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순무김치는 잘 숙성하여 먹으면 겨자향의 인삼맛이 난다. | | ⓒ 전갑남 | | 약간 몸살 기운이 있다. 요즘 자질구레한 일이 많아 피곤이 겹쳤던 모양이다. 입맛이 깔깔하다. 뭐 맛난 것이 없을까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내도 밥을 뭐하고 먹을까 궁리를 한다. 지난 일요일(29일) 담근 순무김치가 생각났다. 아내가 있는 솜씨 없는 솜씨를 발휘한 순무김치다.
"여보, 순무김치 좀 꺼내 봐?" "벌써요?"
"이제 맛이 들지 않았을까?" "일주일은 지나야 제 맛이 날 텐데…."
아직 숙성이 덜된 것을 맛보려 한다며 서두르는 데는 뭐가 있다 한다. 순무김치는 생김치로는 맛이 별로다. 한 사흘 익힌 후, 김치냉장고에서 며칠 숙성시켜 먹어야 제 맛이 난다.
| | ▲ 우리 텃밭에 심은 순무이다. | | ⓒ 전갑남 | | 우리는 봄가을로 순무를 심어먹는다. 봄에 먹는 순무김치는 새큼한 맛이 일품이다. 겨우내 먹었던 묵은 김치 맛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 또 가을 순무는 8월 하순경에 파종하면 지금이 제철이다. 이 때 순무김치를 담가먹으면 가장 맛있다.
강화특산물인 순무
순무 재배는 크게 까다롭지가 않다. 싹이 트고 어느 정도 자라면 한두 차례 솎아준다. 밑거름을 든든하게 하고, 물주기를 잘하면 큰 병해충 없이 자란다. 솎은 어린잎으로는 열무김치를 담가 먹는데,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새롭다.
순무는 강화에서 재배한 것으로 김치를 담갔을 때 제 맛이 난다고 한다. 다른 데서 재배한 것은 순무 특유의 맛이 덜하다는 것이다. 강화도는 섬지방의 따뜻한 기온, 서늘한 바닷바람, 거기다 적당한 염분 때문에 순무 재배지로 적합하기 때문이란다.
| | ▲ 순무는 보라색을 띠며 팽이모양으로 둥글다. | | ⓒ 전갑남 | | 우리는 10여 년 전 강화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순무를 몰랐다. 그간 순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처음 순무 맛을 보았을 때는 별로였다. 예전 어렸을 때 먹었던 기억이 있는 배추꼬리 맛 같은 게 입맛에 맞지 않았다.
아마 배추꼬리를 삶아 먹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클 때 만해도 배추꼬리를 삶아 먹었다. 식량이 귀한 시절, 맛이 있어서라기보다 입이 궁금하면 별식으로 삶아 먹은 것이다.
배추꼬리 맛이 나는 순무! 강화에서는 음식점마다 밑반찬으로 순무김치가 나온다. 차츰 겨자향의 독특한 맛에 길들여지다 보니 순무 맛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배추꼬리 맛이 새로운 맛으로 혀끝을 건드리고 있었다.
순무김치는 감칠맛 나게 담가야
지난 일요일이었다. 우리는 텃밭에 심은 순무를 열댓 개 남짓 뽑았다. 김장 전에 미리 담가 순무김치를 먹어보고 싶어서다.
뽑아놓은 순무가 아주 실하다. 가뭄에도 물주기를 게을리하지 않은지라 순무가 예쁘게 잘 자랐다.
| | ▲ 무와 순무는 생김새가 다르다. | | ⓒ 전갑남 | | 순무는 생김새부터가 무와 다르다. 무는 밑동이 하얗고 윗부분은 녹색이다. 거기에 비해 순무는 팽이모양으로 둥글고 보라색을 띤다. 흰색을 띠는 것도 있지만 보라색이 더 맛있다.
아내가 순무김치를 처음 담글 때는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했다. 자기 딴에는 맛있게 담는다고 하는데 좀처럼 맛이 나지 않았다. 귀동냥을 하고, 나름대로 노하우를 곁들여 이제는 제법 맛깔스럽게 순무를 담근다.
아내와 나는 순무를 손질했다. 칼로 순무를 다듬고, 수세미로 깨끗이 닦았다. 순무 잎도 연한 것으로 따로 골라 소금에 절였다.
아내가 능숙한 솜씨로 순무를 나박나박 썰었다. 보통 섞박지로 담가 먹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순무김치 양념은 여느 김치 담그는 것과 같다. 찹쌀 풀을 쑤고, 새우젓을 넣는 것도 대동소이하다.
| | ▲ 순무는 나박나박 썰어 섞박지로 김치를 담근다. | | ⓒ 전갑남 | |
| | ▲ 순무 절이지 않고 담근다. 배와 양파를 갈아넣고 국물이 자작하게 해야 맛있다. | | ⓒ 전갑남 | | 순무김치는 일반 김치 담그는 법과 다른 점이 있다. 순무를 썰어 절이지 않는다. 일반 무에 비해 순무는 수분이 적다. 그래서 썬 즉시 양념에 버무려야 즙과 향이 살아 순무 고유의 맛을 낼 수 있다.
찹쌀 풀을 쑨 것과 갖은 양념을 하여 멸치액젓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다. 또 파, 마늘, 고춧가루를 알맞게 넣어 비비면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사항이 하나 있다.
"여보, 배하고 양파는 안 넣어?" "이제 당신 모르는 것이 없어요."
순무는 특유의 매운맛이 있지만 이를 순하게 하고, 감칠맛을 내려면 감미료가 들어가야 한다. 아내는 처음엔 설탕을 넣었다. 그러다 보니 국물이 시원하고 깔끔해야 하는데 진득진득하여 맛이 좋지 않았다. 또 당원을 넣어보기도 했는데 국물 맛은 개운하지만 어딘가 께름칙하였다.
생각해낸 것이 배와 양파를 갈아서 체로 받쳐 달짝지근한 국물을 만들어 보았다. 이렇게 담은 순무김치는 숙성이 되면 시원하고 감칠맛이 났다. 순무 특유의 맛과 함께 개운 맛이 그만이었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순무
| | ▲ 우리가 담근 순무김치이다. | | ⓒ 전갑남 | | 아내가 김치통 뚜껑을 열었다. 맛을 보는 아내 표정이 밝다.
"아직 덜 숙성이 되었는데 순무향이 아주 좋아요."
내게도 한 입을 건네준다.
"간은 딱 맞는데 매운맛이 좀 남아있지? 며칠 지나면 아주 맛있을 것 같아. 당신 순무김치 담그는 데는 선수가 다 되었어."
내 너스레에 아내는 기분이 좋은 듯 한 보시기를 꺼내 놓는다. 순무김치 특유의 빨간 국물이 우러났다.
"당신 같은 사람이 순무를 많이 먹어야 해!" "그건 또 뭔 소리야?"
"술을 자주 먹으니까 그렇죠!" "순무가 간에 좋다는 소리는 어서 들은 모양이네."
순무는 오장(五臟)을 이롭게 하고, 몸을 가볍게 하며 기(氣)를 살려주는 채소라고 알려졌다.
따뜻한 밥에 국물을 끼얹어 먹으니 금방 밥 한 그릇이 뚝딱이다. 깔깔한 입맛이 싹 달아났다. 오늘따라 순무김치의 감칠맛이 혀끝에 오래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