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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만두

며느리 입덧도 그치게 만든 시어머니의 평양만두
임순화(ishjgh) 기자
시집오던 해 첫 번째 여름, 입덧으로 무척이나 힘들어하던 내게 시어머니가 손수 빚어 만들어주신 만둣국 맛에 메슥거리던 속이 몰라보게 진정되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시어머니의 고향은 이북이시다. 시어머니의 가슴 속에 아직도 고스란히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고향의 추억을 개운하고 맛깔스런 음식으로 빚어내시는 마음은 늘 가족들의 입맛을 돋우는 데 일등공신이다.

따뜻한 물을 붓고 반죽해서 피를 만들고, 녹두 나물을 삶아 잘게 썬 다음, 기름기를 뺀 살코기를 곱게 다져 달달 볶은 후, 얇게 펴놓은 만두피 속에 빠져서는 안 될 잘 익은 김장김치를 송송 썰어 수분을 짜낸 후 손바닥만한 만두피 속에 재료를 넣어 모양을 만들어내면 시어머니표 평양 만두가 완성된다.

그 이유 때문인지 시어머니는 김장김치를 해마다 넉넉하게 해두셨고 김치가 익을 무렵이면 한 포기씩 포장한 뒤 냉동실에 차곡차곡 얼려두셨다. 지금이야 김치냉장고가 주방가전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아 있지만 십오륙 년 전 그때는 찾아 볼 수 없는 물건이었기에 여름까지 먹을 수 있는 김치를 보관하기란 번거로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잘 보관된 김장김치는 요즘처럼 더워진 날씨에 입맛까지 잃어가는 시기가 돌아오면 갖은 양념을 곁들여 평양 만두를 만들곤 하셨다. 물론 내가 첫아이를 가져 무척이나 힘들어하던 그해 여름에도 시어머니의 향수에 젖어 만드신 평양 만두는 철없던 며느리에게 입맛을 찾아주는 단방 약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어릴 적부터 친정엔 만두란 걸 빚어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명절이면 떡국을 먹었고 여름철이면 아버지가 물고를 막고 잡아오신 민물고기로 끓인 어죽을 먹고 자란 내게 처음 하얀 국그릇에 둥둥 뜬 주먹만한 만두가 조금은 낯설기도 했었다.

그러나 못미더워 반심반의로 국물만 떠먹던 나는 알싸하면서도 개운한 뒷맛에 이끌려 만두 한 개를 툭 터트려서 먹기 시작했다. 비위가 상해서 아무리 좋은 걸 사다주어도 먹지 못 하던 내가 처음으로 시어머니가 끓여준 만둣국을 땀을 흘려가며 먹던 그날 시어머니는 몹시 흐뭇하게 웃으셨다.

"그래! 많이 먹어라!"

다 아는 병이니까 걱정은 안 되지만 엄마가 잘 먹어야 뱃속의 아이도 건강하게 자라지. 입에 맞으면 내 또 해 줄 테니 어떠냐? 맛있지? 몇 달 심한 입덧을 하던 며느리가 당신이 손수 빚은 만두만큼은 맛나게 먹어주는 모습이 고맙기라도 하시는지 연신 싱글벙글이셨다.

그날 이후 나는 시어머니께 평양만두 빚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평소 손끝이 야물지 못했던 내가 얇게 펴놓은 만두피 속에 갖은 양념을 넣고 예쁘게 똬리 트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피가 찢어져서 속이 터져버린 경우도 있었고 주먹만하게 빚어놓은 만두가 비뚤어진 돌멩이처럼 울퉁불퉁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함께 보낸 명절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조금씩 서툴기만 했던 내게도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고 만두를 빚기 위해 김장김치를 써는 날엔 아이들이 더 좋아했다. 그렇게 시어머니표 평양만두가 내게 전수되었고 나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짜리 우리 둘째에게 평양만두 빚는 비법을 전수하고 있는 중이다.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큰 도마 위에 잘 익은 김장김치를 올려놓고 숭숭 썰기 시작했다. 잘 말려 둔 양파자루에 김치를 넣고 수분을 짜낸 다음 녹두 나물과 잘 볶은 살코기와 갖은 양념을 넣고 달달 볶은 후 만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두를 빚는 동안 조금 큰 곰솥에 커다란 무 두 토막과 잘 말려둔 다시마 몇 잎 넣고 양파 두어 개를 곁들여 넣고 중불로 뜸을 들이듯 육수를 만들었다.

▲ 맛이 깊어가는 만두국
ⓒ 임순화
어느 정도 양파와 무와 다시마가 물렁해질 쯤 고운 채에 물을 걸러낸 다음 다시 중불로 한 번 끓인 후에 예쁘게 빚어놓은 만두를 펄펄 끓는 물에 넣어주면 익기 시작한 만두가 물 위로 둥둥 떠오른다. 만두가 떠오를 때 다시다와 국 간장으로 간을 맞춘 다음 송송 썰어둔 파 마늘과 약간 매운맛이 있는 청량고추를 썰어 넣는다.

펄펄 끓는 육수 위로 동동 뜬 만두에 파릇한 새싹처럼 고명으로 얹어진 파와 청양고추의 어우러짐이 너무도 예쁜 만둣국을 하얀 국그릇에 담아놓으면 그 어떤 산해진미가 이 맛을 따를 수 있으랴.

처음엔 서툴러서 그런지 국물과 만두 맛이 따로 노는 듯했지만 시어머니와 마주앉아 알콩달콩 고부간의 사랑을 쌓아가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내가 만든 시어머니표 평양만두국도 그 형용할 수 없는 알싸함이 깊어가는 것 같다.

부디 오래오래 우리 시어머니 만수무강하시어 늘 부족한 이 며느리에게 삶의 깊고 깊은 그 맛을 많이 많이 전수해주셨음 하는 바람이다. 그리하여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시어머니의 고향을 아들 며느리 집 오가시듯 그렇게 자유롭게 다녀오실 수 있는 기쁜 날을 꼭 맞이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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