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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산에서 대모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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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연재> 오원의 산 오르記

구룡산에서 대모산으로

九龍山 • 大母山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 서초구


글 사진 | 오원


대모산(291.6m)과 구룡산(283.2m)은 하나의 산이다. 강남구와 서초구의 경계를 이루는 나지막한 산. 산의 본디 이름은 ‘국수봉’이라는 설이 있다. 강남구와 서초구를 나누는 행정구역 개편이 있기 전에는 강남구에 있던 산이었다. 서울의 남쪽 끝에 있는 국수봉. 강남의 산, 구룡산과 대모산을 이어달리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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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들머리는 구룡사 입구. 양산 통도사의 서울포교원인 도심 속의 절간. 구룡사의 남쪽, 남부순환도로를 건너 주말농장 안으로 들어섰다. 쉴 새 없이 달려가는 자동차들의 비명, 괴음을 피해 도망치듯 숲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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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구룡약수. 옛날에, 아주 먼 옛날 옛적에, 임신한 여인이 열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 소리치는 바람에 덜떨어진 용 한 마리는 떨어져 죽고 아홉 마리만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산 이름으로 남았다는 구룡산의 구룡약수. 구룡산을 대표하는 샘물. 샘물을 뒤로하고 그윽한 숲의 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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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름은 넘어 보이는 오동나무 두 그루 사이로 잘 다듬어진 또 다른 산길과 만나 삼거리. 조금 더 오르면 주능선, 양재동 ‘한국학술진흥재단’ 쪽에서 오르는 길과 만났다. 운동시설이 되어있는 공터, 이곳은 산의 북쪽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후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는 곳이다. 아침운동이나 가벼운 산책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자동차의 굉음이 끊임없이 들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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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나무가 산 전체를 점령해버린 숲을 가르며 산길이 정상까지 이어졌다. 삼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에 전망대바위. 바위벼랑 위. 서울 북쪽으로의 조망이 기가 막힌 곳. 탄성이 나올 법하다. 산의 북쪽은 거대한 도시화의 현상(現象)이 깊어 산자락까지 회색 건물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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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서울의 젓줄 한강이 남과 북을 뚜렷이 나누어 놓았고 경복궁 뒤 백악산 넘어 삼각산이 우뚝하다. 서울을 감싸고도는 산들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머지않은 곳에 정상. 구룡산 우수 조망 명소. 강남구청에서 세운 것으로 보이는 안내판이 서 있다. 재미있는 설명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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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의 조망은 북쪽으로만 좋을 뿐, 남쪽은 어림없다. 을씨년스런 모습이 이어졌다. 구룡산과 대모산 사이에 굴이 뚫려 남북으로 자동차가 들락날락. 산 위는 철조망이 동서로 가로질러, 산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다. 이산(離山)을 만들었다. 산의 북쪽으로만 산길이 거미줄처럼 나 있다. 집 나온 이들이 길을 따라 떼를 지어 오고갔다. 개미떼처럼. 곧 비라도 내릴 낌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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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계단이 멋을 낸 산길을 올랐다. 통신탑이 있는 곳 삼거리, 전망대가 북쪽을 향하여 원두막 모습으로 놓여있다. 여기 또한 조망이 좋다. 100 걸음 거리의 정상은 원형탈모가 진행된 대머리의 모습이다. 정상도 조망이 좋다. 그러나 조금 아래 헬리콥터 정거장에서 조망은 더욱 좋다. 일망(一望)이 일망무제(一望無際)요. 일망지하(一望之下)가 일망무애(一望無涯)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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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날은 이 멋진 곳에서 하룻밤을 노숙(路宿)한다고 해도 어디에 아쉬움이 있겠는가. 마음 맞는 벗과 탁배기를 나누며 지낼 수 있었으면 무슨 욕심이 마음을 어지럽힐 것이며, 달 밝은 보름밤을 지샌다한들 무엇에 두려움이 있을런가. 아, 아. 대모산 등성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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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산 남쪽자락에 헌릉(獻陵)과 인릉(仁陵)이 있다. 조선 제3대 임금 태종이 죽어, 먼저 간‘ 중궁(中宮) 원경왕태후(元敬王太后) 여흥 민씨(閔氏) 곁에 잠든 곳. 세종 4년(1422년) 음력 9월 초엿샛날, 태종을 헌릉(獻陵)에 장사지냈고 애책(哀冊)은 이러하였다.


“빈궁(殯宮)을 이에 열고 삼막(縿幕)을 장차 옮기는데, 백관들이 시종(侍從)하니 온갖 의장(儀仗)들이 성대합니다. 새벽이슬이 쓸쓸하여 산천마저 슬퍼하는데, 쓸쓸한 바람이 부니 초목(草木)마저 서러워합니다. 성상(聖上)께서는 땅을 치고 하늘에 부르짖으니, 간장(肝腸)이 떨어지는 듯 등뼈가 으스러지는 듯합니다. 신의(宸扆)를 우러러보니, 살아 계신 듯한데, 천안(天顔)을 길이 뵙지 못할 것을 슬퍼합니다. 이에 사신(詞臣)에게 명하여 성덕(聖德)을 선양하게 합니다.”


한양 도성을 떠나서 멀리 경기도 광주 땅이었을 이곳에 태종이 묻혔다. 도성에서 30리쯤 떨어진 대모산자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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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500 년이 지나 나라가 망하고, 한양은 서울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도 ‘그린벨트’라는 서양 이름의 족쇄에 묶여 전원풍경이 그대로 지켜지는 안골(내곡동).

헌인릉 마을이 ‘쬐끔’ 보이는 곳에서 철조망은 없어지고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남쪽에서 오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산길이다. 바위덩어리 하나가 길목을 지키고 있어서 좋은 쉼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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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걸려 있는 비닐로 ‘코팅’이 된 종이쪽에 ‘대모산아 사랑해’. 예쁜 글씨와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바라보며 스쳐가는 생각 하나.

대모산(大母山) 대모. ‘대모’의 의미는? 대모(大母)가 누구인가. 혹, 태종의 비(妃) 여흥민(閔)씨? 고려 중대광(重大匡) 여양군(礪良君 宋璿)의 딸이었던 민씨는 4남4녀를 낳아 왕통을 이었다. 맏이가 제(禔 양령대군), 둘째는 보(補 효령대군), 셋째가 세종대왕, 막내 종(褈 성령대군)은 어려서 죽었다.

태종은 10 명의 부인 사이에서 아들 12 사람과 18 인의 딸을 낳아 모두 30명의 자녀를 두었다. 대족을 거느리는 왕실의 맏며느리로서 ‘대모’의 역할을 하다가 56세에 돌아갔고 이 산자락에 묻혔으니 헌릉(獻陵)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대모의 무덤이 있는 산’이 되었으므로 ‘대모산‘이라 하였다? 어림없는 추측을 해보지만 모를 일이다. 맞고 안 맞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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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럽다. ‘높거나 험하지 않아, 부담 없는 산행이나 아침운동을 즐기기에 적당한 산’이라는 대모산에서 ‘대모’에 대한 생각이 어지럽다. 덥다. ‘가을이 깊어진다’는 백로(白露)날인데 왜 이리 덥나. 터벅터벅 걷는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산길이 ‘ㄱ'자로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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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산의 쓰러진 나무를 활용했다’는 안내문이 새겨진 이정표에 수서역 1400m. 강남구청에서 세운 길잡이 나무판대기에 못골마을 800m. 못골로 내려가 볼까. 못골에 연못이 있었을 게다. 그러고 보니 이 높지 않은 산에 샘물은 여럿.

구룡약수 ․ 구룡제1약수 ․ 구룡산약수 ․ 개암약수 ․ 천의약수 ․ 임록천 ․ 대천약수 ․ 대룡약수 ․ 옛약수터 ․ 옥수천 ․ 구룡천 ․ 못골약수 ․ 궁마을약수 ․ 쌍봉약수 ․ 성지약수 ․ 실로암약수 등이 있고 ‘쟁골’에도 샘이 있을 듯한데, 확인되지 않는다.

마을 이름도 재미있다. 세곡동 못골 ․ 내곡동 샘마을 ․ 염곡동의 염통골 등, 자곡동 ․ 수서동 ․ 일원(동)에 물이 지천. 한강의 지천인 탄천으로 샘물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목마른 사람들이 찾기에 아주 좋은 산. 구룡산 대모산은 약수산행지로 알맞은 산이었다. 약수터에서 시작하여 샘터에서 끝나는 산, 다른 이름은 ‘국수봉’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미 대모봉(大母峰 또는 대모산)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대모산은 장백산(長白山)으로부터 남쪽으로 수천 리를 달려와 상주(尙州)의 속리산(俗離山)에 이르고, 여기서 꺾여 서북으로 또 수백 리를 달려 과천(果川)의 청계산(淸溪山)에 이르고, 또 꺾여 동북으로 달려 한강을 등지고 멈추었는데 이것이 대모산이다. 땅의 영기(靈氣)가 멈추어 솟아 맑은 기운이 꿈틀거리니. 아,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간직하여 능(陵)의 길조(吉兆)로 기다림인가.’

<윤회(尹淮)의 비음기(碑陰記)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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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걷는 흙길도 끝나고 아스팔트길로 나왔다. 방금 도착한 지하철 3호선 4번 출구에, 늦은 산행을 재촉하는 약수산행꾼들이 웅성웅성. 차들은 겁나게도 굉음을 지르며 굴러다니고 있었고, 땅의 영기(靈氣)는 아스팔트 거죽을 뒤집어 쓴 채로 신음하고 있었다. 애고애고나. 왜 이렇게 뜨겁나. 와, 이리 덥노.


구룡사 입구 - (40분) - 구룡산 - (50분) - 대모산 - (60분) - 수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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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잡이


구룡산은 양재동 학술진흥재단 쪽이나 구룡사 쪽 그리고 염곡동 염통골에서 오른다. 많은 사람들은 구룡산과 대모산을 묶어서 산행을 한다. 대모산은 지하철 3호선 수서역 4번 출구, 버스 정류장에서 산길로 들어간다. 나무계단이 있는 곳으로. 이정표가 잘 되어 있으므로 길 잃을 걱정은 없다. 다른 코스는 개포 7단지에서 시작하여 불국사를 거쳐 정상에 오른다. 남쪽 헌인릉 쪽에서도 오를 수 있다. 곳곳에 샘이 있어 샘터 순례를 해도 된다.

구룡산 정상과 대모산 정상에서 풍경은 압권.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과 한강이 한 눈에 보이고 맑은 날은 강북의 시가지와 강서의 벌판이 모두 조망되는 최고의 조망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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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양재역에서 406번, 4430번 버스 이용, 구룡사 입구나 능인선원 앞에서 내려서 산으로 든다. 141번(도봉산-염곡동)버스나 41번(탄천차고지-개포동) 버스도 능인선원 앞에 멎는다.

수서역에서 주능선을 타고 오르거나 일원역에서 내려서 불국사 방면으로 오른다. 승용차를 가져갈 경우는 수서역 환승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성남행 시내버스를 타고 헌인릉 앞에서 내려도 된다. 대모산으로 오른 다음 구룡산으로.


볼거리


구룡사 | 양산 통도사의 서울포교원. 도심에 현대식으로 세운 절간. 시멘트로 지었다. 서점과 매점도 있다. 이웃에 있는 능인선원과 함께 강남에서 성공한 현대 불교의 대표적인 선원이라 할 수 있다.


헌릉(獻陵) | 대모산(大母山) 남쪽에 있다. 조선 3대 태종 공정대왕(太宗恭定大王)의 능으로 원경왕후(元敬王后) 민(閔)씨를 부장(附葬)하였다.

인릉(仁陵) | 헌릉(獻陵)의 오른편 언덕에 있다. 조선 23대 순조대왕(純祖)의 능침. 처음에는 교하(交河) 장릉(長陵) 국내(局內)였는데, 철종(哲宗) 6년에 이곳으로 천장(遷葬)하였다.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金氏)도 이곳에 합장(合葬)하였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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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산자락을 어슬렁거리며, 반푼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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