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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물회

시원한 감칠맛, 자리물회를 찾아서
[맛객의 맛있는 이야기] 아이스크림보다 시원하고, 청량음료보다 짜릿하다
김용철(ghsqnfok) 기자
▲ 자리물회, 지금은 없어진 신당동 제주도 향토음식점에서 나온 음식이다
ⓒ 맛객

‘물회’라는 음식, 글쓴이는 경험이 짧다. 고작 5년 남짓? 처음으로 맛본 게 서른을 넘기고도 여러 해 지난 다음이다. 신당동 소방서 건너편에 있는 제주 향토음식 전문점, 이곳에서 제주도가 고향인 분과 만나 참소라 회와 함께 먹었던 자리물회.

그걸 먹기 전까진 회를 양념 물에 말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이해해 주길 바란다. 태생이 바닷가 출신이 아닌 걸 어쩌겠는가. 시원했다. 물회를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순간 아이스크림보다 시원했고, 더운 날 청량음료보다 짜릿했다.

첫맛은 시원했고 두 번째 맛은 시큼 달큼했고, 세 번째 맛은 매콤했고 네 번째 맛은 감칠맛 났다. 물회는 너무나도 쉽게 나를 매료시켰고 나는 저항 한번 못해보고 유혹에 넘어가야 했다. 후에 그 맛이 그리워 다시 찾았지만 웬일인지 그 자리엔 다른 음식점이 들어서 있어 참 아쉬워했던 기억.

물회는 그렇게 기억에서 잊혀지다가 제주도 여행 중 만난 한 식당에서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상호(유리네)만 봐서는 물회와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은 이 집은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게 있다.

▲ 물회로 유명한 제주도의 한 식당에는 유명인사의 친필 사인으로 도배되다시피 한다
ⓒ 맛객

사방팔방 천장까지 온 벽면을 도배하다시피 한 유명인사의 친필사인, 이 집을 방문했다는 증거 표시고 주인 입장에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리라. 하지만 맛을 찾는 나그네 입장에선 그리 티 나게 꾸미는 게 마땅찮아 보이지만, 그 만큼 입소문은 많이 났다는 표시일 것이다.

▲ 제주의 맛 중에 하나인 자리물회, 제주도 한 식당에서 나왔다.
ⓒ 맛객

찾아간 시간은 오전 11시경, 전날 제주도 토속음식에 과음 좀 한 터라 속풀이가 한 시가 급했다. 둥둥 뜬 양념과 재료로 인해 속이 보이지 않는 물회을 한 숟가락 뜬 순간... 아 이럴 때 과장 좀 해 보자.

제주도가 통째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신당동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제주의 바람과 바다, 하늘까지 맛보는 기분이다. 이처럼 현장감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렇게 그 맛을 더듬으며 다시 2년을 도시에서 살았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상인들은 동대문 운동장으로 이주시켰고(사실은 임시 수용이나 다름없다), 운동장 입구에는 조화롭지 못한 풍물시장이란 간판이 달렸다.

복원 후 청계천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원래부터 그 곳이 삶의 터전이었던 원주민은 삭막하기 그지없는 이곳에서 삶의 의욕까지 잃어가야 했다. 청계천은 화려해졌지만 청계천 사람들이었던 그들은 화려해지지 않은 걸 보면 청계천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곳 사람들과 우리들의 어두운 자화상일수밖에 없다.

동대문 풍물시장, 대로변 하나 사이에 둔 것뿐인데도 어쩌면 이리도 길 건너와 차이가 날까?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해져 1년 내내 연말의 화려한 불빛을 닮은 밀리오레와 두산타워 일대, 밤이면 운동장 외벽 여기 저기 지린내가 날 정도로 어둡기만한 풍물시장은 이 시대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먹을거리 장터는 자리 잡고 있어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의 위안처가 되어주기도 한다. 운동장 입구에서 왼쪽으로 있는 먹을거리 장터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목포집이 나온다.

▲ 동대문운동장 내 풍물시장 먹거리 장터, 목포집에서 나온 자리물회다
ⓒ 맛객

어울리지 않게 제주에서 올라온 옥돔구이도 안주로 내놓고, 홍삼도 있다. 기막히게 좋은 맛은 아니지만 자리물회도 있다. 맛객이 이 집을 가끔 드나드는 이유도 자리물회를 맛보기 위해서다. 가격대도 높지 않아 1~2만원이면 웬만한 제주음식 한두 가지는 주문할 수 있을 정도다.

이곳에서 머리 길고 수염 난 남자가, 자리 물회 한 그릇 앞에 두고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있다면, 맛객이려니 생각하고 기꺼이 소주 한 잔 건네보길 바란다. 주인아주머니와 농담 따먹기 하는데 정신 팔려서 거절할지도 모르겠지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