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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백령도에 대한 예의, 그리고 아쉬움
[백령도 여행⑦]기행문과 사진전, 연평도 방문의 미련
정만진(daeguedu) 기자
▲ 백령도 여행을 계획하던 무렵까지만 해도 내 마음속의 '백령도 이미지'는 위의 사진과 거의 흡사했다.
ⓒ 정만진
백령도 여행을 앞두고 나는 이시우의 <민통선 평화기행>을 읽었다. 그 책에는 백령도에 대한 언급만이 아니라 연평도와 임경업 장군 이야기도 실려 있다. 사실 휴전선 일대 어디론가 여행을 한번 떠나야겠다고 마음먹던 6월 초순경, 나는 멀리 다니는 기회를 만들기가 그리 쉽지 않으니 내친걸음에 여러 곳을 방문하리라 계획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 여행을 갈 때 비행기 삯을 고려하여 한꺼번에 5개국, 6개국을 순방하는 것과 마찬가지 행각이었다.

옹진군청 홈페이지 사이버관광에 들어간 나는 인천에서 연평도까지의 거리가 약 127km이고 쾌속정으로 2시간 걸리며, 백령도까지는 약 228km에 4시간 걸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요금은 편도로 약 2만5천원과 약 5만원이었다. 여러모로 연평도는 백령도 가는 데 비해 절반가량 수준이었다. 지도를 보니 연평도는 인천과 백령도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하, 인천을 떠난 배가 연평도를 거쳐 백령도로 가는구나. 그렇다면, 연평도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인천에서 온 배를 타고 백령도로 들어가 다시 한 밤 자고, 돌아올 때는 바로 인천까지 오면 되겠네.

나는 지구가 둥글다는 진리를 깜빡 잊고 있었다. 그림으로 보는 서해 지도는 평면에 그려진 상상도일 뿐 실제 위치를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배가 다니는 바닷길은 우리가 단순히 생각하는 것처럼 직선이 아니라는 점을 놓쳤고, 연평도에서 백령도로는 북한 영해 침범 문제 때문에 배가 바로 항해할 수 없다는 분단 현실도 망각했다. 또, 나처럼 연평도를 거쳐 백령도로 관광을 다니려는 사람은 몇 되지 않으니 그런 경제성 없는 운항을 할 선박사가 있을 리 없다는 현실적 한계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시우는 말하지 않았던가. '관광을 위해 연평도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 7월 27일부터 사흘간(대구 중앙도서관 전시실에서) '백령도 사진전'을 개최합니다. 사진은 전시회 포스터.
ⓒ 정만진
결국 연평도에는 가지 못했다. 연평도와 백령도를 가려면 인천에서 출발하여 그 중 한 섬에 들렀다가 다시 인천으로 돌아온 후 재차 출발하여 다른 섬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다니는 사람을 누가 관광객이라 할까. 그냥 뱃사람이라거나, 어부, 항해사, 희귀식물 연구가 등으로 부르지. 어쨌든, 나는 이번 백령도 여행 과정에서 발생한 가장 큰 아쉬움으로 연평도에 가지 못한 것을 꼽는다. 가만 생각해보면 전적으로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평도에는 가 보았어야 하는데…….

이시우의 <민통선 평화기행>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번 백령도 여행의 또 다른 아쉬움은 그 유명한 백령도 노을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시우는 '뭐라고 해도 백령도는 노을이다'라고 외쳤고, 백령도는 일출도 볼 수 있고 일몰도 볼 수 있는 희귀한 섬이라는데, 나는 그도 저도 둘 다 못 보았으니 얼마나 아쉬운가.

백령도에 당도한 첫날 숙소 주인이 "오늘 안개가 심하더니 갑자기 오후 들어 이렇게 맑아졌군요. 이만하면 오랜만에 멋진 노을을 볼 수 있겠습니다. 저녁 식사를 아주 일찍 하거나 아주 늦게 하고 노을 보러 바닷가로 나가는 게 어떻겠습니까?"했을 때 그의 조언을 경청했어야 하는데, "오늘은 배도 많이 탔고 피곤하니 내일 아침에 일출 보고 저녁에 노을 보고 그러죠"한 게 너무도 어리석었다.

관광객보다 오히려 더 속이 탄 숙소 주인이 "백령도는 안개가 수시로 짙어지기 때문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곳 주민으로서 손님들에게 백령도의 아름다움을 하나라도 더 보여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권유를 하는 것입니다"하고 재차 이야기를 했는데도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가 그만 노을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백령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시우의 <민통선 평화기행>이 정말 좋은 책이라는 사실을 재차 깨달았고, 백령도의 이모저모를 둘러보며 분단과 통일 문제에 대해 가일층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결심도 얻었다. 용기포의 마흔다섯 태극기 행렬, 두무진 장군바위는 민족의 자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여행을 마치면 백령도의 베풂에 보답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 백령도 사진전에 대한 한겨레 보도(2007.7.24.)
ⓒ 정만진

▲ 백령도 사진전에 대한 매일신문 보도 (2007.7.24.)
ⓒ 정만진
일단 기행문을 썼다. 기행문을 쓰면 여러 통로로 사람들에게 읽혀 백령도를 홍보할 수 있다. 오늘까지 모두 7편의 기행문을 연작으로 썼으니(그 중 6편은 이미 오마이뉴스에 올렸다) 아마 연인원으로 몇 만 명은 읽게 될 터이다. 백령도여, 이만하면 내가 귀하에 대한 약간의 예의는 지키지 않았는가. 기행문을 쓰기 전에도 사진과 그 설명을 내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 수준에서도 상당한 방문객을 맞았으니 이것 또한 나의 자그마한 예의 지킴 아니겠는가.

그런데 기행문은 글만 써서 읽히는 것보다 사진이나 그림을 곁들여서 보여주는 것이 낫다. 본래 기행문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다고 했으니 독자는 글에 시각적 도우미를 등장시키는 필자를 한결 친절하다고 느낀다. 이 때 그림보다는 사진이 좀 더 효과적이다. 사진과 그림이 영어로는 같은 picture이지만, 사진은 대상을 100%(참 진(眞)) 베껴내지는(베낄 사(寫)) 못해도 그림에 견줘서는 아무래도 실경(實景)에 가까운 묘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사진전에 출품되는 작품의 액자 아래에는 견본과 같은 해설을 붙여둘 계획이다.
ⓒ 정만진
백령도에서 9통의 사진을 찍었다. 필름이 36장짜리도 있고 25장짜리도 있어서 뽑아보니 사진이 모두 300장을 넘었다. 그 중에서 글의 내용에 맞는 사진을 골라 곳곳에 삽입했다. 사진이 들어가니 글이 훨씬 읽기에 좋았다. 물론 나이아가라 폭포, 베를린 장벽, 울릉도, 독도 등에서 예전에 찍은 사진을 활용하기도 했다.

300장 중에서 '괜찮은' 사진이 50장이나 '탄생'하자 또 다른 욕심이 생겼다. 이왕이면 백령도에 대해 확실하게 예의를 지키자. 사진전을 여는 게 어떨까. 나는 2004년에 '금강산 사진전', 2006년에 '앞산 사진전'을 연 바 있다. 물론 아마추어 사진가로서 연 취미전 수준이다. 그런들 어떤가. 세상 모든 예술을 전문가만 누린다면 보통 사람은 할 게 없지 않나. 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을 기려 백령도를 방문했으니 이번엔 휴전일인 7월 27일에 맞춰 사진전을 열어야겠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이것이 공식적인 전쟁 기간이다. 7월 27일이 휴전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휴전일을 모른다. 그저 '6·25'만 안다. 전쟁이 일어난 것만 기억하고 끝난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는 '한국전쟁'의 이름을 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을 따서 '6·25'라 명명해온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6·25'를 '한국전쟁'이라고 부른다는데 우리만 세계에서 유례없이 발발일을 전쟁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가 바로 아무도 휴전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 백령도 주민들이 세운 통일 기원탑. 쌍둥이 돌탑인데 사곶 해변 들머리에 서 있다.
ⓒ 정만진
그러나 아니다. 전쟁(戰爭)을 넘어 휴전(休戰)으로, 앞으로는 휴전도 뛰어넘어 종전(終戰)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종전도 훌쩍 뛰어넘어 평화 통일(平和統一)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반만년 문화 단일민족의 자랑스러운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전쟁 수준에 머물러 발발일만 알고 휴전일조차 모르다니, 이래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최소한 휴전일이나마 기억하도록 모두들 나서야겠다. 그렇다면, 나부터 7월 27일을 되살려내는 활동을 펼쳐야겠다. 그래, 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에 백령도에 갔고, 사진 현상, 인화, 액자 제작, 전시장 확보, 리플릿 인쇄…… 등에 거의 한 달가량 걸리니 사진전은 휴전일인 7월 27일에 맞춰 열면 되겠다. 마침 괜찮은 사진이 50장 가량 되니, 1950년에 맞추어 50작품을 50점 내걸거나, 아니면 1953년에 맞춰 53점을 전시하면 되겠다. 백령도 용기포 항에도 1945년을 기려 태극기가 45점 휘날리고 있지 않던가. 결국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사흘간 대구 중앙도서관 전시실에서 '정만진 백령도 사진전'을 열기로 했다.

2007년 6월과 7월은 백령도에 다녀와 기행문을 쓰고, 사진전을 열었으니 훗날 나는 이 기간을 내 인생에 있어 '백령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데 몰두한 시기였다고 회고할 것이다. 그리고 백령도에 대해 그토록 예의를 다하려고 한 것은 그 섬이 바로 우리 민족의 자존과 통일을 상징해주는 서북녘 가장 끝의 땅이기 때문이라고 기억할 것이다. "백령도는 내가 지켜야 한다!" 용기포항에 세워져 있는 통일 기원 돌탑의 외침이 내 귀를 생생하게 때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