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이상선 기자]
가을 대하(大蝦) 철이 왔다. 새우들은 1년 만에 어김없이 돌아왔다. 새우는 봄 여름에 얕은 진흙바닥에 알을 낳은 뒤 가을에 더 깊은 곳으로 이동해 겨울을 난다. 안면도 근처 천수만은 국내에서 가장 큰 새우 서식지. 이들이 다 커서 깊은 바다로 나가기 바로 직전이 대하 수확기다.
어민들의 마음도 바빠졌다. 안면도 황도포구에서 만난 동남호 김창웅(57) 선장은 대하잡이배만 20년이 넘게 몰았다. 그는 “올해는 대하가 풍년이여, 작년보다 두 배는 많은 것 같애”라고 했다. 새벽에 출항해 오후 2시쯤 항구에 들어온 그의 그물에는 대하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이번 출항에서 잡힌 새우를 합치면 50㎏쯤 된다. “9월 초는 사람으로 치면 대하는 고등학생쯤 되는겨. 10월이 돼야 다 크지, 값도 제 값을 받고.” 그러나 백사장항 횟집들은 벌써부터 ‘방금 들어온 대하’란 간판을 써붙이고 앞다퉈 손님을 끌고 있다.
대하는 어떻게 먹으면 좋을까. 회로 먹기도 하고 탕으로 끓여먹기도 하지만 역시 최고 인기는 구이다. 숯불이든, 장작불이든, 가스불이든 상관없다. 고소한 냄새는 연기를 타고 코끝을 찌른다. 초장, 간장 등 별다른 양념도 필요 없다. 그냥 맨손으로 잡고 먹으면 된다. 바닷물로 이미 간은 배어 있다. 대하를 먹을 땐 원시적인 포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안면도에서는 그냥 횟집에 가서 대하를 시켜먹거나 어시장에서 대하를 산 뒤 횟집에 들고 가 자리 값이 포함된 양념 값을 주고 먹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값은 둘 다 비슷하다. 대하 값은 그날그날의 수협 공판 결과에 따라 다르다. 9월 초엔 보통 ㎏당 2만원 정도. 횟집에서는 양념값을 7000~1만원 정도 받는다. 그러나 9월 중순이 넘어 대하의 크기가 커지면 값도 따라 오른다. 대하 생산량이 적었던 작년은 ㎏당 8만원까지 가기도 했다.
대하는 어떤 게 좋은 걸까. 안면도까지 갔는데, 서울서도 먹을 수 있는 수입산이나 양식산은 좀 그렇다. 자연산과 양식산의 가장 두드러진 구별법은 어민들이 말한 ‘생사 여부’다. 그러나 더 좋은 구별법이 있다. 양식산은 자연산에 비해 더 검은 빛이 난다. 이것만으로도 안심할 수 없다면 아가미를 들춰 보자. 수협 공판장 앞에서 만난 한 상인은 “양식산은 주로 뻘에서 자라기 때문에 아가미 사이에 진흙이 끼어 있지만 큰 바다를 헤엄치던 자연산에는 뻘이 없다”고 귀띔했다. 색깔은 하루만 ‘작업’해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단다.
또 자연산에도 국산과 중국산이 있다. 대하를 유심히 보면
청새치처럼 머리 위에 뿔이 나 있는데 국산 새우는 이 뿔이 머리 앞으로 길게 나와 있다. 가장 손 쉬운 자연산 국산 대하 구입법은 항구 내 수협 공판장 안에서 사는 것. 상인들의 규약에 따라 양식이나 중국산은 취급하지 않는다.
안면도의 상인들은 대하 크기를 마릿수로 측정한다. “지금 대하 크기가 몇 센티나 돼요?” 하고 물으면 “지금은 킬로당 40미(尾)쯤 되는데, 2주만 있어도 20~30미까지 큽니다”라고 답한다. 킬로그램(㎏)당 마릿수가 적을수록 더 크다는 얘기.
마지막으로 무조건 큰 놈만 고르지 말자. 온누리회타운 염홍섭 사장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무턱대고 큰 놈을 골라 잡지만, 새우를 잘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작은 수놈을 고른다”면서 “이 놈이 훨씬 고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하 맛볼 곳=온누리회타운 (041)673-8966, 오뚜기횟집 (041)672-8659
●어시장 대하 취급점(전국 택배 가능)=석민수산 (041)672-1202, 수협공판장 홍일냉동수산 (041)673-4976
[지금이 제철!] 대하 요리법
대하, 맛도 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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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우를 지칭하는 대하(大蝦)는 보통 4월 하순에서 6월 하순 서해 연안에서 산란한다. 알에서 부화할 때 몸길이가 0.4㎜ 내외에 불과한 유생은 몇 달간 성장을 거듭, 4~5개월 지나면 길이 15㎝, 무게 43g 정도로 자란다. 5개월여 되는 10월 하순께면 길이가 18㎝까지 성장하기도 한다. 해마다 이맘 때면 제부도, 안면도, 홍성 등 서해안에는 대하를 맛보려는 인파가 장사진을 이룬다. 살이 오를대로 오른 대하 소금구이를 맛보기 위해서다. 8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대하 시즌은 10월말까지 계속된다. 겨울 추위가 시작되는 11월 말까지는 그래도 살아있는 대하를 맛볼 수 있다.
▲ 대하 요리의 백미, 소금구이 ‘팔닥 팔닥…, 탁!탁!’
지금 서해안에 가면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돌게하는 소리들이 사방에서 터져 나온다. 바로 소금 불판 위에 놓인 대하 굽는 소리다. 소금의 열기를 받으며 연한 붉은 색으로 변하는 대하는 보기만 해도 입맛을 다시게 한다.
껍질을 까 한 입 깨어 물면 고소한 듯 부드러운 질감이 혀끝에 와닿는다. 대하 소금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제철을 맞아 살까지 통통 올라 와 있으니 금상첨화. 대하 수확철인 요즘은 다른 때 보다 가격도 싼 편이어서 대하를 부담없이 양껏 먹어 볼 수 있는 기회이다.
▲ 천일염이 만들어 내는 자연의 맛
프라이팬이나 석쇠에서 대하를 구울 때는 은박지를 먼저 펴고 그 위에 천일염을 깐다. 소금은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게 1㎝ 내외로 적당하게 까는 것이 요령.
경기 화성시 제부도 입구에 있는 대하 소금구이 전문점인 수성2호 주인 오세연씨는 “소금에 구우면 소금의 열기로 인해 대하의 속살까지 잘 익는다”고 말한다. 소금을 깔지 않고 대하를 구울 경우 보통 대하 껍질만 타고 속은 잘 안 익는다는 것.
소금은 대부분 굵은 천일염을 쓴다. 제부도 인근에는 아직도 옛날 생산방식을 고수하는 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을 쓰는 소금구이집들이 몇 집 있다. 보통 3월~10월 사이에 생산되는 천일염은 알이 굵고 단맛까지 배어난다고 한다. 8~9월이 가장 굵고, 이후 생산되는 천일염은 조금 가는 편이라고.
▲ 대하 소금구이 요리법
살아서 팔짝팔짝 뛰는 대하는 플라스틱 항아리에 담겨 뚜껑을 덮은 채로 나온다. 뚜껑이 없으면 밖으로 튀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프라이팬에 얹고 나서도 뚜껑을 즉시 덮어야 한다. 소금이 노르스름하게 열을 받을 만할 때 대하를 얹는 것이 기술.
뚜껑을 반쯤 열고 그 사이로 대하를 부랴부랴 밀어 넣으면 금새 튀어 나올 듯 요동치던 대하의 몸부림이 수그러든다. 눈에 띄는 변화는 꼬리부분부터 발그스름하게 색깔이 변한다는 것.
이어 대하 몸속의 수분이 증발하는 듯 작은 기포가 일어나면서 프라이팬 안에 김이 서리는 것이 보인다. 꾹 참고 한 5분여를 그대로 기다리면 대하의 몸 색깔 전체가 붉게 변한다. 소금구이 대하 요리가 완성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다.
▲ 대하 맛있게 먹기
급한 마음에 채 익기전에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 대하 맛이 떨어진다. 잘 굽히라고 젓가락으로 대하를 뒤집기도 하는데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 해마다 시즌이면 이 곳을 자주 찾는다는 고객인 LGIBM의 조중권 부장은 “오히려 뚜껑을 자주 열게 되면 짠 맛이 더 많이 배인다”고 노하우를 공개한다.
대부분은 대하 껍질을 벗겨 먹는데 껍질이 예상외로 두껍지 않아 그대로 먹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새우 머리는 대하 메뉴의 압권이다. 머리에서 껍질과 연결되는 부분을 살짝 떼어낸 후 그대로 불판 위에 얹어 두면 바싹 굽히는데 입 안에 넣어 씹으면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대하 1㎏은 적은 양이 아니다. 한 테이블에서 두 명이 먹기에는 배가 부를 정도이고 3~4명이 먹기에도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는 정도이다. 지역별, 가게별로 다르지만 올해 생대하 1㎏은 3만5,000~4만5,000원 선이다. 생대하를 그냥 사 가면 3만~4만원 수준.
/제부도=박원식기자 mailto:"parky@hk.co.kr"