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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상과 대조영


대중상과 대조영
대중상과 대조영 부자는 고구려 멸망 직후부터 백두산 주변 지역에서 국권 회복을 위해 싸우고 있는 정치 세력을 묶어 ‘진국(震國을)’을 세워 활동했다.
그리고 서기 698년경에 영주로 옮겨 국권회복을 위한 최후 작전을 지휘했다.…(중략)… 일부 학자들은 진국과 발해가 ‘말갈족의 나라’라고 주장하지만, 진국과 발해는 엄연히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중상의 출생지는 어떤 곳이었는가?

대중상의 조상들은 고구려 때 대대로 백산, 즉 백두산 주변에서 살다 고구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속말수가에 이주했고 대중상은 이 속말수가에서 출생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군사에 밝았으며 속말수가의 고구려 사람들은 물론 산골짜기를 유동하면서 사냥에 종사하고 있던 말갈인까지 지배하고 장악했다.
또 일찍부터 무술과 학술적인 면에서 뛰어났으며, 속말수 유역 일대에서 명성 높은 출중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당나라의 사가들은 그와 그의 조상을 말갈인으로 조작하고 그의 조상들이 살던 백산 지방과 속말수 유역을 말갈인들이 사는 백산부와 속말부로 왜곡했다.

발해국 대씨(大氏)가문의 역사를 기록한 족보 책 <협계태씨 족보>의 <발해국왕세략사>에서는 ‘왕(대중상)은 처음에 속말수의 강변에서 출생했다’고 했다.
이것은 정착 농경을 할 수 있는 속말수 기슭의 벌방에서 출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그가 정착 농경 주민인 고구려인의 후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즉, 대중상의 출생지역을 보면 그는 사냥에 종사하는 말갈인의 거주지가 아니라 정착 농경 생활을 하는 고구려 사람들의 거주 지역에서 출생하고 성장했다.


대중상은 어떤 인물이고, 고구려 때 어떤 활동을 했는가?

대중상은 기골이 장대한 구척장신으로서 인품이 출중했으며 과묵하고 사려 깊게 일 처리를 잘했으며, 청년 시절 벌써 고구려의 지방행정 통치 단위가 포치된 속말수 유역의 주민들을 거느린 신망 높은 인물이었다.

그는 많은 부하 장병들을 거느리고 군사 활동에 적극적이었을 뿐 아니라, 631년부터 시작된 천리장성 축조 공사에 참가, 군사 정치적 실권을 가지고 고구려의 발전에 이바지 했고, 고구려 멸망 이후 국권 회복을 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벌였다.


대조영의 출생과 전설

대조영은 고구려 말기 북류송화강(속말수)유역을 관활하던 부족의 추장으로 알려진 대(大)걸걸중상(乞乞仲象)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구려 당시 대조영의 가문은 우리 선조들의 오랜 발자취가 베어 있는 북류송화강 유역에서 큰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협계태씨족보>에는 대조영의 출생에 관한 신비스러운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대조영의 어머니 시(時)씨가 꿈에 북두칠성의 정기를 삼키고 그를 잉태했다. 그리고 대조영을 낳을 때 방 안에 상서로운 자줏빛 기운이 가득했다. 또한 대조영을 낳고 보니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은 검은 옻칠을 한 것 같이 번들거리고, 잔등 왼쪽에는 해가 있고 오른쪽에는 달이 새겨져 있었다.]

대조영의 출생에 관한 전설은 허황된 이야기이나, 초인간적인 재능과 힘을 가진 신성한 인물에 의해 발해가 창건되었으며, 그 신비스러운 건국 시조의 보호를 받아 자기 나라가 융성하고 번영할 것을 바라고 있는 발해 인들의 간절한 염원이 반영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