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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텃밭을 손보며 좋은 이웃을 만나 살갑게 사는 시골생활이 너무 좋다.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유행가 가사가 비로소 가슴에 와 닿는다. 궁둥이 붙이고 정들어 살면 고향 아닌가? 야콘이란 것도 있어? 내 친구 병섭은 이런 나를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놀리면서도 부러워한다. 친구는 서울 생활을 하면서 답답하면 가끔 집에 놀러온다. 때로는 목소리만 들려주고 가기도 하고, 연락도 없이 올 때도 있다. 갑작스레 전화가 왔다. "야, 오다보니 야콘 냉면집이 있대. 야콘 냉면이 뭐야?" "그거 아주 맛있는 냉면이지!" "그럼 안식구랑 같이 나와. 그거나 먹으러 가자. 우리도 같이 왔어." "뭔 소리, 집으로 오지 않고서."
친구는 늦은 봄엔 밴댕이며 병어를 찾고, 꽃게가 알이 벨 즈음이면 꽃게탕을 먹으러 온다. 숭어와 농어회에다 갯벌장어까지 맛있는 것은 두루 섭렵하고 다닌다. 이날도 맛난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바람도 쏘일 겸 강화까지 왔단다. 마침 오다가 생소한 음식점을 보고 전화부터 한 것이다. 내가 강화에 와 살면서 처음 먹어본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지금 먹으러 가는 야콘이 그 중 하나이고, 또 하나는 순무이다. 내가 살던 고향에서는 재배하지 않는 작물들이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야콘을 시범 재배하고 있는 온실부터 들른다.
"우리 클 때 이런 거 없었잖아?" "나도 강화 와서 처음 본 거야." "그런데 이걸로 어떻게 냉면을 만들지?" 처음 대한 것이라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은가 보다. 밖에서 기웃거리는 우리를 보고 주인이 밖으로 나왔다. "야콘 분말과 소맥분을 야콘 생즙으로 반죽해 면발을 뽑아내죠. 그러니까 물을 일체 사용하지 않지요. 잎으론 색깔을 냅니다. 그래 면발이 쑥색이구요." 여러 이야기할 것 없이 맛을 봐야 알 것 아니냐는 내 이야기에 우린 자리를 잡았다. 내가 메뉴판을 들여다보자 친구가 낚아채며 재빨리 주문한다. "술 한 잔 해야지? 안주는 도가니 수육으로 하고, 여자들을 위해 야콘 빈대떡! 비빔냉면 둘에 물냉면 둘. 여기 순무김치도 나오죠!" 성질도 급하다며 여자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만날 신세만 졌으니 오늘은 자기가 계산하겠다며 아무 소리 말라고 한다. 순무김치와 야콘 냉면, 색다른 맛이네!
기대한 야콘 냉면이 유기그릇에 담겨 상에 올라왔다. 음식도 담는 그릇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유기그릇에 담겨져서 그런지 더 맛깔스러워 보인다. 냉면에는 많은 반찬이 필요 없다. 강화에서 나오는 순무김치가 전부이다. 순무김치를 보자 친구가 아예 한 접시 더 줄 수 없느냐고 한다. "너도 순무김치 맛을 알지?" "그럼. 순무는 강화에서 먹어야 제 맛이지!"
아내를 보며 친구가 너스레를 떤다. "올해도 순무 심었죠? 순무김치 한 통 부탁해도 되지요? 작년에 담가 주신 거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강화 순무로 아내가 담가 준 순무김치가 최고라는 공치사에 아내는 싫지 않은 듯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다. 친구와 나는 비빔냉면, 아내와 친구 부인은 물냉면을 먹었다. 자칭 미식가란 친구로부터 한 젓가락을 집어 먹으며 음식 평을 한다. "쫄깃쫄깃한 게 감칠맛이 나고 담백하구먼." "냉면 맛은 육수로 결정하는 데 아주 시원하네요. 면발도 탱글탱글하구." "순무김치와 냉면이 아주 잘 어울려요."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니 많이 먹으라는 권유에 친구는 사리를 더 시킨다. 입술에 묻은 고추장을 닦으며 한마디 덧붙인다. "야, 너는 좋겠다. 이렇게 공기 좋은 강화에서 맛난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네가 발붙이고 고향처럼 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사모님, 순무김치 맛있게 담가놓고 전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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