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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

동아일보 선정 ‘올해의 책’ 10

동아일보 선정 ‘올해의 책’ 10

《올해 불황의 골이 유독 깊었던 출판계지만 여러 분야에서 눈에 띄는 좋은 책이 많았다. 동아일보는 올해 1월 5일부터 12월 20일까지 본보에 소개된 책을 포함해 학계 출판계 선정위원들의 추천을 받아 ‘올해의 책’ 10권을 선정했다(무순). 철학, 역사학, 경제학, 경영학, 과학, 문학, 출판사 대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30명이 선정위원으로 참여해 본지가 제시한 책 중 7∼10권을 추천했고 그 목록에 없는 책은 별도 추천했다. 그 결과 ‘올해의 책’ 후보 123권 중 비문학 7권, 문학 3권이 ‘올해의 책’의 영예를 안았다. 비문학에서 ‘만들어진 신’(김영사), 문학에서 ‘남한산성’(학고재)에 편중됐던 2007년 ‘올해의 책’ 추천과 달리 올해는 역사, 인문, 경제, 고전,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고루 많은 추천을 받았다. 비문학과 문학을 합쳐 국내 저자와 외국 저자의 책이 5권씩 균형을 이룬 것도 특징이다. 세계적 금융위기와 불황으로 어수선한 마음을 올해를 빛낸 10권의 책으로 추스를 수 있기 바란다.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팀》

‘더불어 사는 세계화’ 대안 제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조지프 스티글리츠/21세기북스

‘공정한’ 세계화를 주창해 온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올해 내놓은 이 책은 세계화가 야기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수작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세계화 반대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세계화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 막대한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화의 열렬한 전도사를 자처한다. 다만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이익에 치중해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킨 세계화 방식을 지적한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에서 선진국에 더 많은 표를 할애하는 의결 방식의 개혁 등 ‘세계화의 시스템’을 고치자는 경제학 석학의 주장이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한자경(철학) 이화여대 교수는 “세계화의 물결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힘과 그 물결에 슬기롭게 대처할 길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못믿을 식품’ 뿌리를 파헤치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마이클 폴란/다른세상

올해 유해 화학물질인 멜라민이 첨가된 식품에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히면서 식품의 이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음식의 사슬을 거꾸로 추적하며 식품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무관심했던 세태에 경종을 울린 ‘잡식동물의 딜레마’가 식품 관련 주제를 다룬 책 중 단연 돋보였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치킨너깃부터 스테이크, 연어까지 슈퍼마켓에 진열된 많은 식품 사슬의 처음이 옥수수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방목해서 길렀다는 닭이 생후 6주까지 농장의 폐쇄된 공장에서 자란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옥수수농장부터 작물 재배, 수렵 체험까지 마다하지 않은 저자의 열정이 눈길을 끌었다. 박재환 에코리브르 대표는 “삶의 방식과 생각을 결정하는 ‘먹는 문제’를 문명사적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했다”고 말했다.


오지를 변화시킨 ‘독서 바이러스’


◇ 히말라야 도서관/존 우드/세종서적

올 연말 기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2월 출간된 ‘히말라야 도서관’은 탄탄대로를 달리던 세계적 기업의 중역이 보장된 성공을 포기하고 네팔과 인도 베트남의 오지에 도서관 3000곳을 지은 이야기로 일찌감치 독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이사였던 저자는 네팔로 휴가를 떠났다가 읽을 책 한 권 없는 학교의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우연히 마주친 가난한 풍경에 대한 일시적 연민이 아니었다. 그는 자선단체를 설립해 150만 권 이상의 책을 기증했고 200곳 이상의 학교를 지었다.

저자는 오지 어린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악의 선택이라며 세상을 바꾸려면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뛰어들라고 말한다. 송기원(생화학) 연세대 교수는 “결심에 따라 우리 모두가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말했다.


서양 배를 통해 본 조선 근대사


◇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박천홍/현실문화연구

조선 앞바다에 서양 배들이 출몰하는 사건을 통해 우리 근대사를 조명한 책이다. 주제가 참신하고 다큐멘터리를 소설처럼 구성한 시선이 독특하다. 저자는 16세기 이후 서양 배가 조선을 찾은 열여섯 사례를 재구성했다.

다수의 고문서를 소장한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인 저자는 조선을 찾은 서양인의 일기, 항해일지, 보고서는 물론 조선이 서양 배들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한 문정관의 기록도 함께 뒤져 당시 상황을 생동감 있게 구성했다. 서양 배들은 처음에는 우연히 표류하거나 식량이나 물을 찾아 상륙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점차 의도된 탐험, 통상요구, 선교를 위해 조선을 찾았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서양 세력이 바다를 통해 침탈해 오는 과정과 (조선인이 받은) 문화충격을 흥미롭게 다뤘다”고 했다.


불확실성의 세상을 대비하라


◇블랙 스완/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동녘사이언스

올해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특히 주목받은 책이다. 2007년 “조만간 최악의 파국이 월가를 덮칠 것”이라며 월가에 독설을 퍼부은 이 책이 나왔을 때만 해도 언론과 학계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는 저자의 독설을 현실로 만들었다.

책의 논지는 흰 새라서 백조()라는 기존의 학설은 ‘극단 값’인 검은 백조가 나타나는 순간 무너진다는 것이다.

현직 월가의 투자전문가인 저자는 전례만을 기준으로 삼아 극단 값에 대한 방비가 없기 때문에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고 말한다. 임진택 삼성경제연구소 출판팀장은 “세상이 가진 불확실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태도를 통찰하는 책”이라고 했다.


응어리진 삶 치유 ‘가족이 필요해’


◇엄마를 부탁해/신경숙/창비

신경숙 작가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작품. 서울역에서 실종된 엄마를 찾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사에 얽힌 상처와 그 가운데 자리 잡은 엄마의 일생을 풀어간다. 모성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서사가 가슴을 먹먹하게 하지만 그 응어리는 가족들의 시선을 통해 엄마의 삶이 재구성되면서 치유의 과정으로 변환된다. 최근 경제위기와 맞물리며 인기를 끌게 된 대표적인 가족서사로 사라진 엄마를 찾아가는 미스터리 양식 속에 녹아든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장이 돋보인다. 모두의 가슴속에 비슷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을 엄마의 모습은 곳곳에서 뜨끈하게 목을 메이게 한다. 박성원 작가는 “‘봉합과 치유’라는 새로운 가족문제를 제기했으며 통속적 소재를 작품의 반열에 올려놓은 문장과 구성이 신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출간 두 달 만에 18만 부가 판매됐다.


70 평생의 화두 ‘왜 공부하는가’


◇공부도둑/장회익/생각의나무

스스로를 ‘공부꾼’이나 앎을 훔쳐내는 ‘학문도둑’으로 부르는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가 70년 공부 인생의 내공을 쉽게 풀어낸 자전적인 글이다. 물리학자이자 ‘온생명 이론’이라는 독창적인 학문세계를 구축한 저자는 집안 내력부터 어린 시절의 지적 호기심과 서울대와 미국 유학시절, 이후 학문 여정에 대해 담담하게 회고한다.

저자는 땅이나 일구라는 할아버지의 반대로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공부거리를 찾아다녔던 ‘타고난 야생기질’을 이야기한다. 공부거리는 학교 담장 안에만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 전체를 관류하는 것은 ‘공부는 왜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는 “한국의 자립적 지식인의 창조적 공부법을 담은 이 책을 통해 통섭의 본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북간도 항일투쟁과 연애 버무려


◇밤은 노래한다/김연수/문학과지성사

김연수 작가의 시선이 국경 너머,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스러져간 청춘들의 삶 속에 와 닿았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 초반 북간도 항일유격대 근거지에서 벌어졌던 ‘반민생단 투쟁’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혁명과 새로운 시대를 꿈꿨던 젊은이들의 잔혹하고 애틋한 운명을 그려냈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직원인 김해연은 여학교 음악교사인 이정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정희의 뜻밖의 죽음으로 그녀가 용정 내 중국공산당원으로 프락치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해연은 사랑의 후유증과 역사의 격랑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진실에 대한 사랑과 연인에 대한 그리움은 결국 하나임을 보여주는 역사연애소설”(강유정 문학평론가), “무국적자의 삶과 사랑을 다룬 작가의 시선이 지금의 우리를 위무하는 작품”(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이란 평가를 받았다.


문명 붕괴의 시대, 묵시론적 경고


◇ 로드/코맥 매카시/문학동네

국내에도 코맥 매카시 열풍은 거셌다.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문학 작가로 손꼽히는 저자는 대재앙이 일어난 지구에 남겨진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을 통해 붕괴해 가는 문명에 대한 경고와 죽음의 세상에 남겨진 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함께 담아냈다. 바다가 있는 남쪽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두 사람은 문명과 인간성이 완전히 소멸된 종말론적인 세상을 본다. 며칠간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굶주리고 춥고 불안한 잠자리를 전전하며 때로는 인간사냥꾼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공포와 살의, 적대만 남은 버려진 땅의 황폐함과 굶주림, 폭력, 살인의 광기들이 시적이고 묵시론적 문장으로 형상화돼 무게감과 비감을 더했다. 소설가 김숨 씨는 “노작가의 잠언적 상상력과 문장이 묵직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매카시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국내에서 20만 부 판매됐다.


“문체가 곧 삶” 꼿꼿했던 선비들


◇고전 산문 산책-조선의 문장을 만나다/안대회/휴머니스트

‘고전 산문 산책’은 상투성이나 낡은 사유를 찾아볼 수 없는 조선시대 산문을 소개해 반향을 일으켰다. 저자는 10년간 사회 통념을 거부한 주제, 파격적 문체, 시적 감수성이 특징인 산문을 발굴했고 이 중 산문가 23명의 160여 편을 번역해 멋과 의미를 소개했다.

부조리한 현실을 직설적으로 꼬집은 허균 등 알려진 문장가뿐 아니라 글자 수가 불과 53자에 불과하지만 외면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 관념을 통렬하게 비판한 산문을 쓴 이용휴, 수많은 인물의 특징을 다채로운 묘사로 잡아낸 이옥 등 저자가 발굴한 작가들을 통해 조선시대 고전 산문의 참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문체가 곧 삶’이라는 산문정신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산문집이다. 800쪽에 가까운 책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