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추위를 단단히 할 모양이다. 푸근했던 요 며칠 전에 비해 기온차가 10도 이상 벌어졌다. 날은 흐리고 간간히 비가 내리면서 바람까지 분다. 엊그제만 해도 발목양말을 신었던 큰애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팬티스타킹을 찾느라 아침부터 법석을 떨었다. 서랍장을 들썩이며 정리한 가을옷도 이젠 두툼한 겨울옷으로 바꾸고, 깊숙이 넣어 둔 목도리와 장갑도 찾아놔야겠다.
때맞춰 베란다의 늙은 호박이 눈에 들어온다. 텃밭에 심어 거둔 거라며 이웃이 갖다 준 호박, 참외보다 조금 더 큰 호박이 귀여워서 그동안 눈으로만 보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 구수하고 따끈한 호박죽을 만들어 놨다가 집에 돌아오는 식구들에게 '짠'하고 내놓는다면 밖에서 떨었던 몸이 스르르 녹지 않을까 싶다.
| | ▲ 눈으로만 보고 즐겼던 귀여운(?) 호박과 길쭉이 수세미. 이젠 입으로 즐겨볼까? | | ⓒ 한미숙 | |
| | ▲ 벗기고 보니 커다란 참외가 도마 위에 누워 있는 것 같다 | | ⓒ 한미숙 | | 수세미 껍데기를 벗기고 그곳에 스민 수분으로 얼굴 마사지를 했다. 두어 번 거듭 문질렀다. 시간이 지나자 얼굴이 조여 왔다. 자연 화장품, 그야말로 수세미 팩이었다. 속에 든 까만 씨를 털어내고 잘 씻어서 빨래집게로 꽂아 말리는 중이다. 호박죽 끓이면서 밍근한 불에 계속 젖다가 잠깐씩, 수세미도 '장만'했다.
| | ▲ 싱크대에 수세미가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 | ⓒ 한미숙 | |
| | ▲ 요렇게 작은 호박에서 여문 작은 호박씨. 반으로 갈라놓은 호박이 꼭 나막신 모양이네! | | ⓒ 한미숙 | |
| | ▲ 호박을 다 썰고 보니 양이 적고 왠지 허전하다. 날 것으로 먹어도 달큼한 밤호박을 하나 더 넣기로 했다. | | ⓒ 한미숙 | |
| | ▲ 잘라놓은 밤호박이 주황빛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듯 | | ⓒ 한미숙 | |
| | ▲ 불린 찹쌀과 멥쌀 섞은 것, 그리고 붉은 강낭콩. | | ⓒ 한미숙 | |
| | ▲ 그동안 쓸 일이 별로 없었던 큰 냄비에 썰어놓은 호박과 불린 쌀, 강낭콩을 집어넣고 적당히 물을 채웠다. | | ⓒ 한미숙 | |
| | ▲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하고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다 익을 때까지 천천히 저어주면서, 이 호박죽을 맛나게 먹을 얼굴들을 떠올린다. | | ⓒ 한미숙 | |
| | ▲ 뜸을 푹 들인 구수하고 따끈한 호박죽, 드디어 완성! | | ⓒ 한미숙 | | 파근파근한 강낭콩과 으깨지 않은 밤호박이 달큼하게 씹히는 맛, 찰진 찹쌀과 어우러진 호박죽을 만들어 놓으니 뿌듯하다. 한 이틀은 식구들 별식이 될 호박죽. 잘 익은 배추김치나 동치미 한 그릇 옆에 있으면 이틀이나 가려나? 호박죽이 있으니 갑자기 손님이 온다 해도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