만, 1386표밖에 얻지 못해 8위를 기록해 당선에 실패했다. 또그랜트 해켓 역시 1131표를 얻으며 9위에 그쳐 선수위원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IOC 선수위원은 IOC 위원과 똑같은 권한을 가진다. 국가원수급 대접에 전세계 여행시 비자 면제는 물론, 경호원까지 붙는다. 특히 올림픽 개최지 결정이나 종목 선정 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어 한국의 스포츠 외교력 강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전망이다.

▲ 사진=연합뉴스


문대성은 "자는 시간만 빼고 하루 15시간 동안 땡볕에서 선수들을 만나고 부딪혔다. 완벽하지 않은 영어인 데도가 한 표를 호소하느라 이상한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다"면서 "그러나 설움을 받으면서도 그것까지 이겨냈기에 기쁘고 눈물도 많이 났다"고 말했다.


쇼트 트랙 선수 출신인 전이경은 이에 앞서 지난 2002년 한국 선수로선 처음으로 IOC 선수위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아쉽게 낙선했었다.


IOC 선수위원회는 하계 종목 8명, 동계 종목 4명 등 총 12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8년이다.


한국은 이에 따라 김운용, 박용성 전 IOC 위원의 잇딴 퇴진으로 이건희 IOC 위원만을 보유하고 있던 한국은 11개월만에 2명의 IOC 위원을 보유하게 됐다.

황금 발차기 ‘한방’ 아테네 스타…문대성은 누구
입력: 2008년 08월 21일 23:27:46
ㆍ베이징 2연패 접고 더 큰꿈 이뤄

아테네올림픽 ‘발차기의 영웅’에서 한국 첫 ‘IOC 선수위원’으로.

문대성(32·동아대교수)은 한국 태권도의 간판 스타였다.

IOC 선수위원 투표결과(4위까지 당선자)
1976년 인천에서 태어난 문대성은 구월초등학교 5학년 때인 87년 태권도에 입문해 96년 동아대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 선수생활을 하면서 많은 역경을 이겨내야 했다.

문대성은 국가대표가 되던 그해 왼쪽 무릎을 크게 다쳐 자칫 다리를 절단해야 할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동아대병원에서 골수배양에 성공해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큰 고비를 넘긴 문대성은 99년 에드먼턴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80㎏ 이상급에서 금메달을 따며 실력을 알렸다.

하지만 올림픽과의 인연을 맺는 일은 쉽지 않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선발전에서 2위를 차지했지만 3위 김경훈과의 재대결에서 패해 올림픽 꿈을 접어야 했다. 상무에 입대해 마음을 다잡았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재기에 성공, 2004년 아테네에서 시원한 발차기 공격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4년 12월 돌연 현역에서 은퇴한 문대성은 IOC선수위원을 통한 스포츠외교를 또 다른 목표로 삼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연맹(WTF) 총회에서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WTF 집행위원에 지명되는 등 IOC 선수위원 도전을 위한 발판을 착실하게 마련해 나갔다. 2014년 하계 아시안게임 개최도시를 결정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에서도 프레젠테이션에 참가해 인천의 대회 유치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모교인 동아대 태권도학과 교수로도 임용돼 후진양성에서 힘썼다. 문대성은 베이징올림픽에서 대회 2연패를 노려보겠다며 지난해 6월 깜짝 선수복귀를 선언했지만 같은 해 12월 IOC선수위원 후보에 포함되면서 올림픽 2회 연속 우승 꿈을 접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을 이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