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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젓

노란 배춧잎에 올려진 멸치젓갈
[맛객의 맛있는 이야기] 송송 썬 매운 고추 골라먹었던 멸치젓
김용철(ghsqnfok) 기자
▲ 밥 반찬으로 먹는 멸치젓에는 매운 고추를 썰어서 넣는다.
ⓒ 맛객
누구나 기억을 더듬게 하는 음식 몇 가지 정돈 있을 거다. 내 어릴 적, 상에 자주 올라 기억나는 반찬들이 몇 가지 있다. 김치는 당연하고 파래무침, 상추무침, 쑥갓 데쳐서 무친 나물, 고등어자반 등. 그러고 보니 제일 무서웠던 선생님이 오래 기억에 남듯 음식도 그렇게도 먹기 싫었던 음식이 오래 생각난다.

특히 쑥갓나물은 정말 싫었다. 독특한 향미에 살짝 데쳐 마늘 파 소금 참기름 정도로만 무쳐낸 초간편 음식이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음식이 또 있다. 멸치젓, 약간 갈색빛 도는 매운 고추 송송 썰어 넣고 양념과 함께 무친 적갈색 멸치젓은 어린 나이에도 좋아했던 반찬이었다.

멸치젓에 들어간 매콤한 고추 맛이 왜 그리도 좋았는지. 썬 고추를 하나만 먹어도 입맛을 확 살려주었다. 고추가 안 보이면 또 다시 썰어 넣고 먹었다. 마당에 오동잎 가득 쌓이는 계절이 오면 노란 배추 속으로 쌈을 싸서 먹었다.

▲ 배춧잎 멸치젓 쌈이 맛있는 계절이다.
ⓒ 맛객
배추 위에 식은 밥 올리고 멸치젓갈과 함께 쌈 싸서 입이 찢어져라 밀어 넣으면 살살 녹았다. 배추에서는 단물이 줄줄 나오고 구수한 멸치젓갈과 매콤한 고추 맛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쌈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멸치젓은 남쪽지방에서 주로 먹지만 경상도와 전라도 멸치젓은 약간 다르다. 경상도 지역에서 잡히는 멸치는 좀 더 클 뿐 아니라 형체가 온전할 정도로만 삭혀서 먹는다.

반대로 전라도 멸치젓은 숙성을 더 오래 해서 멸치 형체가 많이 사라지고 쿰쿰한 냄새도 더 진하다. 이 멸치젓이 김치에 들어가면 김치가 약간 검붉게 되지만 전라도 특유의 김치 맛을 내는 데 빠져서는 안 되는 양념이기도 하다.

▲ 멸치젓
ⓒ 맛객
▲ 배춧잎에 쌈 싸 먹는 멸치젓은 별미
ⓒ 맛객
몇 해 전인가 한 시인이 잡지에 신부감을 구한다는 광고를 냈다. 신부 감의 조건으로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조용필 노래를 좋아해야 하고 멸치젓을 좋아해야 한다는 거였다.

조용필 노래를 좋아해야 하는 이유는 동년배로서 문화적 감수성이 같기 때문이고 멸치젓을 좋아한다면 음식솜씨가 좋을 거란 생각에서 그랬다고 한다. 멸치젓이 전라도 음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연어처럼 회귀본능이 입맛에는 있는 걸까? 아이는 컸고 어른이 되었어도 입맛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기는커녕 살면 살수록 어린시절 먹었던 음식이 더욱 그리워만진다. 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멸치젓에 쌈 싸먹던 그 맛이 생각난다.

멸치젓에 송송 썬 매운 고추와 파 생강 마늘 다져놓고 고춧가루 듬뿍 통깨도 넉넉하게 넣고 쓱싹 쓱싹 비비면 쌈용 멸치젓이 된다. 뽀득뽀득한 배추 준비하고 식은 밥 큰 대접에 담아서 여럿이 어울려 먹는다면 꿀맛이 따로 없다. 기억을 더듬게 하는 음식, 나에겐 멸치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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