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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에서만 전투를 벌이는 고구려 드라마 <연개소문>

고구려 산성 하나 없는 고구려 드라마
[비평] '평지'에서만 전투를 벌이는 고구려 드라마 <연개소문>
김헌식(codess) 기자
최근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극동과학원 역사고고민족역사연구소 고고학자인 O.V. 디야코바가 연해주 지역에 고구려와 발해 양식의 성곽이 10여 곳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고구려 성곽의 양식은 이미 잘 알려졌으며, 성곽을 통해서도 그 강역을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독특한 양식을 가지고 있다.

고구려 성에는 많은 특징이 있지만, 우선 돌을 쐐기형으로 다듬고, 돌을 쌓을 때에는 반드시 1개의 돌이 6개의 돌에 둘러싸도록 했다. 그럴 때 한 개의 돌이 빠지더라도 다른 돌들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구려의 산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으로 그 이름이 높다.

또 잘 다듬어진 쐐기꼴 돌을 사용하고, 머리가 큰 부분을 벽 바깥쪽에 놓고 성벽의 경사에 따라 뒷부분의 두께를 조절했다. 그랭이 공법은 바위를 깨고 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바위가 생긴 대로 쪼아내어 이빨을 맞추듯 치밀하게 접합시키는 것이다. 또한 고구려 산성은 완벽한 겉 쌓기와 속 쌓기를 했다. 따라서 겉의 성벽이 무너져도 안쪽의 성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고구려 산성의 독특성은 국내 고구려 드라마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드라마 <연개소문>은 단양 오픈 세트장에서 촬영하는데, 성문과 담은 중국식에 가깝다. 성곽조차 쉽게 볼 수 없으며, 고구려 양식의 산성은 찾아볼 수 없다. 당태종의 고구려 공격에서도 유려한 영상을 잡아내기 위해 평지에 있는 성곽 앞에서 전투 광경을 담아냈다.

<주몽>은 비록 고구려 이전 혹은 고구려 초기를 다루기 때문에 고구려 산성이 등장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옥의 티는 있었다. 전쟁이나 전투가 모두 평지전나 습격전에 머물고 말았기 때문이다. 성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을 볼 수는 없었다. 고구려 건국 이후의 전투에서도 산성전은 존재하지 않고, 평지전만 등장했다.

고구려에서 벌어졌을 수많은 산악 전투는 평지 전투가 되고 만 것이다. 산악 고구려 지역이 갑자기 평지 지역이지 않았나 하는 착각마저 주었다. 그렇다고 평지전이 '롬'과 같은 장면에 비할 바도 안 되었다. 평지전이기 때문에 칼을 위주로 한 전투신이 많아진다.

산성전이라면 활을 사용하는 예가 많아질 것이다. 나주 소재의 <주몽> 삼한지 세트장에는 고구려 성곽이 없는데 산성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부여국에 고구려 산성의 원형이 있을 수도 있으며 고구려 초기에 그러한 산성의 원형이 있었다고 상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산성 성곽 전투신이 다른 고구려 드라마에 비해서 많이 등장했다. 그렇다고 그 산성이 고구려 산성은 아니었다. 문경새재에서 촬영해오고 있는데, 산성은 모두 조선 시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산성에서 고구려 장수들이라는 이들이 전투신을 벌여 왔다. 고구려 산성을 의미하기에도 성곽은 너무나 거슬렸다. 어디 고구려만일까. 신라, 백제, 고려, 조선 배경의 사극도 문경새재 제1-3관문에서 촬영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고구려 드라마들이 많이 제작 방영되지만, 정작 고구려 산성하나 묘사하지 못하고 있다. 산성 유무를 떠나 고구려 드라마는 있는데, 고구려는 없는 것 아닐까. 단순히 고구려 산성의 존재 여부보다 할리우드 혹은 유럽의 고대 전투신에 함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5월 말에 방영되는 <태왕사신기>에는 최소한 고구려 산성이라도 하나 등장하고, 산성 전투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환타지 드라마를 표방하니 애초에 현실성은 무시할 테지만 말이다.

물론 고구려 성을 만드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 있다. 이때 정작 중요한 것은 각 방송사마다 드라마 세트장을 만들고는 드라마가 끝나면 버린다는 점이다. 버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결국 버려졌다. 자원 낭비가 심한데 비해 고구려 성 하나 없는 것이다. 각개 격파가 아니라 방송사의 협업을 통해 오픈 세트장을 만드는 일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