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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에 휘말려버린 대하드라마 <주몽>

동북공정에 휘말려버린 대하드라마 <주몽>
만주와 한반도의 역사적 일체성 찾는 노력해야
김종성(qqqkim2000) 기자
▲ 문화방송 대하드라마 <주몽>
ⓒ MBC
문화방송(MBC) 대하드라마 <주몽>이 그 절정에 다가서고 있다. 조선(고조선) 유민들을 이끌고 부여를 탈출하여 휘발강을 건넌 주몽이 삼족오 깃발을 꽂고 신 국가 건설을 선포했다. 마치 애굽왕 바로(파로오)의 추격을 피해 홍해를 건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

이처럼 드라마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우리는 이제 중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주몽'이란 이 드라마가 과연 본래의 제작 취지에 부합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말이다. 이 드라마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점은 한국과 중국 양쪽에서 모두 다 아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과연 동북공정 논리를 극복하고 있을까? 과연 이 드라마는 동북공정에 참여하는 중국 학자들에게 심리적 위협을 주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대하드라마 <주몽>은 이미 동북공정 논리에 휘말려 버리고 말았다. 다시 말해, 지금 같은 방식의 드라마 전개로는 동북공정 논리를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역이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앞으로 제작될 또 다른 역사 드라마들이 동일한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충심에서, <주몽>의 실패 원인을 직소(直訴)하기로 한다.

동북공정...만주와 중원의 일체 강조, 만주와 한반도 일체성 부정

동북공정이 추구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중원과 만주의 역사적 일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원과 만주가 본래부터 하나의 역사 공동체였음을 부각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만주와 한반도의 역사적 일체성을 부정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발해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고구려·발해가 웅거했던 만주 땅이 중원 땅과 일체였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고구려·발해의 화려한 역사가 탐나서가 아니라, 만주 땅에 살고 있는 현재의 만주족을 한족 중심으로 통합하는 것이 진정한 목적인 것이다.

반면, 한국측에서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것은 만주와 한반도가 하나의 역사공동체임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대항을 통해 한국이 얻어 내야 하는 것은, 만주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전체 한민족의 심리적 일체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다.

동북공정을 둘러싼 한·중 대립은 이처럼 중원과 한반도의 중간에 있는 만주를 서로 자기 역사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싸움이다. 그러므로 한국측 입장에서는 고구려·발해가 우리 조상임을 입증하는 것 못지않게 만주 지역이 한반도와 일체를 이루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다.

만주와 한반도가 일체성을 이루고 있었음을 주장하려면, 두 지역 간에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했으며 두 지역 인민들이 상호 일체감을 느끼고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동북공정에 대항할 수 있는 요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원과 부여는 일일 생활권?...<주몽>, 중국측 논리에 부합

그럼, 드라마 <주몽>은 과연 이러한 제작 취지에 부합하고 있을까? <주몽>은 과연 만주-한반도의 일체성을 규명하는 데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을까?

<주몽>의 제작자들은 제작비가 적어서 전투 신(scene)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해명하고, 일부 시청자들은 <주몽>의 일부 장면들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이 드라마가 만주-한반도의 일체성을 얼마나 잘 규명하고 있는가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드라마는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본래의 제작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그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만주-중원의 일체성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국측의 논리를 보강해 주고 있는 셈이다.

대소 왕자가 호위총관인 나루에게 심부름을 시키면, 몇 초 만에 나루는 현토성의 양정 태수 앞에 등장한다. 그리고 신녀 여미을은 부여와 계루를 이웃집 오가듯이 왕래한다. 또한 이 드라마에서는 중원에 있는 한나라 조정과 만주에 있는 현토성 그리고 부여 조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 같은 단적인 몇 가지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주몽'에서 드러나는 역사공동체의 생활 범위는 만주와 중원뿐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는 만주와 중원이 상당히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두 지역을 왕래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 사실이고 드라마에서는 그 시간이 불과 몇 초 정도로 짧게 처리되고 있다는 것을 시청자들이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의 인식 속에는 만주와 중원이 마치 '일일생활권'처럼 비쳐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는 만주와 한반도의 역사적 일체성은 거의 규명되지 않고 있다. 부여나 고조선 유민들이 한반도와 연계되어 있었다거나 두 지역 간에 문화적 공통성이 존재했다거나 하는 점 등이 전혀 규명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없는 사실을 억지로 만들어 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두 지역 간의 역사적 일체성을 규명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러한 노력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주몽> 제작팀, 만주와 한반도의 역사적 일체성 찾는 노력해야

만주와 한반도의 역사적 연계성을 규명해야만 동북공정에 대항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북공정 대항의 기치를 내건 드라마가 만주와 한반도의 역사적 일치성을 규명하기는커녕 도리어 만주와 중원의 연계성을 보여 주고 있으니, 이 드라마는 이미 실패한 드라마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없는 사실을 억지로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동북공정에 맞서는 드라마를 제작하려고 했다면, 만주-한반도의 역사적 연계성을 입증할 만한 자료들을 먼저 발굴했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그런 자료를 발굴하지 못했다면, 애초부터 드라마를 제작하지 않는 게 방송인의 양심이 아니겠는가?

이 같은 <주몽>의 실패는 지금 방영되고 있는 혹은 향후 방영될 고대사 드라마의 제작과 관련하여 일정한 시사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주몽이나 대조영의 활약상을 웅장하게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동북공정에 대항할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만주에 웅거한 고구려·발해 등이 중원과 역사적 일체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아니면 한반도와 역사적 일체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를 규명하고, 그렇게 규명해 낸 결과를 시청자들에게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 드라마 부문이 할 수 있는 바람직한 역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