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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꾼 것이 좀 물짜더라도 아침저녁 쌀쌀한 날씨에도 싱싱함을 유지하던 고춧잎이며, 고구마 순이 된서리를 맞더니만 소금에 절여놓은 듯 숨을 죽였다. 서리를 맞으면 한방에 나가떨어진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때를 알아차리고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미리부터 씨를 맺느라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을까? "여보, 빨리 고춧대 뽑아요!" "고춧대를?" "그래요. 지금 뽑아놓으면 붉어지는 게 많이 생겨요." "그거 뭐하게?" "이 양반, 뭐하기는요. 고춧가루 빻지요." 예전 자기가 클 때, 부모님은 끝물 전에 딴 것은 죄다 돈 만드느라 팔고, 서리맞은 희아리를 먹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린시절, 부모님이 자식들 가르치기 위해 좋은 것은 못 드시고 희아리만 드시던 것이 나도 생각난다. 나는 서둘러 고춧대를 뽑았다. 아직 붉어지지 않은 된장 색을 띤 고추도 뽑아두면 제 색깔을 내어 고춧가루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상품가치가 좀 떨어지더라도 중국산에 비교하겠느냐는 생각에서이다. 마지막으로 거둔 고추라도 약이 올라 매운 맛에서는 손색이 없다고 한다. 농약을 안친 지가 달 반이 넘었으니까 도리어 좋은 먹거리가 될 수 있다. 우리 배추가 영양실조?
아내가 배추밭에서 모양이 좋지 않은 것을 골라 몇 포기 뽑는다. 반찬을 하는 데 멀리가지 않고 텃밭에서 금방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김치 담근 지 얼마 안 됐잖아?" "이웃과 나누어 먹다보니 얼마 안 남았어요." 겉절이를 해먹을 모양이다. 배추 겉잎은 시래기로 지져먹고, 속잎은 쌈을 싸서 먹겠다는 것이다. 배추를 다듬으면서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이다. 겉잎을 따내는 데 시래기가 많이 나온다. 누런 잎이 지고, 속이 꽉 차지 않았다는 것이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시원찮지요? 영양실조라도…." "모양새는 그래도 맛은 괜찮잖아." "하기야. 웃거름을 안주어서 그렇죠?" "남들이 요소를 좀 주라고 하는데 그냥 놔두었어." 우리는 텃밭을 가꾸면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많은 조언을 듣는다. 그런데 500여 포기의 배추와 무를 한 이랑 가꾸면서 고집스럽게 웃거름으로 화학비료인 요소비료를 주지 않았다. 배추 값은 금값인데…. 요사이 배추 값이 금값이라고 한다. 중국산 배추에서 납 성분이 나오고, 기생충 알까지 나와 배추가 귀하게 되었다. 더구나 작년에 비해 재배면적도 줄었다고 한다. 내남없이 올해는 직접 김장을 담가 먹을 계획이라 하니 배추 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런 사정이어서 우리 집 텃밭을 가꾸는 데 조언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한다. "배추 포기 사이에 구멍을 뚫고 요소 두 숟가락만 넣으세요. 며칠 내로 금방 깨어날 거예요. 김장하려면 아직도 많이 남았으니까 지금도 늦지 않아요. 포기가 꽉 차도록 모양을 내려면 빨리 서두르셔." 우리 집 배추가 처음 자랄 때는 밭을 갈 때 뿌린 두엄만으로도 모양 좋게 자랐다. 그런데 포기를 앉히면서 영양부족 현상이 온 것이다. 일부 밭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것들이 포기가 부실하다. 화학비료로 요소비료를 주면 금방 효과가 나타난다. 잎이 연해지면서 포기가 실하게 찰 것이다. 요소비료는 질소질 성분이 대부분이다. 과다한 질소성분의 배추는 잎이 두껍고, 배추 맛이 쓰다고 한다. 사람 몸에도 좋을 리가 없다. 우리는 장사할 것도 아니고, 아는 몇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김장거리인데 굳이 배추에 화학비료를 주어야 하나 싶다.
우리는 무더운 여름, 포토에 배추모를 부었다. 애써 이랑에 비닐을 씌우고, 한 포기 한 포기 정성을 다해 심었다. 자주 온 비 때문에 열 포기 남짓 뿌리가 썩어 버린 것을 제외하면 그런대로 잘 자랐다. 비록 영양부족이 오기는 왔지만.
아내는 맛난 겉절이에다 배추쌈을 준비하였다. 시래기로는 생새우를 넣어 지졌다.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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