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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조림과 굴무침

혼자 먹기 아깝다는 말, 틀리지 않네!
아내가 없는 사이 친구와 함께 맛난 저녁을 해 먹다
전갑남(jun5417) 기자
▲ 내가 요리한 고등어조림과 굴무침
ⓒ 전갑남
마니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매섭다. 한겨울 추위가 벌써 며칠째다. 오후 5시 반인데 땅거미가 지고 있다.

몸을 잔뜩 움츠리고 버스에서 내렸다. 마을에 5일장이 섰다. 5일마다 장이 선다고 하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이야 고작 열 집도 안 된다. 면소재지의 조그마한 마을 장날이 오죽하겠는가?

무엇을 해 먹어 볼까나?

장꾼들이 하나 둘 차일을 걷고 있다. 어물전 할머니도 팔다 남은 생선을 주섬주섬 챙긴다.

"할머니, 자반고등어 있어요?"
"아이구, 선생님 퇴근하셔요? 몇 마리 안 남았는데, 얼마나 드릴까?"
"한 손만 주세요."

자주 뵙는 할머니다. 떨이지만 물은 괜찮다며 까만 비닐봉지에 고등어를 넣어준다. 한사코 손사래를 쳐도 500원을 깎아준다.

"사모님더러 무 넣고 지져달라고 하셔."
"우리 집사람은 고향 갔는걸요."
"그럼, 고등어 어따 쓸려고?"
"제가 해먹죠!"
"그래요? 선생님이 요리를 다해?"

할머니는 남자도 혼자 있을 때 요리를 해볼 줄 알아야 한다며 몇 가지를 일러준다. 나는 아내가 음식을 만들 때 늘 지켜보며 같이하던 터라 딱히 들을 필요가 없지만 살갑게 대해주는 할머니가 고맙다. 짧은 시간에 할머니의 고등어조림 설명이 이어진다.

"무는 집에 있지? 무를 나박나박 크게 썰어 끓는 물에 먼저 데쳐내야 돼. 그래야 무맛이 설컹설컹하지 않지! 데친 무에 고등어를 넣구 갖은 양념을 해서 부어. 그리고 한소끔 푹 끓이라구. 다음으로 듬성듬성 썬 대파를 넣으면 끝이야. 아시겠지? 맛있게 해 드셔."

고등어조림을 할 때는 머리를 함께 끓여 발라먹어도 맛있다며 통째로 넣었다고 한다.

혼자 먹기 아까워 전화기에 손이...

아내는 처조카 결혼식이 있어 고향에 내려갔다. 같이 갈 참이었는데 긴히 처리해야할 일이 있어 나는 집에 남기로 했다. 오늘은 독수공방이다. 멀리 불 꺼진 우리 집이 보인다. 매섭게 바람이 부는 시골 고샅길이 스산하다. 봉지에 담긴 고등어 한 손을 들고 종종걸음을 치며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여 잘 보관해 둔 무부터 꺼냈다. 잘못 보관하면 무에 바람이 들어 맛이 떨어지는데 아직은 괜찮아 보인다. 대파도 준비했다.

▲ 자반 고등어와 무, 대파를 준비하다.
ⓒ 전갑남
▲ 끓는 물에 무를 데치다.
ⓒ 전갑남
▲ 고등어무조림 완성!
ⓒ 전갑남
고등어는 세 토막 내 준비하고 무는 굵직굵직하게 썰었다. 할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끓는 물에 무를 데쳐내었다. 대파도 어슷어슷 썰었다. 갖은 양념에 고춧가루를 적당히 넣어 한소끔 끓였다. 맛을 보니 약간 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것 같다. 이럴 때 먹다 남은 소주를 붓는 것이 생각나 약간 넣었다.

내가 생각해도 맛이 있다. 혼자 먹기 아까울 정도라는 말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친동생처럼 지내는 친구가 생각났다. 전화기를 들었다.

"지금 어디야?"
"네, 지금 퇴근하는 중이에요."
"그래? 그럼 잘되었네. 우리 집에 들러 저녁 먹고 가."

느닷없이 저녁을 먹고 가라는 소리에 의아해한다. 밖에서 만나자는 것도 아니고 집으로 오라고하니 그런 모양이다.

"형! 오늘 무슨 날이야?"
"무슨 날은! 내가 맛난 것 해놨어."
"형이? 형수님 어디 가셨어요?"
"응. 이따 와서 이야기하구. 천천히 와."

출출한 터에 잘 되었다며 조그만 기다리란다. 사람은 오라고 했는데 고등어조림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지난 번 굴밥을 해먹고 남은 굴이 생각났다. 아직 싱싱해 보인다. 무순도 눈에 띄었다.

무순을 넣고 생굴을 무쳐 먹어볼까? 고등어조림과 함께 생굴을 무쳐 내놓으면 아주 맛있는 저녁상이 차려질 것 같다.

▲ 굴무침을 위해 굴과 무순, 대파를 준비하다.
ⓒ 전갑남
▲ 갖은 양념을 하여 굴무침을 하다.
ⓒ 전갑남
▲ 굴무침 완성!
ⓒ 전갑남
아내가 굴을 손질할 때 눈여겨 보아온 데로 심심한 소금물에 흔들어 씻었다. 체에 건져 물기를 뺐다. 굴은 맹물에 씻으면 단맛이 다 빠져나가 맛이 없다.

무순을 넣고 갖은 양념을 하여 생굴을 무치고 있는데 친구가 들어왔다. 요리를 하는 나를 보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형, 생굴도 무쳤네?"
"그래, 맛을 좀 볼래?"

넉살 좋은 친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고등어조림, 굴무침으로 우리는 늦은 저녁을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친구는 밥 두 공기를 금방 해치운다.

"야, 천천히 좀 먹어라. 맛은 괜찮아?"
"아주 맛있는걸! 형 솜씨, 알아 줘야겠어."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친구와 같이 먹는 저녁이 즐겁다. 여느 때 같으면 라면으로 대충 때우고 말았을 텐데 말이다. 세상사는 이야기와 함께 따뜻한 음식을 먹으니 추운 겨울날씨도 녹아나는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랫녘은 엄청 많은 눈이 내렸는데 집은 무사한지 걱정이라고 한다. 말끝에 밥은 잘 챙겨먹었느냐며 안부를 묻는다. 나는 호기를 떨며 답했다.

"걱정 말라구. 당신 있을 때보다 더 잘 먹고 있으니까. 그리고 올라오면 맛있는 거 해주려고 생각해놨어! 차 조심하고…."

전화를 타고 들리는 아내의 웃음소리가 밝다. 나는 부리나케 출근을 서두르며 버스정류장까지 냅다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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