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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온 가족이 한군데 모여 저녁을 먹었습니다. 일흔여섯 번째의 어머니 생신을 맞이해서입니다. 가까이 살면 가까이 사는 데로, 멀리 살면 멀리 사는 데로 여러 사정이 있어 같이 모이기가 어려운데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라야 서로 얼굴 마주보고 웃으며 이야길 나눌 수 있습니다. 비가 오지만 모처럼 밖에 나가 게장과 게찜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닌 늘 하던 대로 그냥 집에서 먹지 왜 돈 들여서 밖에서 먹냐며 한사코 싫다고 하십니다. 어머닌 언제나 그랬습니다. 어쩌다 외식이라도 하자고 하면 집에서 먹자고 고집을 피우셨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을 하는 건 자식들 형편을 생각해서입니다. 다 큰 자식들이지만 늘 아등바등 사는 모습이 마음에 걸린지라 밖에서 먹을 돈 아껴 아이들 교육비라도 쓰라는 뜻이지요. 어머니의 고집에 아버진 이따금 고까운 소릴 하시기도 합니다. 자식들이 하자고 하면 그냥 못이긴 척하지 웬 고집을 피우냐는 것이지요. 여기에 며느리들도 한입 두입 거들면 어머닌 결국 자리를 나섭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수박이니 참외니 이것저것 먹어 밥맛이 없다며 그냥 집에서 먹자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아내가 은근히 압력을 넣습니다. "어머니 안 가시면 우리도 밥 안 먹을래요. 그리고 예약까지 다 해놔서 안 가시면 안돼요. 자 어서 옷 입으세요." 그리곤 옷을 입혀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옵니다. 이번에도 마지못해 따라 나온 듯 나섭니다. 그냥 '오냐, 너그들이 사 준 밥 한 번 먹어보자'하고 나서면 얼마나 좋으련만 한 번도 그러질 않으십니다. 당신의 입보다도 자식들의 살림살이가 더 마음에 쓰이기 때문일 겁니다.
"알았다. 너그들도 많이 묵거라." 그러자 아이들이 할머니 생신 축하드린다며 인사를 합니다. "할머니, 생일 축하드려요." "나도 할머니." "그래 그래. 우리 강아지들도 많이 묵거라. 우리 욱이도 많이 묵고 잉." "네~!" 아이들은 인사가 끝나자마자 꽃게 찜을 한 사발씩 가져다가 먹기 바쁩니다. 어버지도 모처럼의 외출이 좋으신지 소주 한 병을 다 비우십니다. 그런 아버질 보고 어머니가 "야, 너그 아버진 평생을 술과 살아왔는디 나중 저 시상 가면 술 없어서 어찌 한다냐"하시자 아버지 말이 걸작입니다. "걱정 말라고. 저승에 가더라도 술 파는 곳으로 갈테니…. 그러니 내 걱정 말고 할망구나 맛있게 먹으라고 잉." 아버지의 말에 온 가족이 웃음을 터트립니다. 아버지는 실제로 술을 무척 마십니다. 팔십이 넘으셨는데도 하루 소주 한 병은 기본입니다. 저녁을 먹으러 오기 전에도 소주 한 컵을 마시고 왔는데도 또 소주 한 병입니다. 그래서 어머닌 술이라면 지긋지긋하다며 자식들에겐 절대 술을 못 마시게 하는데 둘째 형이 아버질 닮았는지 술을 무척 좋아합니다. "엄마, 게장 맛있어요?" "그래, 참 맛나다. 마을 회관에서 서지멀떡(서지멀댁)이 아들이 사준 게장을 먹었는데 맛있다고 몇 번이나 자랑하던지… 근디 참말로 요로코롬 맛있다 잉." "뭐라고 자랑했는데요?" "간장이 아무리 먹어도 짜지도 않고 그렇다며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며 자랑을 한 시간이나 하더라. 근디 정말 안 짜긴 안 짜다." "그래요. 엄마도 많이 드세요. 천천히 꼭꼭 씹구요." 어머니 말에 의하면 얼마 전에 동네분이 게장 먹은 걸 자랑했는데 어찌나 자랑을 했는지 마른 침만 꿀꺽꿀꺽 삼켰다고 한다. 게장과 게장 담근 간장이 맛있다며 자랑을 했지만 거기엔 은근히 아들 자랑이 묻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게장을 생전 처음 먹다보니 어머닌 그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나 봅니다. 그러면서 정말 '맛있다. 맛있다.' 하며 맛나게 드십니다. "이제 엄마도 그래요. 나도 아들 며느리가 사 준 게장 먹어봤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맛있게 드시는 아버지 어머니를 보니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짠해집니다. 내 자식에겐 맛있는 음식 사주면서도 늙으신 부모님에겐 맛있는 음식 한 번 제대로 사드리지 못한 죄송스러움도 함께 밀려옵니다. 그래도 이렇게 웃으시면서 맛있게 드시는 부모님이 옆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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