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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죽으로 몸살 기운을 털어내다

뜨끈한 백합죽으로 겨울 입맛을 되찾다
아내가 끓여준 백합죽으로 몸살 기운을 털어내다
전갑남(jun5417) 기자
계절은 이제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었다. 개울에 얼음이 꽁꽁 얼었다. 며칠 계속된 칼바람 날씨에도 나는 자전거통근을 계속했다. 허허벌판에 부는 바람이 매섭다. 오늘 퇴근도 어김없이 자전거를 탔다. 그래서 그런가? 몸살 기운이 좀 있다.

"여보, 보일러 온도 좀 올려!"
"어디가 안 좋아요?"
"몸이 좀 으슬으슬하네."
"추운 날씨에 자전거 타더니만 기어이 일을 내셨구먼."

내 얼굴을 요모조모 살피더니 아내가 부랴부랴 약국으로 내달린다. 땀 흘려 푹 쉬고 나면 나을 걸 웬 호들갑인가 싶다. 그래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금방 쌍화탕에 감기약을 지어왔다.

백합죽으로 입맛을 되찾아 볼까?

▲ 아내가 정성을 다해 끓인 백합죽이다.
ⓒ 전갑남
몸이 노곤하니 만사가 귀찮다. 뜨뜻한 구들방에 드러눕고 싶다. 입맛이 깔깔하다. 약을 먹고 TV 앞에 잠옷까지 갈아입고 드러누웠다.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당신, 괜찮겠어요. 주사라도 한 대 맞아야 하는 거 아냐?"
"걱정하지 마. 약 먹었으니 푹 쉬면 돼."
"저녁은요?"
"맛난 거나 해봐."

아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저녁 지을 궁리를 한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내게 와서 묻는다.

"백합으로 뜨끈하게 죽을 쒀볼까요?"
"백합죽? 그거 좋은 생각이네!"

뜨끈한 백합죽을 끓이겠다는 아내의 제의가 무척이나 반갑다. 시원한 국물과 쫄깃쫄깃한 조갯살 맛이 일품인 백합을 넣은 죽이라? 요 며칠 백합으로 탕만 끓여 먹다가 색다르게 죽을 끓이겠다니 졸지에 없는 입맛이 살아날 것 같다.

마침 집에는 백합이 있었다. 며칠 전 잘 아는 친구가 집에 다녀가면서 백합을 푸짐하게 사왔다.

백합을 이용한 요리 중 가장 손쉬운 것은 탕으로 끓이는 것이다. 파 마늘만 넣고 물을 부어 끓이면 간단하다. 술 먹은 다음날 뽀얗게 우러나온 시원한 국물은 숙취해소에 그만이다.

싱싱한 백합은 회로 먹기도 한다. 또 죽, 찜, 구이 등 뭣을 해먹어도 맛이 좋다. 전복에 버금가는 고급 패류로 백합은 조개 중에서 으뜸으로 친다.

▲ 백합죽의 주재료인 백합이다.
ⓒ 전갑남
백합은 잘 씻어 껍데기를 관찰해 보면 모양이 제각각이다. 껍데기 표면은 암갈색에서 회백갈색까지 다양하다. 견고한데다 매끈하고 광택이 난다.

백합을 부르는 이름 또한 여러 개이다. 크기가 크다 하여 '대합', 조개 중의 으뜸이라서 '상합', 입을 다물고 오래 산다고 하여 '생합'이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지방에 따라서는 피합, 참조개라고도 한다.

아내가 색다른 음식을 할 때는 공연히 참견하고 싶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내가 양파, 당근을 건네주며 손질을 해달라 한다.

백합은 천생연분의 상징?

김치냉장고에서 꺼낸 백합이 아주 싱싱하다. 백합은 다른 조개와 달리 입을 잘 벌리지 않는다. 그래서 잘만 보관하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아내가 해감을 뺀 조개를 삶는다. 물이 끓어오르자 입이 벌어졌다. 우러나온 국물이 사골국물처럼 뽀얗다. 아내가 조갯살과 껍데기를 나무젓가락으로 분리한다. 입을 벌린 조개껍데기 안쪽 면이 하얗다.

"여보, 껍데기가 예쁘지? 껍질이 꼭 맞게 맞물려 있고."
"정말 그러네."
"그래서 백합은 천생연분을 상징한다잖아."
"우리처럼?"

내가 피식 웃었다. 조갯살을 다지는 아내의 도마질 소리가 경쾌하다. 조갯살을 다진 후 양파와 당근을 다지면서는 콧노래까지 부른다. 아내의 마음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어느새 재료 준비가 끝났다.

▲ 백합죽의 재료. 백합을 삶아 다지고, 당근과 양파도 다져 준비한다.
ⓒ 전갑남
이제 죽을 끓일 차례다. 아내는 냄비에 불린 쌀을 안치고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려 달달 볶는다. 다진 마늘을 넣어 볶다가 백합을 삶아낸 국물을 넉넉히 붓는다. 한소끔 끓어오르자 당근과 양파를 넣는다.

3분여 동안 나무주걱으로 잘 저어주면 뜸이 들여진다. 곧 밥알이 퍼지고 부드러워진다. 맛있는 백합죽이 완성되었다. 아내가 그릇에 죽을 담아낸다. 마지막으로 김을 잘게 부셔 고명으로 올려놓는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여보, 순무김치 좀 꺼내 봐? 죽에는 순무김치의 빨간 국물을 끼얹어 먹으면 아주 좋아!"

아내가 모르는 것도 없다며 순무김치 한 보시기를 꺼내놓는다. 한 달 남짓 김치냉장고에서 잘 숙성된 순무김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을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았다. 향긋하고 구수한 향기가 입안 가득하다. 시원한 국물 맛이 우러나온 순무김치를 곁들여 먹으니 그 맛이 정말 좋다.

속이 든든하니 몸도 가벼워진 것 같다

흔히 사람들은 입맛이 없을 때 죽을 먹는다. 죽은 부드럽게 넘어가 위에 부담을 주지 않아 식사를 대신한다. 노인들이나 어린이들에게는 영양식으로 이용한다. 병을 앓거나 회복기에 있는 환자들도 죽을 많이 먹는다. 또 예전 식량이 부족할 때는 구황식품으로서 얼마나 지겹도록 죽을 먹었는가?

▲ 백합죽을 순무김치를 곁들여 먹었다.
ⓒ 전갑남
모처럼만에 먹어본 백합죽이 깔깔한 입맛을 되찾아 주는 것 같다. 한 그릇을 뚝딱 비우자 아내가 한 국자를 더 떠서 빈 그릇을 채워준다.

"든든하게 먹으니까 좋지?"
"당신 덕분에 맛있게 먹었네."

맛난 죽을 먹고 나니 몸이 한결 가뿐해진 것 같다.

오늘 저녁은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뜨뜻하게 등 짝을 지지고 자야겠다. 땀을 흥건히 흘리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 몸살은 멀리 달아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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