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민물새우로 만든 토하젓 | | ⓒ 맛객 | | 어린시절을 보냈던 탐진강(전남 장흥) 상류지역은 물이 맑아 은어가 참 많았다. 투망질 한번에 반짝이는 은어가 여러 마리 걸려들기도 했다. 은어는 1급수, 그것도 흐르는 강에서만 살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민물 회다.
그때는 어려서 그 맛을 몰라 잘 먹지는 않았지만 어른들은 초고추장에 찍어서 잘도 드셨다. 수박향이 난다는 은어회,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횟감이 되어버렸으니 참 아쉽다.
그 시절의 강은 물고기의 천국과 같았다. 제법 굵직한 모래무지가 참 흔해 빠졌고, 꺽지, 빠가사리(동자개), 메기, 뱀장어 등 63빌딩에 있는 수족관 속의 물고기만큼 다양했다. 여름철에 미역질을 하면 수십 수백 마리 피라미가 뒤를 따르면서 피부를 쪼아대기도 했다. 그때는 그런 게 너무 흔해서 당연시되었지만 사라져가는 광경이 될 줄은 몰랐다.
산자락 따라 흐르던 탐진강, 그 사이로 조그만 물길이 있었는데 수중식물로 가려져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곳을 동그란 '채'로 한번 훑으면 민물 새우가 채 안으로 잔뜩 들어와 팔딱팔딱 생동감 있는 몸부림을 보여줬다.
그 당시 아주머니들이 새우 잡는 모습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조그만 새우가 눈에 들어올 리는 없다. 대신 집게발에 물리면 따끔거릴 정도로 큰 지게미(징검사리)에 더 집착했다. 고둥을 잡으려 돌을 뒤집으면 시커먼 지게미가 꼼지락거린다.
이것들을 주전자에 담아서 고둥과 함께 된장국을 끓이면 빨갛게 익어갔다. 지금은 새우가 살던 물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게미가 살던 탐진강은 오염되어 물 속의 돌멩이가 초를 칠한 나무 바닥처럼 미끌미끌하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알았다. 큰 지게미보다 조그만 민물 새우가 훨씬 값진 음식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세계적으로 유일한 전남 지방의 전통 발효식품인 토하젓이다.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다고 하니 적어도 맛과 품질만큼은 오래 전부터 인정받은 셈이다.
요즘은 환경오염으로 인해 민물 새우 서식지가 많이 사라져 더욱 귀해졌지만 남도의 재래시장에 가면 토하젓을 만날 수가 있다. 그때처럼 자연 민물 새우인지 아니면 양식 민물 새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토하젓을 만나면 그 어떤 젓갈보다 반갑다.
동신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박원기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토하젓의 숙성 중 생성된 '키틴올리고당'은 항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단백질 및 지방분해효소인 '프로타아제' 및 '리파아제'를 다량 함유, 육류의 소화 작용을 돕는 효과도 있다. 또 성인병 예방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음식이 첫째고 약이 두 번째라는 말이 떠오른다.
| | ▲ 토하젓을 넣고 두부찌개를 끓였다 | | ⓒ 맛객 | | 작년 이맘때쯤 시흥 전철역 입구에서 민물 새우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바구니에는 물도 없지만 새우가 산 채로 있다. 어떤 아주머니는 신기한지 "이거 어떻게 요리해요?"라고 묻기도 한다. 나는 토하젓을 만들어 볼 요량으로 한 바구니에 5000원을 주고 샀다.
소금물에 빡빡 문질러 씻은 다음 소금에 절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둡던 새우가 검붉게 변해간다. 때때로 골고루 섞어주기도 했다. 한 마리 꺼내서 씹어보니 고소한 맛과 향기가 다른 젓갈과 구분된다.
| | ▲ 토하젓은 반찬으로 먹기보다 뜨거운 밥에 비벼서 먹으면 참맛을 느낄 수가 있다 | | ⓒ 맛객 | |
| | ▲ 밥에 비빌 때 참기름을 첨가하면 더욱 맛있어진다 | | ⓒ 맛객 | |
| | ▲ 구수하고 맛있고 꿀맛이다 | | ⓒ 맛객 | | 잘 숙성된 토하젓에 찰밥과 갖은 양념을 혼합해서 2~3일 후에 꺼내 먹으면 된다. 토하젓은 두부조치나 호박볶음 등 음식 조리 시 반 숟가락 정도 첨가하면 음식의 맛과 풍미를 살리지만, 뜨거운 밥에 비벼먹는 맛도 참 좋다.
토하젓으로 비빈 밥을 한 숟갈 뜨면 '젓갈이 이리도 구수할까?' 생각이 절로 든다. 어릴 적 채에 잔뜩 잡혔던 민물 새우는 더는 볼 수 없지만 토하젓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