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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배우 변희봉

"'퇴물 배우'가 '괴물'을 만나서..."
[인터뷰] 배우 변희봉 그리고 <괴물>의 재발견
나영준(nsdream) 기자
▲ 영화 <괴물>에서의 열연으로 관객들의 찬사를 받고 있는 변희봉씨.
ⓒ 오마이뉴스 조경국
valign=top"’괴물’이 없는 상태에서 촬영하려다보니..." / 김정훈 PD

"사실 퇴물 배우 시절이 오래 전에 왔는데, 갑자기 봉준호 감독이 줄을 세워줘서…. 허허허, 이것이(괴물) 고비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두렵고 그렇습니다."

한국 영화의 모든 기록을 통째로 집어 삼키고 관객들의 찬사를 불러 모으고 있는 영화 <괴물>에는 두 사람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어린 딸 현서(고아성 분)를 위해 거리를 내달리고 괴물의 최후를 만들어 내는 강두(송강호 분), 그런 손녀와 아들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삶을 내어주는 희봉(변희봉 분)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가족영화, 반미영화…. 영화 <괴물>을 받아들이는 시각은 관객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하지만 이 사람에 대해서 토다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배우 변희봉(64). 이제 더 이상 그를 조연배우 중 한 사람, 혹은 등장인물 중 한 명이라고 가볍게 치부할 수 있을까.

지난 18일, 오랜 기다림 끝에 그를 만났다(<괴물>이 개봉하던 주부터 기자는 내내 변희봉씨와의 인터뷰를 고대해왔다). 이어지는 스케줄에 숨길 수 없는 피곤, 하지만 곧 삶과 영화에 대한 열정을 말하는 그의 두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괴물이 없는 상태에서 촬영하려니..."

- 일본에 다녀오는 등 일정이 바쁜 것으로 안다. 요즘 근황은 어떤지.
"영화 개봉 후 무대 인사를 다녔고, 9월 2일 일본 개봉을 앞두고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출연진들이 3박4일 동안 다녀왔다. 그쪽 반응도 좋다. 이미 칸이나 우리나라에서 보고 갔기 때문에 열기가 대단했던 것 같다. 현재는 장규성 감독의 <이장과 군수>에서 조그만 역할을 맡아 전북 임실에서 촬영 중이다."

- <괴물>은 7개월의 촬영 기간, 6개월의 후반 작업 등 오랜 시간이 걸린 작품이었다.
"우선 '괴물'이 없는 상태에서 촬영을 하려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또 밤과 비, 하수도 내부 등 전부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조명 하나를 설치하는 것도 힘들었고, 게다가 미끄러운 하수도 바닥은 닦지 않으면 걷기조차 힘들었다. 덕분에 긴 시간 함께한 배우들과 호흡은 잘 맞았던 것 같다."

-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외에도 손녀 역을 맡은 고아성도 <괴물>이 발굴한 배우였던 것 같다.
"오래 함께 하니 친손녀 같았다. 당돌하리만치 잘 해냈다. 괴물 꼬리에 끌려갈 때 와이어에 감겨 나갔는데, 상당한 각오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것을 척척 해내는 것을 보며 정말 예쁘고 고마웠다."

- 개봉 21일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평단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이렇게 단기간에 호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이라 예상했는지.
"처음엔 우려를 많이 했다. 할리우드 대자본은 상상도 못할 괴물을 만들어 내거나 배우를 영웅시 혹은 과학의 힘을 빌려왔다. 그래서 '괴물'이라고 하면 큰 영화를 상상하지 않는가. 그에 비하면 우리는 영세한 자본이라 걱정도 됐다. 그래도 극중 괴물이 50억원이라는 가장 많은 돈을 삼켰다(웃음). 그것이 잘 나왔기에 배우들이 덩달아 빛을 본 것 같다. 무엇보다 관객분들이 호응을 해주셔 정말 고맙고 감사하고…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다."

- <괴물>을 두고 한국형 블록버스터, 가족영화, 심지어 반미영화 등 여러 의견이 있는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괴물>은 어떤 영화인가?
"반미… 애초 대본을 놓고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내가 그랬다. 사실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인데, 어째서 그것이 반미냐고? 독극물을 흘려 보낸 것은 사실 아닌가. 그것을 'A상사, B상사'라고 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있었던 사실을 영화화 했기 때문에 반미라고 낙인찍는 것은 곤란하다. 사실 나는 가족영화라고 하고 싶다. 삶의 바닥에 있는 이들에게 닥치는 불행이 (관객에게) 자극이 되지 않았을까."

젊었을 때부터 노인 역할... 현실에서는 어떤 아버지일까

▲ <괴물>에서 변희봉은 무능한 아들 강두를 묵묵히 지켜주는 아버지 희봉으로 열연을 펼쳤다.
ⓒ 청어람
- 영화에서 죽음을 맞기 전 '난 괜찮으니 먼저 가라'는 식으로 손을 흔드는 장면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이들이 많다.
"참 여러 번 촬영을 했던 장면이다. 사실 나는 놀라는 식으로 좀 더 현실감을 주려했다. 그런데 봉 감독이 '마음에 드세요?'라며 다시 찍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에는 '아이고, 나도 몰라'하는 심정이었는데 바로 그 장면이 채택됐다(웃음). 그런 것을 화내지 않고 만들어가는 봉 감독의 능력에 나이 먹은 배우로서 존경심이 든다. 정말 고맙다."

- 봉준호 감독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늘 봉 감독에게 감사를 나타냈다.
"영화는 '감독' 예술이다. 돌아보면 감독에 의해 생각되고 만들어질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 그 장면도 '그래, 원대로 해주지'라고 생각했던 게 잘 맞았던 거다. 봉 감독에 대한 감사는 당연한 일이다. 처음 <프란다스의 개>를 하자고 했을 때는 정말 싫었다. 영화 그만두려고 했던 때였는데 그걸 끝까지 밀어붙였던 것도 그렇고 이후 함께 한 것에 대해서도 그저 고마울 뿐 내 입장에서 더 이상 말을 할 여지가 없다."

-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맡은 영화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던데, 평소 아버지로서는 어떤 편인가?
"잠깐씩은 나와도 끝까지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젊어서부터 노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평소 '아버지 역을 하면 잘 할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마음에 와 닿던 게 많았다. 평소 실생활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변희봉의 재발견? 단지 줄을 잘 섰을 뿐…

▲ "배우가 여러 생각을 해도 늘 한두 가지 부족하다. 그게 배우다. 그래서 좋은 감독이 배우를 변화 시키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 <괴물>에 대해 '변희봉의 재발견'이라는 이야기가 많다(웃음). 동의하는가?
"아이고, 아니다. 연기라는 건 백지장 차이다. 감독은 배우를 변화시킬 수 있어도 배우는 그렇지 못하다. 나는 감독이 '줄 한 번 서보시오'라고 했는데, 주위에서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고아성 등을 잘 세워주었을 뿐이다. 누가 해도 못할 사람은 없다. 나는 그저 주위 배우들 사이에 줄을 잘 섰을 뿐이다. 허허허."

- 젊은 관객을 위한 영화가 많아지다 보니 원로배우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은 아닌가.
"구시대와 현시대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나이든 사람이 필요한 부분도 분명 있다. <괴물>을 보기 위해 노인들도 영화관을 찾는다. 정말 바람직한 일이다. 젊은이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기보단 나이든 이들도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영화뿐 아니라 사회가 진일보할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원로배우들을 무시하지 않고 함께 품고 갔으면 한다."

- 본인의 연기를 돌아보면 아쉬울 때가 있나?
"물론이다. 아쉬운 게 너무 많다. 가령 <괴물>에서 라면에 물을 부어줄 때 조금 모자라지 않았나? 다시 끓였어야 했다(웃음). 보면 볼수록 그렇다. 배우가 여러 생각을 해도 늘 한두 가지 부족하다. 그게 배우다. 그래서 좋은 감독이 배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 변희봉씨가 늘 철저하게 준비해 젊은 감독들조차 혀를 내두른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그렇지만은 않다. 그런 분위기에 그냥 하는 이야기일 뿐이다(웃음)."

한국영화 살아남으려면 좋은 '작가' 키워야

-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좋은 작가를 키워 놓지 못한 게 아쉽다. 좋은 감독만으론 한계가 있다. 자신의 작품이기 때문에 상상력의 한계가 생긴다. 연결성에만 무게가 맞춰진다고나 할까. 그러나 작가는 그렇지 않다. 훌륭한 연출을 위해선 좋은 작가의 육성이 필요하다."

-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멋진 로맨스라든지(웃음).
"허허허. 뭐, 특별한 것 있겠나? 나이 먹은 역할이지. 주어지는 것에 열심히 해 관객에게 호응을 얻는 배우가 되는 것이 최선 아니겠나. 지금 다른 걸 하고 싶다고 해서 누가 시켜 주겠나(웃음). 좋은 배우로 남을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라는 것은 없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단시일 내에 이런 성과를 냈다는 것은 감독 이하 모든 스태프들이 축복 받을 일이지만 배우로선 무거운 짐을 진 느낌이다. 앞으로 어떤 변신을 하고 어떻게 해서 관객에게 다가갈지… 솔직히 두려움만 남는다.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기도 하고(웃음). 관객들에게 정말로 감사하고 고맙다. 그 말씀밖에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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