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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 있으면 본격적인 여름이다. 여름에 가장 생각나는 음식과 과일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수박과 냉면이라고 할 수 있다. 수박을 한자로 수과(水瓜)라고 하는데, 이는 물이 많은 과일이란 뜻이다. 그리고 냉면을 한자로 쓰면 '冷麵'이 되는데 '찰 랭'자에 '밀가루 면'자를 쓴다. 즉, 냉면은 면으로 만든 차가운 음식을 말하는데, 흔히 우리들이 먹는 냉면은 메밀로 만든 평양식 냉면(물냉면)과 감자 전분으로 만든 함흥식 냉면(비빔냉면)을 일컫는다. 냉면은 후텁지근한 여름에 우리의 입맛을 돋우어주는 고마운 음식임에 틀림없다. 입안 가득히 면발을 집어넣은 후 이빨이 부서져라 아작아작 씹는 맛은 가히 일품이다. 게다가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달짝지근한 육수를 후루룩 마셔대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시원한 쾌감이 몰려온다. 기사를 쓰는 필자의 입에도 어느 새 군침이 살짝 도는구나. 밀가루와 전분을 섞어 만든 부산식 냉면, '밀면'
평양식이나 함흥식 냉면에서 조금 옆으로 새어나간 냉면인 것이다. 냉면과 밀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무래도 재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냉면이 메밀로 만든 면이라면 밀면은 밀가루로 만든 면이다. 그런데 순수 밀가루로만 만든 것이 아니고 전분이 30% 정도 들어간 면이라고 보면 된다. 부산식 냉면인 '밀면'의 역사는 6·25 전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6·25전쟁의 흔적을 가장 많이 지닌 도시는 부산일 것이다. 단 한 차례의 폭격이나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피난민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겨진 곳이 바로 부산이기 때문이다. 밀면도 바로 그런 아픈 상처 속에서 탄생한 음식이었다. 6·25 전쟁 중에 전국 각지에서 부산으로 몰려온 피난민들은 대개 산꼭대기나 바닷가 근처에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그 대표적인 거주지가 중구 영주동과 동광동 산꼭대기이고, 그 외 영도 신선동과 청학동 산꼭대기나 우암동 산꼭대기, 서구 감천동 산꼭대기도 대표적인 피난민 주거지였다. 밀면은 바로 이 피난민 주거지에서 발생한 음식이다. 홍어나 가오리 대신 '돼지고기'를 얹는 '밀면'
그러나 초기의 밀면은 밀가루로만 만들었기 때문에 면발이 뚝뚝 끊어지고 쫄깃함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당시 부산 사람들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국수와 우동을 즐겨 먹었지, 다소 질긴 듯한 냉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몇 차례의 실패 끝에 밀가루와 전분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면을 만들어 보았는데, 그렇게 만든 면이 국수보다 쫄깃하면서도 냉면보다 덜 질긴 맛을 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부산 밀면이었다. 부산 밀면은 재료의 차이가 있을 뿐, 기존 냉면과 모습이 비슷하다. 밀면의 종류도 물 밀면과 비빔 밀면으로 나뉘어 있고 먹는 방식도 냉면과 비슷하다. 다만 비빔 밀면에는 홍어나 가오리 대신 돼지고기가 얹어져서 나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르다. 부산 밀면을 말하자면 아무래도 '가야 밀면'을 빼놓을 수가 없다. 가야 밀면은 부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음직한 상호일 정도로 부산에서는 유명한 밀면 집이었다. 또 시내에 나가 보면 가야 밀면이라는 상호가 유달리 눈에 많이 뜨인다. 이는 그만큼 가야 밀면이 부산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참 특이한 것은 가야 밀면 집이 오랫동안 정식 허가를 받지 않고 가정집에서 장사를 했다는 것이었다. 환상적인 맛의 '밀면', 부산에 오면 꼭! 맛보세요
냉면 육수와는 다른 달큼하면서도 새콤한 그 맛.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뚝뚝 끊기는 면발의 찰진 맛은 입안에 향긋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무허가로 아무리 단속을 받아도 아랑곳없이 장사를 했다는 가야 밀면 집. 왜 그렇게 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가야 밀면 집 그 자체가 부산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되는 특이함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며느리도 모르는 가야 밀면 비법'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전쟁의 상흔 속에서 태어난 밀면이지만, 이제 밀면은 부산을 대표하는 서민적인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냉면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 밀면은 여름 땡볕을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고마운 음식으로 부산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올 여름, 부산에 와서 잠시나마 일상의 피로를 덜고자 하는 외지 사람들은 필히 부산 밀면을 맛보고 가시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